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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획안

KBS <제빵왕 김탁구>

by iamasiam 2020. 5. 15.

방송 기간: 2010년 6월 9일 ~ 2010년 9월 16일
방송 횟수: 30부작(+스페셜 1부작)
극본: 강은경
출연자: 윤시윤, 주원, 유진, 이영아 外



<작품의도>

 

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그래봤자 혈압만 오르고 건강만 헤칠뿐이니,
삶이 고달프다고 징징거리지 말라,
누구나 다 자기만의 삶의 무게가 있는 법이니,
잠시 경제가 어렵다고 세상 끝난것처럼 절망하지 말라.
보릿고개 넘기며 입에 풀칠만 해도 감사해하던 이들도 있었으니.

세상이 공평하다는 사탕발림은 하지 않겠다.
돈앞에 인간이 평등하다는 교과서적 발언은 더더욱 하지 않을테다.
이 놈에 세상은 돈이라는 권력앞에 가차없이 냉정하고, 차별적이며,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마저 없어진지 오래니까.
엄마 아버지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산다는게 요즘 십대들이다.
학교, 집, 친구,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돈으로 잣대를 들이댄다.
심지어 쬐만한 유치원생들마저 아파트 평수대로 친구를 가려 사귄단다.
도무지 사람이 사는 세상인지 돈이 사는 세상인지 분간이 안간다.
그래도 내가 살아왔던 시절 중 어느 한때는 
돈보다는 인정이라든가 의리, 우정, 사랑같은것들의 가치가 더 
아름다웠던 시절도 있었다. 
엄마가 사준 눈깔사탕 하나에 하루가 행복하고,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들고 온 호빵 한봉지에 온가족이 행복하고,
친구랑 냇가에 도랑치고 송사리 잡으며 감자만 구워먹어도 배가 불렀던
그런 소박한 행복으로 가득했던 시절 말이다.
그 때는 주머니에 오백원만 있어도 부자처럼 행복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십억 백억 아무렇지도 않게 억억거리며 살면서도
그 때만큼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참으로 풍요로워졌으나, 사람은 점점 각박해져만 간다.
우리네들 마음속에 사람 사는 맛, 즉 로망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런지.

하여, 우리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만들어줄 드라마를 그려볼 셈이다.
잊혀진 우리네들의 로망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해 줄.. 
다소 촌스럽지만, 볼수록 기분좋은 드라마 말이다.
물론 돈에 목숨 걸고, 야망에 인생을 담보잡힌 인간군상들도 나오겠지.
하지만! 돈보다는 인의지정을 지키며, 사필귀정을 믿고,
자신의 꿈을 소중히 하는 사람들이 결국 행복해진다는..
그런 동화같은 결말을 꿈꾼다.
빨리 뛰는것만이 장땡이라 믿는 토끼의 스피드가 아니라,
느리게 걷지만 결국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는 진득한 거북이의 승리를
보여주고 싶은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품는 사람들에게,
개떡같은 세상에서도 찰떡같이 내일의 행복을 믿는 사람들에게
희망같은 드라마이길 바라면서...
어느 시대 평론가도 그런말을 했다고 하지 않은가.
2009년의 화두는 "희망"이라고 말이다.

2.
이 드라마의 키워드는“복고(復古)”다.
시대 배경은 20세기 말, 7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경제 부흥을 이뤘던
15년동안의 이야기를 아우른다.
시대만 복고가 아니다.
사람도 그 사람들의 정서나 감성도 복고를 지향한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도리, 의리나 충심같은것들,
또는 애국적 발로라든가 시대에 대한 로망같은것들 말이다.
21세기 관점으로 보자면 구태의연하고 촌스러울지 모르나
그 시대 관점으로 보면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한 그런 정서들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을 끌어가는 가장 큰 힘들이 된다. 
물론 경영 이야기도 나온다. 
허나 M&A라든가 주식거래같은 숫자놀이나 머니게임 이야기가 아니다.
선대의 전통을 물려받고, 땀을 흘려 제품을 만들어내고, 
마음을 다해 신뢰를 지키며 상도를 쌓아가는 진짜 기업인들의 이야기다.
(그 바탕에는 개성상인의 철학이 깔려 있다.
무차입경영, 신뢰경영, 한우물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펼쳐지는 그들의 
상도를 회고하며 작금의 돈싸움으로만 얼룩진 기업경영의 본질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캐릭터>

김탁구(17세, 25세~ 30대 초반까지. 男) 
삼화家 구일중의 서자이자 장남.
우여곡절끝에 후계자로 책봉될뻔하지만 음모로 결국 폐위되고
가문에서 쫓겨난뒤 밑바닥서부터 온갖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면서 
개성상인의 후예인 팔봉선생으로부터 상인의 道를 전수받는다.
후에 다시 삼화家에 재입성하여 명실상부한 인간경영을 펼치게 된다.

껄렁한 놈, 단순한 놈, 성깔있는 놈, 살짝 뒷끝도 있는 놈.
그러나 사람의 진심앞에선 한없이 물러터진 놈.
일단 자기 입으로 한번 내뱉은 말은 목숨걸고 지켜대는 놈.
근성과 오기로 똘똘뭉친 놈.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놈. 
그리고 무척이나 정이 고픈 놈... 그게 바로 김탁구다.
알고 보면 본성이 따뜻하고 심성도 가지런한 녀석이다.
타인에 대한 따뜻한 배려는 물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절대 외면못하는 인정도 있다.
누군가를 내 편으로 잡아두기 위해 술수를 쓴다거나 비굴하게 비위를
맞춰준적은 단 한번도 없다. 
솔직함과 정직함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선한 매력이 있는 녀석.
한번이라도 그 녀석의 진심을 맛 본 사람은 그의 편이 될수 밖에 없다.
그렇게 마음으로 사람을 얻는 힘,
그것이 바로 김탁구가 가지고 태어난 운명같은 힘이다.

그런 그가 삼화家의 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건 그의 나이 열일곱살때.
영문도 모른채 엄마를 따라간 곳은 궁궐같은 삼화家의 본댁이었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내와 이복형제들도 만난다.
서출이지만 손이 귀한 집안에서 우여곡절끝에 결국 구일중의 장남으로 
인정되면서, 그렇게 탁구의 굴곡진 인생역정은 시작된다.
친모의 의문사, 계속해서 그를 곤경에 빠뜨리는 대형사고들..
서인숙과 그의 아들 구마준의 노골적인 견제와 암투까지 그 모든것들을
꿋꿋이 이겨내고 견뎌내며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던 탁구는
그러나 야망으로 가득찬 한 여자(신유경)을 사랑하면서 모든것을 잃고
회생불능의 처참한 바닥으로 고꾸라져버리고 만다. 
바로 그 때 인생의 나락끝에 있던 그를 건져준 두 사람이 나타난다.
희망도, 사랑도, 믿음도 완전히 잃어버린채 
오로지 배신감과 복수심으로만 가득했던 탁구에게
인생의 진리와 무한한 가능성을 다시 믿게 해준 팔봉스승과
그리고 상처투성이뿐인 그를 희망으로 다시 웃게 해준 양미순이다.
그 두 사람을 통해 탁구는 제빵왕이 되겠다는 포부를 품게 되는데.
하지만 그는 타고난 미치(味癡)였던거다. (음치, 몸치처럼 맛치라는뜻)
태어나 처음으로 꿈이라는걸 갖게 되었는데 시작부터, 
아니 시작도 해보기전에 난관에 부딪혀버리는 우리의 김탁구!
제빵왕을 향한 그의 길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아 보이는데..,

양미순(24세 ~ 30세까지. 女) 
팔봉선생의 손녀딸이자 절대미각의 소유자.
지금은 시골 제빵사에서 일하지만 화려한 파리 블랑제를 꿈꾼다.
처음엔 탁구와 라이벌로 시작해서,
출세냐 사랑이냐를 두고 위험한 줄타기를 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하게 되고, 탁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된다.

