드라마 리뷰

화씨 9/11

iamasiam 2020. 2. 26. 20:08

1.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것은 철학이나 신념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나 가십이 주는 이미지다. 사실 불멸하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부시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정치적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 나온 운동기구를 타다가 넘어져 망신당하던 모습이다. 쿤데라는 <불멸>이란 책에서 이마골로기(imagologie)에 대해서 언급했다. 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다. 이미지의 시대다. 화제의 영화 <화씨 9/11>에서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로 싸운다. 세계의 대통령 부시를 상대로 대담한 이미지 공격을 가한다. 9/11 테러 보고 직후 7분동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부시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영화로 부시는 놀기만 좋아하는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TV인터뷰를 앞두고 부시가 아무리 화장을 짙게 한다 하더라도 손상된 이미지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동안 굳혀놓은 카우보이 스타일의 강력한 대통령 이미지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끝났다. 현대는 이미지의 전쟁시대다. 마이클 무어또한 이미지로 싸운다.

 


2. 마이클 무어는 영화속에 간간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시골 정육점 아저씨같이 생겼다.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눈빛을 가졌다. 안경너머 눈이 반짝인다. 저돌적이지만 무모하지 않다. 옳다고 믿으면 용이주도하고 빠르게 밀어부친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식으로 말하자면 그는 자아의 신화를 찾은 듯 하다. 그의 작업방식은 단순하지만 단단해 보인다.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세상이 감당하기 어려운 스타일인 것이다. 상대가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다 하더라도. 오히려 두려워 떨 사람은 상대방이다. 영화를 보고난 후 모두들 직감한다. 부시가 무어를 당해내기 만만치 않을 것임을. 파울로 코엘료의 새 소설 <11분> 서문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세상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책도 있고, 또 우리에게 현실을 일깨워주는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책도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하게 글을 쓰느냐 하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마이클 무어도 비슷한 태도로 영화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런 자세로 드라마를 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3. <화씨 9/11>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어느 어머니의 인터뷰이다. 매일 아침 미국 국기를 게양하는 공화당 지지자 어머니에게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보가 날라든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들이 보낸 마지막 편지가 도착한다. 구구절절한 편지를 읽으면서도 어머니는 좀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백악관앞을 방문한 그녀에게 어떤 여성이 지나가며 외친다. 이따위 쇼, 다 집어치우라고. 전쟁터에 당신의 아들을 보낸 것은 부시가 아니라 알카에다라고. 어머니는 과거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 익명의 여성에게 상처를 받고 만다. 한동안 버텨보지만 끝내 무너져 눈물을 흘린다. 평생을 지켜온 자신의 신념이 무너져내리는 순간을 맞은 것이다. 부시를 욕하는 백마디 말보다, 이라크에 떨어진 수많은 폭탄보다 감정을 추스르다가 끝내 울어버린 어머니의 흐느끼는 어깨가 더 슬프다, 훨씬더 분노가 치민다. 그래서 더 강력하다. 거대해 보이는 힘은 언제나 그렇듯 아주 미약한 돌팔매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무어는 그런 힘의 역학관계를 꿰뚫고 있었다. 어머니가 흘린 눈물의 힘을 알고 있었다.

4. 마이클 무어는 스트레이트한 인터뷰를 즐긴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궁금한 이들을 찾아간다. 지치지 않고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저 질문한다. 마를린 맨슨도 찾아가고, 찰톤 헤스톤도 찾아간다. 이라크 땅에서 절규하는 어머니도 찾아가고, 폭격을 하는 미군 병사도 찾아간다. 영악한 결정을 내린 부시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도 찾아가고,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민주당 지지자로 변한 상이군인도 찾아간다. 꼼꼼하게 인터뷰를 하고, 치밀하게 퍼즐을 맞춘다. 부시라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몇 년간 소설집필을 중단한 적이 있다. 옴진리교에 의해 벌어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년 9개월간 피해자들을 꼼꼼히 인터뷰해 나간다. 1995년 3월20일 아침, 도쿄의 지하철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 때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으며, 어떤 행동과 생각을 했을까? 그것이 그의 테마였다. 한시대의 징후가 될만한 사건 앞에서 하루키는 소설가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그 사건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언더그라운드>이다. 최근 한국에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큰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다. 예컨대 대구 지하철 참사의 실체는 무얼까?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누군가 녹음기와 카메라를 들고 대구로 내려가 피해자들-필요하다면 가해자도-을 꼼꼼히 인터뷰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 사건이 혹시 현재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결정적인 징후는 아니었을까? 하지만 한국에는 마이클 무어도 하루키도 없다.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