열정적이고, 감정도 풍부하며, 머리도 좋지만,
겉으로 보이는 그녀는 언제나 툴툴대고, 고약하고, 고지식하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 절대 타인앞에서 자신의 약점이라든가 단점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도 잘 인정하지 못한다.
그래놓고 뒤돌아서서 자괴감에 빠지는 스타일.
팔봉으로부터 절대미각과 절대 손감각을 물려받아 
다섯살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한 빵신동이었던 그녀,
대체적으로 어릴때부터 주목을 받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남의 시선 엄청 의식하고, 인정 못받으면 금방 세상 끝난것같이 굴고,
칭찬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엄청 무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더 엄격하고, 엄청난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이런 스타일들이 알고 보면 엄청 허술하고 허점들이 많다)

경기도 시골, 어느 평범한 제빵과자점 무남독녀로 태어나
지금은 할아버지 팔봉선생밑에서 제빵수련중.
하지만 촌스러운 옛것을 고집하는 할아버지의 스타일이 답답하다.
파리의 블랑제를 꿈꾸는 그녀는 화려한 맛과 미장센을 중시하는 편.
그러나 팔봉은 그런 손녀딸의 빵스타일을 걱정스러워한다.
보여주는것에만 빠져 있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나 어쩐다나..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멋있다고 하는 그녀의 빵을 
팔봉선생만 인정해주지 않자 그녀의 불만은 날로 날로 더해가기만 하고.
언젠가 큰 물에 나가 진정한 블랑제로서 인정을 받고 말겠다는것이 
그녀의 목표가 된다.
그런 그녀 앞에 운명을 바꿔놓을 한 남자가 나타난다. 바로 김탁구다. 
처음 죽음직전에 놓인 그를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줄때만 해도
그가 그녀에게 어떤 존재가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그 녀석이 빵을 배우겠다고 밀가루를 뒤집어쓸때만 해도 코웃음쳤었다.
그런 녀석이 자신의 열정과 노력으로 타고난 장애(미치)를 극복해내고
팔봉에게까지 인정받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빵신동 양미순은 서서히 자극받기 시작하고,
드디어 김탁구와 본격적인 경쟁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에 이르는데!
그런 그녀에 어느 날 계획적으로 접근한 또 한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구마준이다. 파리 블랑제가 될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그의달콤한 제의에 방심한 미순은 그의 요구를 들어줄수 밖에 없는 결정적인 
약점을 잡히게 되는데.. 그렇게 시작된 구마준과의 위험한 거래..
그렇게 마준과 탁구 사이를 오가는 위험한 줄타기는 시작된다.
하지만 자기때문에 계속 곤경에 처하게 되는 탁구에 대한 연민과 
구마준과의 거래 사이에서 갈등은 점점 증폭되고,
그러면서 그녀는 탁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진심임을 깨닫게 된다.

구마준(17세, 25세 ~ 30대 초반까지, 男)
삼화家의 적자면서도 탁구때문에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차남.
탁구를 축출하고 몰아내기 위해 온갖 계략을 다 쓰는 그,
서자 주제에 자기보다 더 아버지를 빼닮은 탁구에게 참을수 없는
피해의식을 품게 되면서 탁구를 더 미워하고 불행으로 몰고간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정말 못된 놈이지만 슬픈 악역이다.
(어쩌면 그에게 필요한건 돈의 힘이 아니라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귀족주의적이며 삼화家의 후계자로서 우월의식이 대단하다.
성격도 까칠하고 꼬였다. 유치하면서도 집요하다.
세상에서 아버지를 제일 무서워한다. 그러면서 제일 존경한다.
언제나 아버지 마음에 들어보려고 노력하지만 번번히 깨져버린다.
(엄격하게 아들을 길들이려한 아버지의 사랑을 오해하고 있었다)
솔직히 아버지쪽 기질보다는 엄마쪽 기질을 더 많이 물려받은 그,
노력이라든가 성실같은 고리타분한 과정을 싫어한다.
정직한 승부보다는 권모술수와 음모, 협박이 더 취향에 맞는다.
아버지가 하는 빵에 대해 전혀 관심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물려줄 막대한 재산에는 관심이 많다.
그는 어린나이부터 이미 돈의 권력에 대해 빠삭하게 꿰뚫고 있었다.
돈으로 무얼할수 있는지, 그 돈만 있으면 어떤 힘을 가질수 있는지
이미 엄마를 통해 제대로 배웠던 것.
그렇게 무소불위의 삶을 영위하고 있던 왕자님앞에 어느 날 형이라는 
녀석이 나타났다. 그것도 불과 5개월이 빠를뿐인 형이 말이다.

김탁구, 그 녀석은 깡패같고 촌스럽고 무식하고 재수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얼굴 생김새며, 성격까지..
그래서인지 마준에겐 항상 엄격한 아버지가 그 녀석에겐 자상하다.
워낙에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컴플렉스를 동시에 갖고 있던 마준은
그래서 더 탁구를 싫어하고 미워했다. 
아버지 집안은 대대로 장남이 그 기업을 물려받는게 전통이다.
탁구란 놈이 비록 서자라고 하지만 서열상으로 보자면 장남이었던것.
미칠것 같은 질투심과 원인모를 위기의식을 느낀 마준은
어떻게든 탁구를 후계구도에서 밀어버리기로 작심한다.
하지만 탁구도 만만치 않은 놈이라 그렇게 쉽게 당해주지 않았다.
도무지 그의 협박이나 위협이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다.
결국 아버지앞에서 마준의 자존심을 완전히 땅에 구겨박는 사건이 일어
나고 마는데.. 그 일로 완전 아버지 눈밖에 나버린 마준은 결심한다.
탁구를 죽여버리겠다고 말이다. 
뭐가 됐든 그의 것은 다 빼앗고 파괴해버리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마준은 점점 더 독하게, 점점 더 치밀하게 탁구의 목을 조여갔고
그의 첫사랑 신유경과 그의 친구 박준수까지 돈으로 회유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탁구를 괴롭힐수만 있다면 그는 무슨짓이든 했다.
그리고 마침내 탁구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삼화家에서 그를 
완전히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후계자 자리를 되찾고 세상을 다 얻은것 같은 행복도 잠시,
정체모를 협박편지를 통해 자신과 엄마, 그리고 구일중에 얽힌 가혹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는 또 다른 소용돌이에 휘말리는데.

신유경(17세, 25세 ~ 30대 초반. 女) 탁구의 첫사랑. 
하지만 자신의 야심 때문에 사랑을 배신하고 돈을 선택한다.
사랑마저도 얼마든지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고 믿지만, 결국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걷잡을수 없는 악녀로 변해간다.

총명하고 명석하며, 교내에서도 일이등을 다투는 수재다.
게다가 학교에서 퀸으로 뽑힐만큼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모든 여학생들의 질투의 대상이자 모든 남학생들에게 여신같은 그녀가
사실은 상상할수도 없는 극도의 가난과 끊임없는 폭력의 악순환속에 
태어났고, 자랐고, 현재까지 버티며 살고 있는 중이라는건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열일곱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완벽하게 
자신의 배경을 숨기고 학교안에서는 여왕으로 군림한다.
자신의 가난과 술주정뱅이 아빠, 폭력앞에서 한없이 비굴한 엄마를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가차없는 폭력과 영원히 끝나지 않을것같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할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었다.
악착같이 공부해서 그 저주스러운 집을 벗어나는게 그녀의 유일한
꿈이었던 것! 그런 그녀 앞에 한 녀석이 운명적으로 다가온다.
바로 그녀의 학교에 새로 전학온 김탁구였다.
새로 전학온 탁구가 삼화家의 장남이라는걸 꿈에도 모른 채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해피앤딩을 허락하지 않았다.
탁구를 좋아하지만 그녀에게 절실히 필요했던건 돈, 그리고 출세.
그런데 그 모든것을 구마준이 해주겠다고 한다.
대신 탁구를 철저히 망가뜨려놓아야만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렇게 그녀는 사랑을 볼모로 탁구를 위기에 빠뜨리게 되는데..
후에 구마준과 결혼까지 하게 되면서 삼화家의 며느리가 되지만
탁구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한채 번민한다.
게다가 탁구가 승승장구하면서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모습을 보면서 
참을수 없는 질투를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탁구와 미순을 번번히 곤경에 빠뜨리는 악녀로 변해간다.

박준수(17세, 27세 ~ 30대 초반, 男) 
고학생에서 삼화家의 핵심멤버안에 들어가는 입지전적인 인물.
살아남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무슨짓이든 한다.
한때는 탁구의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후에 탁구의 가장 위험한 적으로 변질되어버린다.

잘생기고 수려한 외모를 가졌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는 별로 말수도
많지 않고, 다른 사람앞에 튀는것도 싫어하는 성격이다.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조금은 음울해 보이는 모범생 스타일.
하지만 그는 방금 읽은 신문 사설쯤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줄줄 다 
외울수 있을만큼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무엇이든 한번만 그 원리를 알려주면 곧바로 응용하는 타고난 수완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사람의 욕심과 이기심을 꿰뚫어보는
직관력과 그 마음을 이용할줄 아는 재주가 있다.
그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시종일관 무서우리만치 냉정하고 쿨한 감정을
유지할 줄 알았다. 나쁘게 말하자면 자기 손에 피 안묻히고 사람을 
죽일수도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가 그런 종류의 시니컬한 인간은 아니었다.
모든것은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나고 난뒤로 변해버렸다.

그가 열일곱살때 아버지의 공장이 부도가 났다.
수억원의 빚에 쪼들리던 아버지는 결국 
한 밤중에 가스 밸브를 열어놓은채 온가족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가스 누출은 가스폭발사고로 이어졌고, 엄마 아버지는 현장에서 사망, 
여동생만 겨우 구출해 살아남았으나 그 사고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들의 사연을 알고 성금까지 모아졌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의 가까운
 친구가 몽땅 해먹고 달아나버렸다. 세상은... 그런곳이었다.
방심할수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의지해서도 안되는 정글같은 곳이었다.
그 때부터 준수는 이를 악물고 혼자 힘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한다.
장님이 된 동생의 치료비와 자신의 학비를 위해 돈이 되는 일이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해댔다. (심지어 돈많은 아줌마들의 호스트역할까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돈이 필요했고 돈을 주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해주는것뿐이니까. 
그런 그의 유일한 위안은 새로 전학온 김탁구였다.
그를 만나면서 이 삭막한 세상에서 조금은 숨을 쉴만해지는 것 같았다.
조금은 안심하고 웃을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친구 때문에 그 자신이 곤경에 빠져버리게 된다.
탁구의 이복동생 구마준이 쳐놓은 음모에 빠져버리고 만것이다.
그는 망설였다. 처음엔 탁구의 편이 되어 싸워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구마준이 휘두르는 돈의 힘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준수,
그렇게 그는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뼈아픈 배신을 안겨주게 되고 만다.
어쩔수가 없었다. 살아남아야했으니까. 
그 순간 준수는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정하게 된다.
두번 다시 돈앞에 무릎을 꿇지 않겠다고,
기필코 그 돈 위로 올라가보이겠다고 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쟁취해버리겠다고 말이다.

우연히 서인숙의 눈에 들어 그녀를 후원자로 두게 되면서 생활고를
해결하게 된 그는 후에 한승재의 수족이 되어 삼화家의 온갖 더러운
뒷처리를 도맡아 하게 된다. 발톱을 숨긴채 그만의 조심스러운 행보를 
시작하던 그는 결국, 삼화가의 엄청난 비밀을 손에 쥐게 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삼화家의 핵심인물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는데.

팔봉선생(60대 중반 ~ 70대 초반까지. 男) 탁구의 스승. 개성상인의 후예.
오래된 제빵집을 운영하는 그는 60을 넘긴 노구지만 
힘에서나 말빨에서나 웬만한 젊은이 기력 뺨친다.
괄괄하고 직선적이며 꼬장꼬장하고 불친절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려깊은 마음과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대단한 노친네.
사람을 대하는 말마다 언중유골이 있고, 깊이 역시 남다르다.
내공으로 치자면 백단이 넘는 그는 사실은 개성상인의 마지막 후예로서
선대를 잇는 제빵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는 중.
죽음의 문턱까지 버려진 탁구를 데려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경영전략과 원칙, 그리고 상도를 가르친다
(** 복수심에 불타 인생 막장까지 내려간 탁구를 인간답게 성장시키면서
개성상인의 상도와 철학을 현대식 경영에 접목시켜 가르치게 된다)


<삼화家 사람들>

구일중(49세, 57세 이후, 男) 삼화 회장.
신념이 강하고 부지런하다. 보수적이고 엄격하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한만큼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남아선호사상이 아주 강하다. 아내와 가족은 남자의 대의(大義)를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외도 역시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영웅호색이라고 하지 않던가.
때문에 탁구의 엄마에 대한 부분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핏줄은 달랐다. 탁구는 엄연히 자신의 핏줄이었고 삼화家의 장남이었다. 대놓고 표현하지 못하지만 구일중은 자신을 쏙 빼닮은 탁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품었고, 탁구가 어떤 문제를 일으켜도 사내자식이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그 역시 개성상인의 후예중 한사람으로 가업을 장남에게 물려줄 날만
기다리던중 음모에 휘말려 결국 자기 손으로 아들을 내치고 만다.

서인숙(46세, 54세이후, 女) 구일중의 아내.
겉으로는 기품있고, 단정하며 우아한 큰마님같은 스타일.
허나 안으로는 계략과 모사에 능하며, 뒷거래에 능숙한 여인이다.
사랑보다는 집착과 소유욕이 강한 스타일로
남편이나 자식에 대해서도 언제나 그런식이다.
말투나 미소는 품격있지만, 두뇌는 언제나 계산적이고 타산적이다.
돈으로 뭐든 할수 있다고 믿고, 
그런 돈의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앞에 굴복시키는걸 좋아한다.
뭐가 됐든 그녀 뜻대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고,
필요에 따라 딸까지도 얼마든지 이용하는 냉정한 엄마지만
알고보면 누구보다 외롭고 고독한 인간이다.
그 외로움과 헛헛함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젊은 준수의 스폰서 역할을 하며 그를 노리개처럼 굴리다가
결국 역으로 그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게 되는 입장에 처하는 그녀,
상류사회에 속한 여자의 비참한 한 단면을 보여주게 된다.

구자경(20세, 28세 ~ 30대 중반. 女) 삼화家의 장녀.
아버지를 닮아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매사에 당당하다.
본인이 삼화家의 장녀라는것에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있다.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자신의 신념도 강하다.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 2순위로 밀려나는걸 참지 못한다.
남녀간의 차별이 아닌 능력의 차이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녀에겐 그럴만한 카리스마와 능력도 있다.
엄마 서인숙과 남동생 구마준과는 체질상 맞지 않아 자주 충돌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집안에서뿐이고, 대외적으로는 언제나 가족을 지지하고
옹호한다.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기에 더더욱 탁구를 인정못한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에게서 낳아온 그 녀석을 동생으로 받아들인다는건
그녀의 도덕적 기준으로 봤을때 절대로 있을수 없는 일이기 때문.
하지만 속으로는 탁구에 대한 연민과 정이 쏠리는것도 사실이다.)
준수의 경제적 스폰서가 엄마(서인숙)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휘청거리는 삼화家를 지켜내기 위해 결국 준수와의 결혼에 동의한다.
그녀에게 삼화라는 이름은 세상 그 어떤것과도 바꿀수 없는 
목숨과도 같은 존재였다. 삼화를 지킬수 있다면 
준수같은 놈과 결혼하는것쯤 얼마든 참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결혼으로 그녀는 돌이킬수 없는 불행으로 치닫게 되는데.


구자림(18세, 26세 ~ 30대 초중반. 女) 삼화家의 차녀.
변덕스럽고 사치스러우며 유행의 첨단을 걷는걸 좋아한다.
시니컬하고 충동적이며 참을성도 없다.
재밌어진다 싶으면 금새 싫증을 느끼고 내던지기 다반사.
사람은 선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이 재밌는거라고 말이다.
자기 욕심과 자기 감정에 솔직한 티없이 맑고 사랑스러운 악녀.
나중에는 집안을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할 상황이 되자, 
별 저항없이 쿨하게 결혼해준다. 

한승재(49세, 57세 ~ 60대 초중반. 男) 비서실장.
구일중의 친구이자, 그의 오른팔이 되어 움직이는 가신.
속계산이 빠르고 상황대처능력이나 임기응변에 강하다.
특히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모사를 꾸미고 오해와 반목을 일으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는 구일중의 심복이자 충복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구일중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한때는 친구였던 구일중에게 상대적으로 억눌린 피해의식이 있었던 것.
서인숙과 구마준을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혼자 도맡아 처리해주며
자신이 밀고 있는 구마준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마지막 순간 구일중을 통쾌하게 배신하지만,
그 역시 결국 밑에 부리던 박준수에게 뒷통수를 맞고 만다.
(서인숙과 마준과 구일중에 얽힌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고,
그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팔봉선생네 식구들과 그 외>

양인목(50세부터,  男) 미순의 부친.
보수적이고 장유유서를 중시하는 7, 80년대 전형적인 가장이다. 
하나뿐인 딸 미순을 끔찍하게 사랑하지만, 아버님을 모시면서
그 사랑을 한번도 살갑게 표현한적이 없었다. 
오로지 그가 바라는건 미순이 좋은 남자 만나 시집 잘가는것뿐.
그저 분수에 맞게 사는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평범한 아빠다.
아내한텐 언제나 퉁명하고 권위적이었다가 점점 위치가 바뀌어간다.

김순희(53세부터, 女) 미순의 모친.
배움도 짧고, 글도 짧지만 삶의 지혜가 깊은 7,80년대 전형적인 엄마.
별로 말이 없는 무뚝뚝한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한번 봇물이 터지면 아무도 말릴수 없는 투덜쟁이로 변한다.
연하인 남편을 섬기고, 까다로운 시아버님을 열심히 공경하며 살지만
대한민국 모든 며느리, 모든 아내가 가지고 있는 한과 설움이 있다.
유일하게 그 집안에서 미순이를 심적으로 지지해준다.
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너 하고 싶은거 다하며 살라고 말이다.

조진구(24세, 32세부터 ~, 男) 제빵집 팔봉선생의 제자.
전과 3범의 진짜 칼잡이로 탁구의 무죄를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
지금은 깨끗이 손씻고 팔봉선생의 제자로 밀가루 반죽을 담당중이다.
실어증에 걸린척 연기하면서 아예 세상과 말을 끊고 산다.
팔봉선생을 하나님처럼 떠받들고 산다.
처음엔 탁구와 엄청 살벌하게 대립하지만 
그러다 정이 들고 의리가 깊어지면서 
후에 탁구가 삼화家에 재입성할때 그의 목숨을 지켜주는 가신이 된다.
(미순을 아무도 모르게 짝사랑한다)

차상태(33세부터, 男) 제빵집 수제자. 자칭 팔봉의 후계자.
중학교때부터 학업도 그만둔채 팔봉선생밑에서 빵을 배웠다.
당연히 팔봉선생의 후계자는 자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어느 날 불쑥 어디서 굴러먹던 뼈다귀같은 놈이 나타나
팔봉선생의 관심을 받게 된다. 바로 탁구라는 놈이다.
후계자 자리에 위기를 느끼는 그는
사사건건 탁구의 행적에 파토를 내며 위기를 일으키는 인물이 된다.

박준희(14세, 22세 이후 女) 준수의 여동생.
어렸을적 가스폭발사고로 눈을 잃었다.
준수가 유일하게 진심을 다하고 자신의 속을 다 보여주는 상대.
눈은 멀었지만 마음으로 모든걸 보고 느끼는 속 깊은 여동생이다.
준수를 이해해주고 걱정해주며 안타까워하는 유일한 사람.
김탁구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그에 대한 설레임을 간직하게 된다.

그 외 제빵수련생들 소수.



<스토리>

“제 1 장,  서막, 인연의 시작” (1부 ~ 7부)
  - 1970년대 -

입성(入城)
삼화식품의 창립자인 구일중 회장의 생일파티날.
정재계는 물론 각계의 명품 인사들이 초청되어 성황을 이루며
각 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의 취재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초라한 택시 한대가 바로 그 삼화家의 대저택앞에 와서 멈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낡지만 고상한 양장을 차려입은 삼십대 후반의 여자와
그녀에게 손을 잡힌 열일곱살난 소년이 내려섰다.
여자는 아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무작정 손을 꼭 잡은채
취재기자들과 명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삼화저택안으로 들어섰다.
그 바람에 출입구에서는 작은 소란이 일어나고,
안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삼화家의 안주인 서인숙이 나서는데..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사모님. 저.. 미순입니다.”
순간 서인숙의 얼굴은 차갑게 변해버린다.
김미순.. 그녀는 17년전 남편 구일중이 교통사고를 당해 요양하던 시절
 그를 간호했던 간호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녀가 입덧하는걸 
봐버렸고, 서인숙은 그 뱃속의 아이가 남편의 아이라는것을 직감,
그 날로 그녀를 시골 보건소로 내쫓아버렸었다.
그런데 그녀가 17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것이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보란듯이 다 큰 아들의 
손을 잡고 말이다.
“이름이 탁굽니다. 회장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순간 기자들의 플랫쉬는 일제히 열일곱살의 소년 탁구를 향해 터졌고
덕분에 서인숙은 그 사진을 신문에 싣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각 신문사
마다 수많은 돈을 뿌려야했다.
하지만 사진을 막았다고 입소문까지 막을수는 없는 일.
구일중 회장의 숨겨진 아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입에서 입으로 
일파만파 퍼지면서 삼화家는 스캔들에 휩쓸리게 되고,
결국 탁구는 세간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서인숙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일중 회장의 의지로)
삼화家의 장남으로 입성하게 된다.

슬픈 모정(母情) 
탁구는 태어날때부터 아버지를 모른채 어머니 김미순과 단둘이 살았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이사를 자주 다녔는데 그 이유가
이사해서 정착할만하면 나타나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때문이었다.
탁구는 막연하게 그들이 빚쟁이들이라고만 생각했다.
때로는 그들이 나타나 집을 부숴놓기도 했고, 협박하기도 했었다.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강하게 버텼고, 그들로부터 어린 탁구를 보호했다.
그들이 나타난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벽참부터 짐을 싸들고 
또 정처없이 이사를 가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집안 살림은 형편없이 어려워졌고, 한 직장에서 오래 있을수
 없던 어머니는 점점 몸으로 때워야 하는 힘든 일용직을 전전해야했다. 
탁구 역시 수없이 전학을 다니며 그 때마다 텃새를 부리는 녀석들을
 상대해야했다. 자연히 주먹은 거칠어졌고 성적은 바닥을 맴돌았다.
그 날도 전학간지 얼마 안되는 학교에서 일진 녀석들을 1대 7로 붙어 
당당히 이기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아침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던 탁구는
그만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가게에서 파는 호빵을 훔쳐먹고 만다.
(탁구는 그 시절부터 유난히 호빵을 좋아했었다. 호빵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볼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흐뭇하고 행복해졌었다.
그러다 결국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일을 내버렸던것.)
그 일로 파출소까지 잡혀가게 된 탁구는 자기때문에 불려온
어머니를 본 순간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버리고 만다.
공장에서 일하던 옷을 그대로 입은채 사색이 되어 달려온 어머니는 
그저 잘못했다며 탁구를 대신해 허리를 굽혀 용서를 빌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는 공장에서 묻어온 실밥이 애처롭게 붙어있었다.
가게 주인과 경찰들은 행색이 남루한 어머니를 무시하듯 함부로 대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죄인처럼 아들을 대신해 머리를 조아리고 또 조아렸다.
그 날 밤, 당연히 회초리가 날아올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탁구앞에
어머니가 내민건 호빵이 가득 담긴 봉투였다.
"배고픈건 창피한게 아니다.
남에게 고개를 숙이는것도 창피한 일이 아니야. 
허나.. 남의 물건을 훔치는건 정말로 창피한 일이다.
창피한 일을 창피한줄도 모르고 저지르는건 건달이나 양아치들 할짓이지 
내 아들이 할짓이 아니야."
내 아들에 대한 믿음.. 
그것이 어머니를 강하게 했고 아들의 마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호빵을 건넨뒤 돌아앉아 공장에서 가져온 일감을
만지기 시작하셨다. 
그 뒤로 어머니가 사온 호빵을 먹기 시작하는 탁구는 그만 목이 메인다.
어머니에게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해서 눈물이 솟구쳤다.
싸나이 김탁구, 그렇게 눈물젖은 호빵을 먹으며 결심한다. 
절대로 두 번 다시 어머니에게 부끄러운 아들이 되지 않겠다고 말이다.
돌아앉은 어머니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귀한핏줄로 태어난 아들이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게 마음 아파서였다.
이젠 정말 아들을 보내야할때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그 때 또 다시 검은양복의 사내들이 나타나 온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달려든 탁구가 만신창이로 얻어맞는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의 결심은 굳어졌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오래된 단벌양장을 차려입더니 탁구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이 세상에서 안전하게 탁구를 지켜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로...
그 사람이 지켜준다면 탁구는 안전했다.
더 이상 배고파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는 바로 삼화家의 총수이자 탁구의 친부인 구일중이었다.

삼화... 
그 이름은 대한민국 사람에겐 애 어른 할것없이 너무나 친숙하고 유명한
 이름이다. 최초로 양산빵을 만들어내 가가호호 그 회사의 빵을 안먹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탁구가 훔쳐먹었던 그 눈물의 호빵도 바로 삼화식품의 빵이었다.
그런데 그 호빵을 만들어낸 회사 회장님이 내 아버지라고 한다.
내 아버지... 탁구는 그렇게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아버지에겐 다른 아내와 자식들이 있다는 것을.
자신의 어머니가 사실은 첩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탁구는 아버지와 처음보는 가족들에게 남겨졌고
그리고 어머니는 떠나버렸다. 
"밥 굶지 마라. 기죽지도 말구.. 
힘들어도 웃어넘기구 남자답게 털어버리는거다. 응?"
엄마가 그 집을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탁구에게 남긴 말이었다.

삼화家 사람들.
사실 삼화家에서 기죽지 않고 살기란 너무 힘든 일중에 하나였다.
그들은 잘 웃지 않았다. 대화도 별로 나누지 않았다.
주말 아침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각자 따로 놀았다.
언제나 각자 그들만의 스케쥴이 있었고, 각자 바빴다.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참견하고 신경쓰는걸 싫어했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고유 영역이 있어서 침범할수 없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따로 놀면서 뭔 놈에 집안 가칙(家則)은 또 그렇게 많은지.
사방팔방에 온통 해야할것들과 하지 말아야할것들 투성이다.
더 이해할수 없는건 집에서는 서로 말도 잘 안하던 식구들이
사람들이 모인 파티나 행사에서는 어쩜 그렇게 절친한척 연기를 하는지.
세상에 그토록 화목한 가족은 없는것처럼.. 말이다.
차갑고, 도도하고, 권위적이고, 게다가 연기력까지 갖춘 그들을
탁구는 도저히 이해할수도 따라할수도 없었다.
삼화家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상류집안일지 모르겠으나
혈기방자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탁구에겐 
세상 그 어느곳보다 갑갑하고 힘겨운 곳이었다.
그런 삼화가문의 식구들이 요즘들어 유일하게 갖게 된 유대관계가 
있다면 바로 탁구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심과 냉대였다.
매일같이 마주치는 서인숙의 따가운 눈총과 
누이들(자경, 자림)의 철저한 무시는 물론,
몇개월 어리다고는 하나 사실상 동갑내기인 이복동생 구마준의
노골적인 박대와 견제까지 참고 견디고 상대해야했다.
솔직히 세상 무서울거 없던 탁구였다.
주먹싸움이라면 학교 일진짱들을 때려눕힐만큼 강한 강철주먹에
어느 누구한테 머리한번 굽혀본적 없는 타고난 호걸체질인 그가
구마준같은 (주먹 한방이면 날아갈) 녀석한텐 번번히 당해줄수밖에
없었던건 아버지의 또 다른 아들이어서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웃어넘기고 남자답게 털어버리라고 해서였다.
(그럴수록 서인숙과 구마준은 더 속이 뒤틀린게 사실이지만,)
그 살벌하고 주눅드는 집안 분위기속에서 절대 기죽지도 않았던 이유도,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은 이유도 다 어머니의 당부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지난 십육년동안 혼자 몸으로 자기를 키워준 것에 대한 보답이자
엄마에 대한 의리라고 탁구는 믿었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마음놓고 숨을 쉴수 있는곳이 있었으니
새로 전학가게 된 학교였다.
거기서 그는 그의 첫사랑 신유경과 첫친구 박준수를 만난다.


첫사랑. 
사실 탁구가 유경을 처음 만난곳은 학교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탁구를 삼화家에 맡겨놓은뒤로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리자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한 탁구는 살던집에도 찾아가보고
어머니가 다니던 공장까지 찾아갔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행적에 대해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종적을 감춰버린 어머니는 한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그 날도 탁구는 혹시라도 소식을 들을수 없을까 해서 습관처럼
배회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느 후미진 골목에서 사내한테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있던 한 여학생을 보게 된다. 물론 절대 그냥 지나칠리 없는 
우리의 탁구, 정의의 사도처럼 다가서서 그 여학생을 구해주는데, 
그녀가 바로 신유경이었다.
(그녀에게 그토록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른 사내는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런데. 그런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에서 구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유경은 탁구에게 전혀 고마워하지 않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며 오히려 따끔하게 쏘아붙인뒤
그대로 돌아서서 가버린다.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싫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나 예뻤고, 도저히 다다를수 없을만큼 신비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이름도 알지 못한채 헤어진 그녀를 다시 만난곳은 바로 
탁구가 새로 전학간 학교였다.
뜻밖의 재회에 탁구도 놀랐지만 더 당황한쪽은 신유경이었다.
그녀는 현재 그 학교에서 퀸을 달리고 있었고, 
공부도 수석을 차지해 장학금까지 받고 있는 수재중의 수재였던 것. 
콧대도 높고 자존심도 강해 어느 누구도 (구마준마저도) 감히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그런데 새로 전학온 껄렁한 건달같은 전학생 녀석이 
자기가 아버지한테 맞고 산다는 얘기를 퍼뜨리기라도 하는 날엔 
높디 높은 신유경의 이름은 땅에 떨어지고 말것이다. 
당연히 유경은 좌불안석이 될수밖에 없었는데..
(탁구는 아직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씨성을 쓰고 있었다. 
구일중의 고집으로 삼화家에 받아들여졌지만 서인숙의 목숨 건 반대로 
아직 호적에는 정식으로 올리지 못한 상태였던것. 그래서 유경도 그가
 구일중의 아들이자 구마준의 이복형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결국 유경은 그의 입을 막는 조건으로 (사실 탁구는 아무 말도 퍼뜨릴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원하는 소원 세가지를 들어주기로 한다.
"말해봐. 첫번째 소원이 뭐야?"
"나랑 노는거."
유치했지만, 어쨌든 유경은 일요일 하루를 그와 놀아주었다.
"두번째 소원은 뭐야?“
"나랑 노는거."
그 다음주 일요일도 유경은 탁구와 놀아주었다.
"세번째는?"
"나랑 노는거."
솔직히 처음엔 껄렁한 재수 건달같은 녀석으로 생각했었다.
자신의 약점을 꼬투리 잡아 자기를 피곤하게 할거라고 생각했었다.
좀 더 짖궂은 소원을 얘기해 유경을 난처하게 할까봐 겁도 났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보다 신사다웠고 남자다웠다. 
같이 있으면 유쾌하고 사람을 즐겁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렇게 탁구와 어울리면서 유경은 자신이 이렇게 긴장하지 않고도 
누군가와 웃을수 있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학교 수재인 유경은 공부젬병인 탁구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종종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 시작하는데.
그런 두 사람을 절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탁구의 이복형제이자 영원한 숙적 구마준이었다.
사실 유경은 구마준에게도 로망이었다.
그러나 유경은 한번도 마준에게 곁을 주지 않았다.
쌀쌀맞았고 도도하게 굴었으며 언제나 냉정했다. 그럴수록 마준은
더 자극받았고 어떻게든 유경을 무너뜨려보고자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해왔던것. 그런데 그 개뼉다구같은 녀석(탁구)이 먼저 유경과
친해져버리다니.. 절대로 그 상황을 그냥 둘리 없는 구마준,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탁구와 유경을 괴롭히는데.
그럴즈음 탁구가 만나게 된 또 한사람의 친구가 있었다.
바로 박준수다. 

친구.. 그리고 배신.
조용한 성격의 준수가 탁구의 눈에 띈것은 순전히 구마준때문이었다.
준수는 삼화식품에 물건을 납품하는 중소기업 집 아들이라는 이유로
번번히 구마준패거리들한테 조롱당하고 이용당해 왔었다. 
그러다 탁구를 곤경에 빠뜨리는 계획에 본의 아니게 동참하게 되는데.
그런데 탁구는 의외로 준수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마준 패거리들한테 당하는 준수를 편들어주고, 친구로 대해주었다. 준수는 그런 탁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구마준패거
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용기를 내는데..
그럴 즈음 그의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난다. 
(준수父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인해 사채빚까지 끌어다 쓰면서
좀 더 마진을 많이 남길 욕심에 그만 식자제를 싸고 질이 나쁜것으로
몰래 바꿔치기 했다. 그것이 구일중에게 발각되면서 하루아침에 거래가
끊겨버리고 말았던것)
하루아침에 회사 문을 닫고 사채빚까지 지고 거리에 나앉게 된 준수의
부친은 결국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는데...
밤에 공부하려고 일어난 준수가 연탄 가스 냄새를 알아채고 거실로
나오는 순간 이미 가스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부모를 발견한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빠져나오려는 준수는 방에서 엄마를 찾는 여동생
목소리를 듣게 되고, 동생만 들춰업은채 가까스로 밖으로 나오면서
겨우 목숨은 구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동생은 시신경을 잃고 만다.
그 사고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두 남매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성금을 
모았지만 그마저도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공장장이었던 아저씨가 
몽땅 들고 튀어버렸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탁구가 끝까지 쫓아가 
공장장 아저씨를 잡지만 이미 돈은 다 써버린뒤였다. 
이제 준수가 기대고 의지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었다.
그리고 눈이 멀어버린 가엾은 동생까지 책임져야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불쌍한 두 남매에게 쏟아지던 관심은 딱 일주일동안만이었고, 
그 일주일이 지나자 서서히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불쌍히 생각하던 동네분들도 매일같이 돈을 꾸러오거나
외상으로 쌀을 얻어가는 준수를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우유며 신문이며 닥치는대로 배달하며 뛰어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
매일같이 불어나는 사채빚과 동생의 치료비로 턱없이 부족했던 것. 
바로 그 때 구마준이 준수를 찾아온다. 
그가 원하는건 한가지였다. 바로 김탁구를 학교에서 쫓아내버리자는것.
준수는 누구보다 좋아하는 친구였던 탁구를.. 
결국 가장 잔인하고 아픈 방법으로 배신하게 된다.
그리고 그 댓가로 동생과 당분간 살수 있는 작은 방한칸과 쌀 한가마니를 얻는다. 동생에게 흰쌀밥을 지어주면서 준수는 결심한다. 
두번 다시 돈 때문에 이런 비참한 기분은 느끼지 않을거라고.
언젠가는 그 돈 위에 올라가 부모님을 죽이고 친구를 배신하게 만든
그 집안 사람들에게 복수해주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준수의 평범했던 인생은 그 때부터 달라지기 시작한다.

한편, 탁구는 구마준과 준수가 합작으로 벌인 음모와 배신으로 인해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만큼 곤경에 빠져버리게 되는데..
그 바람에 삼화家에서의 입지 역시 상당히 불편해진 상황이 되버리고 
만다. 그 때 그 위기에서 탁구를 구해주러 나타난 구원투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구일중 회장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아들.
김미순이 탁구를 데리고 나타났을때만 해도 구일중은 
탁구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저 자기의 핏줄이라는 책임과 의무감에 거두기로 했을뿐.
(물론 탁구와 시선이 마주쳤을때 알수 없는 끌림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렇게 탁구를 집에 들였지만 서인숙의 반발이 너무 강했다.
그녀는 절대로 탁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다른 아내들처럼 바가지를 긁었더라면 상대하기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인숙은 끝까지 품위를 지켰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처음부터 사랑해서 한 결혼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를 위해, 가문을 위해 좀 더 견고한 규벌관계를 
조성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아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구일중은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연달아 둘을 낳으면서 두 사람은 
더 서먹해졌고.. 그러던 차에 김미숙을 만나 탁구가 생겼다)
탁구가 집안에 들어온 뒤로 서인숙과 마준에게 여러가지 곤혹을
겪는다는걸 알면서도 모른척 할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사내가 나서서 왈가왈부하는것은 못난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언제나 당하기만 하는 탁구가 
조금은 안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탁구에 대해 다시 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인숙이 아끼던 도자기를 그만 구마준이 실수로 깨뜨리는 사고가 발생.
위기를 모면키 위해 청소하는 아랫사람에게 뒤집어씌워버린 것이다.
갚을 능력도 없는 아랫사람이 옴팡 뒤집어쓰고 쫓겨날 위기에 처했을때
그를 대신해 나서준 사람이 바로 탁구였다.
"아주머니한텐 생계가 달린 일이지만.. 
나는 그냥 된탕 한번 혼나버리면 끝나는 일이잖아요. 괜찮아요."
서인숙의 분노에서 겨우 풀려난 탁구가 죄를 뒤집어쓸뻔한 아랫사람에게
하는 위로였다. 그리고 구일중이 그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던것.
이제 나이 겨우 열일곱이지만 탁구는 마음으로 사람을 배려할줄 아는 
녀석이었고, 그렇게 소리없이 삼화家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탁구가 왠지 기특해졌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로 탁구를 대하는 구일중의 태도는 달라졌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에 믿음이 더해졌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일도
많아졌다. 그 녀석과 얘기하면서 종종 웃는 일도 생겼다.
다소 거칠고 엉뚱하지만 진심이 있는 녀석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탁구의 사람됨을 즐거워하고 그에 대한 신뢰가 깊어질수록
그 반대편에서 바라보는 구마준의 질투와 분노도 깊어져갔다.
그에겐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눈빛과 미소, 그리고 대화들이
구일중과 탁구 사이에 오가고 있었다.
자기는 무서워 말조차 걸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그 녀석은 너무나
서스럼없이 다가서고 말을 건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무엇보다 참을수 없는건 그 개뼉다구 같은 녀석이 너무나도 아버지를
닮았다는 거였다. 눈매며, 웃는 미소하며, 걷는 뒷태까지...
도저히 봐줄수가 없었다. 참아줄수가 없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견제를 하고 모함하며 곤경에 빠뜨리는데.
그러던 어느 날 탁구에게 덮어씌우려던 모함을 아버지에게 직통으로
들켜버리고 만다. 구일중의 엄한 눈빛과 꾸중은 마준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고, 그 사건은 마준으로 하여금 탁구를 철저히 짓밟아
삼화家에서 쫓아버리겠다는 잔인한 결심을 하게 만드는데.
마준은 일단 준수를 돈으로 회유해 음모를 꾸민뒤 탁구를 학교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한다. 아니, 거의 성공할뻔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탁구를 구원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구일중이었다. 구일중은 아들의 결백을 믿었다.
하지만 상처받은 탁구가 왠지 안쓰럽기도 했다.
"자고로 사내란.. 사적인 감정에 너무 치우치면 큰그릇이 못된다.
나 자신보다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거
그것이 바로 사나이로 태어난 진짜 이유고 의무고 낭만이지.
나는 보릿고개를 넘길때마다 먹을게 없어 고생하는 국민들을 위해 
양산빵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했었다. 대한민국 사람중에 누구라도 
배고픈 사람이 없게 만드는거..  그게 나의 애국이자 나의 꿈이다."
가까스로 퇴학은 면한채 정학처분을 받은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구일중이 해준 말이다.
지금 일어나는 작은 시련 때문에 탁구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아버지의 따뜻한 충고였던것.
그 때 그 말을 하는 구일중의 눈빛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고
아버지의 진심을 느낀 탁구는 감동받았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일으킨 기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품게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유대감이 형성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구마준은 그런 아버지와 탁구를 보면서 마음속 증오가 점점 더
깊어져만 가는데...

증오, 그리고 상처.
처음부터 그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냥 갖고 노는 기분으로 골려주고 골탕먹이고 함정에 빠뜨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개뼉다귀같은 자식한테 밀리고, 비교당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녀석을 깔아뭉개면 뭉갤수록 그 녀석은
잡초처럼 당당히 다시 일어섰고, 그럴수록 마준은 기분이 더러워졌다.
서인숙이라는 절대 지원군이 있었지만 아버지의 지지를 받는 탁구에 
비하자면 양에 차지 않았다. 특히나 아버지와 탁구가 친밀감 있는
눈빛을 주고 받을땐 미쳐버리고 싶을만큼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상실감, 박탈감, 서운함과 질투, 그리고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데 신유경까지 그 녀석한테 완전 맛이 가버렸다.
자기가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가,
오히려 자기한텐 수치심까지 느끼게 했던 그녀가 탁구를 좋아하고 있다.
탁구에 대한 적개심은 이제 더 이상 장난이 아니었다.
마준은 전쟁을 선포하는 기분으로 탁구를 몰아부치기 시작한다.
돈을 이용하고, 친구를 이용하고, 그가 할수 있는 모든것들을 동원해
탁구를 위기에 빠뜨리고 곤경에 빠뜨렸다. 
하지만 녀석은 그럴때마다 별일 아니라는듯 툭툭 털고 일어서서 
남자답게 씩 한번 웃어버리고 만다. 
차라리 같이 악다구니를 쓰고, 열내고, 어쩔줄 몰라했다면 조금쯤
마음이 통쾌하고 후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탁구는 그러지 않았다.
그게 더 마준을 열받게 했다.
그렇게 탁구에게 이를 갈고 있을때 구마준에게 흥미로운 얘기가
흘러 들어온다. 바로 신유경의 아버지에 관한 소문이었다.
그는 술주정뱅이에 도박빚때문에 거의 인간이하의 폐인으로 살고
있다는 정보였다. 드디어 신유경을 탁구에게서 떨어뜨려놓을 기회가
구마준의 손에 들어온것이다. 그런 부류의 인간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마준은 그 나이에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미 마준은 아무도 모르게
패거리들을 데리고 유곽같은곳에 드나든적이 있을 정도였다.)
결국 그는 자신의 돈과 그 돈이 필요한 유경의 아버지를 이용해
신유경을 옴짝달쌀못하도록 묶어두는데 성공하는데.
처음엔 그저 탁구에게 아픈 상처를 주고 배신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신유경을 갖고 싶어진것이다.

실제로 신유경은 아버지로 인해 이미 코너에 몰릴대로 몰린 상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집애가 공부는 해서 뭐하냐며 술집이라도 나가 돈을 벌어오라고 윽박지르기를 밥먹듯 했었다. 한번은 도박빚 때문에 
진짜로 유경이 팔려갈뻔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사고만 뻥뻥치던 유경의 아버지가 그만 구마준의 꾐에 빠져
수습할수 없는 거대도박에 빠져버렸고, 신유경이 남몰래 과외하면서
짬짬이 모아둔 대학등록금마저 찾아내 몽땅 날려버린것.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학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며 유경을 찾아댔다.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공든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유경은 아버지에게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실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따위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유경에게 구마준은 달콤한 제의를 한다. 
자기 여자가 되면, 유경이 원하는 모든걸 들어주겠다고 말이다.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대학에 보내달라면 대학에 보내주고,
아버지를 떠나고 싶다면 떠나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유경이 너 정도라면 미국으로 유학도 보내줄수 있다고 말이다.
구마준이 제의한 그 모든것들은 유경이 너무나도 바라던 것들이었다.
돈, 유학, 출세, 성공.. 그리고 가족을 버리는 것..!
하지만 아직 유경은 선뜻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다.
마음 한쪽에서 뭔가 큰 죄를 짓는것 같은 기분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탁구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탁구는 (유경은 그 때까지도 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녀가 필요로 하는것들을 하나도 해줄수가 없었다.
쉽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그녀에게 
계속해서 쏟아지는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탁구를 찾아가는 그녀,
하지만 탁구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유경은 비참한 기분으로 구마준을 찾아갈수 밖에 없어지는데...
바로 그 시간.
탁구는 그 동안 그토록 찾아헤매던 어머니에 대한 충격적인 비보를 
전해듣는다. 그렇게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비참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죽은채로 방치된지 이주일이 넘는것같다고 했다.
부패되어 얼굴을 확인할수 없었으나 입은 옷과 가지고 있는 소지품
전부 다 탁구의 어머니것으로 판명되면서 탁구는 오열하는데...
(그 때 당시 유전자 검식이라거나 이런 과학수사시스템 없이 오로지
혈액형과 입고 있는 옷가지같은것으로 정황증거를 잡던 시절이었다.)

억울하고 슬픈 죽음이었다. 
그 죽음뒤에 너무나 많은 의문들이 있었지만 밝혀낼 길이 없었다.
이유를 밝히기 위해 뛰어다닐수록 진실은 계속 막히고 차단되었다.
그의 나이 이제 겨우 열일곱살이었고 
보이지 않는 힘을 상대로 그가 할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그러면서 탁구는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다.
자기가 발을 들여놓은 이 삼화家라는 곳에서의 이상한 기류들을.
화려하고 격조있어 보이는 상류가문 그 이면에 흐르는 무서운 암투와 
위험한 돈의 힘을 말이다. 

누명
어머니만 탁구의 곁을 떠난게 아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루고 학교로 돌아오자 신유경마저 완전히 
딴사람처럼 변해있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이젠 예전처럼 지낼수 없다는 말만 들었을뿐이었다.
그리던 중, 신유경이 변하게 된 배후에 구마준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준수의 배신으로 이미 충분히 마음을 다친 탁구였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가슴아프게 사랑한 신유경마저 구마준때문에
차갑게 돌아선것을 알면서 탁구는 참고 참았던 분노가 폭발해
구마준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만다. 
그리고 그 한대의 주먹이 탁구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게 되는 
기폭제가 되고 마는데.

사실 서인숙은 구일중때문에 요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탁구의 친모인 김미순의 장례식뒤로 탁구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키려고
강하게 밀어부치기 시작했던 것. 
서인숙은 절대로 탁구를 구씨의 호적에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 서출따위를 삼화家의 후계자로 인정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서출따위가 감히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주먹으로 쳐서
기절을 시켜버린것이다.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다. 
결국 서인숙은 구마준을 대신해 탁구를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는데.
그것은 너무나 무자비했고, 잔인했으며 가혹한 음모였다.
서인숙의 수족이 되어 암암리에 움직여주는 한승재는 특히나 
그런 역할을맡아 아주 제대로 수행해내는 인물이었다.
결국 그렇게 열일곱살의 소년은 서인숙과 한승재라는 두 사람의 음모와
함정에 빠져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쓰기에 이르는데.

그 때 탁구는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뒤로 줄 곧 
어머니와 살던 시절 툭하면 나타나 괴롭히던 검은양복의 사내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누군가의 청부와 사주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쩌면 어머니의 죽음에도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을거라고 생각한 탁구가 그들을 상대로 진실을 캐내던 끝에
결국 두목과 주먹다툼이 일어나고 만다.
방어를 위해 그저 서너대 친게 전부였는데
그 다음 날 아침, 그 두목이라는 자가 죽은채 발견된것!
그것도 칼에 찔려서 말이다. 
칼에는 탁구의 지문이 찍혀있었고, 모든 정황증거들이 전부 다
탁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탁구가 그 두목이라는 자를 죽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증인인 조진구라는 녀석도 감쪽같이 증발해버리고 말았다)
구일중마저도 어떻게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서인숙과 한승재가 머리를 맞대고 파놓은 함정은 너무나 정교해서,
처음에는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구일중조차도
점점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자신을 믿어줬던 아버지마저 흔들려버리자 탁구는 무너지듯 절망한다.
그러면서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마음속의 분노가 물밀듯 밀려왔다.
오직 아들 잘되기만 바라며 피끓는 아픔을 뒤로한 채 탁구를 삼화家에 
보냈건만.. 결국 탁구는 어머니가 바라던 꿈도 채 피워보지 못한채 
어머니를 잃고, 친구를 잃고, 첫사랑을 잃었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아버지마저 탁구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탁구를 삼화家에서 내치고 만다.
자신의 결백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의 편이 없었다.
결국 강력범죄이긴 하지만 초범이고 십대라는 점을 감안,
탁구는 8년형에 처해진 뒤 수감된다.
그렇게 탁구의 유년 시절은 분노와 절망속으로 잠겨버린다.




"제 2 장,  성장기(成長期)." (8부 ~ 26부)
  - 1980년대 -

「하나님이 나를 절벽끝으로 가라 하셨다.
떨어질까봐 두려워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좀 더 뒤로 물러서라고 하셨다.
더 이상 한걸음도 더 물러설수 없을만큼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데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갑자기 나를 낭떠러지 아래로 밀어버리셨다.
이젠 정말 죽는구나라고 생각한 순간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에게 날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것을.
나는 내가 서 있던 곳보다 훨씬 더 높은곳으로 날아오를수 있었다.」

절망의 끝.
탁구가 수감된지 8년째 되는 크리스마스. 
교도소 앞에는 탁구를 기다리는 고급 세단 한대가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교도소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바로 하루 전날 다른 크리스마스 특사들과 함께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몇시간이 더 흐른뒤였다.
도대체 탁구는 어디로 갔을까.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고를 전해들은 구일중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이제 구일중의 나이도 어느덧 50대 중반으로 접어들었고,
희끗한 흰머리에 깊게 패인 주름살까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내뱉는 그의 시름도 깊어졌다. 
사업때문이 아니었다. 사람때문이었다.
88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바야흐로 삼화식품은 중흥기를 맞고 있었다.
생산공장을 열배가까이 늘렸고, 크림빵, 호빵에 이어 보름달빵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구일중도 그만큼 바빠졌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어 회사를 뒷받쳐줄 사람이 없었다.
마준이 녀석은 아무리 지켜봐도 영 구일중의 마음에 차지 않았다.
공부를 시키려고 미국까지 유학을 보내줬더니 흥청망청 돈이나 뿌리고
여자문제나 일으키면서 말썽만 피워대다가 결국 구일중의 지시에 의해
 끌려오다시피 서울로 다시 들어와 있는 상태. 
그런데도 여전히 정신 못차린채 서인숙의 후광을 등에 업고 
되는대로 흥청망청 제 맘껏 살고 있는 중이었다. 
능력도 없고, 노력도 안하면서 그저 욕심만 가득한 마준이 
구일중은 못마땅했다. 마준에 대한 못마땅함이 커질수록 그의 마음은 
언제나 자신의 손으로 내친 탁구에 대한 아쉬움으로 괴로웠다.
그 때 좀 더 그 녀석을 믿어주는거였어.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었다.
그 어떤 후회로도 지나간 탁구의 8년을 찾아줄수 없었다.
그렇게 구일중이 시름에 잠긴 그 시각,
서울로부터 한시간쯤 떨어진 경기도 어느 작은 읍내 터미널에
후줄근한 행색에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한 젊은이가 나타난다.
바로 스물 다섯살이 된 청년 김탁구였다.
열일곱살의 그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차갑고, 싸늘하고, 분노로 가득한 눈빛만 남아있었다.
그가 지금 이 작은 읍내에 나타난건 조진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수감돼 있는 동안 그 안에서 조진구에 대해 이사람 저사람 알아본 끝에
경기도 어느 작은 읍내에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얻었던 것)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줄 단 한명의 증인을 찾아내서 그의 입을 연 다음,
거기서부터 엉켜버린 이 모든 실타래를 풀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조진구를 수소문하기 시작하는데.

절대미각의 그녀를 만나다.
그 시간 다른 한편에서는 맞선을 보러 나온 양미순이 
면서기 총각과 심각하게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미순과 면서기 총각 앞에는 각각 다섯잔의 커피가 놓여져 있었고,
그 두 사람 주위로는 다방의 손님들로 보이는 열댓명의 아저씨들과 
다방마담, 여종업원까지 숨 죽인채 그 두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미순과 면서기 청년은 지금 각자 앞에 있는 다섯잔의 커피중에서
아주 미량의 소금이 들어간 커피 한잔을 찾아내는 내기를 하고 있었다.
(원래 극소량의 소금을 첨가하면 더 달아지는 효과 때문에 
웬만한 미각으로는 그 극소량의 소금맛을 찾아내기가 힘들다)
지는 사람이 오늘 다방에 온 손님들의 커피값을 다 내야하는,
그야말로 손에 땀이 나도록 거금이 걸린 내기였다.
면서기는 두번의 기회 모두 다 실패,
결국 양미순은 한번에 소금이 들어간 커피를 찾아내는데 성공.
다방안의 모든 아저씨들로부터 환호를 받으며 기뻐하는데,
"사기치구 있네!" 라며 툭 내뱉는 사내가 있었으니, 
조진구를 수소문하러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된 김탁구였다. 
자신의 절대미각을 사기취급당한 양미순은 탁구와 한판 거하게 맞붙고,
그 틈을 타 면서기 총각은 커피값도 계산하지 않고 줄행랑을 쳐버린다.
맞선을 망친건 상관없었지만 맞선남 대신 내기 커피값을 옴팡 뒤집어쓴
미순은 열받아 돌아가시기 직전! 
"대체 너 누구야! 어디서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야!"
"나? 방금 출소해서 아직 따끈따끈한 살인 전과자." 
순간 그 말 한마디로 모든 상황은 순식간에 종료.
미순은 이내 조용히 커피 스무잔값을 계산한뒤 다방을 나가버린다.
(그렇게 사기치는거라며 무시하던 미순의 그 절대미각 덕분에
탁구는 훗날 목숨을 구하게 된다)
미순뿐만이 아니었다. 탁구가 살인전과자라고 말한 순간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슬금슬금 피했다.
탁구는 그게 바로 자신의 현실임을 씁쓸하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첫인상을 서로 더럽게 구긴 미순과의 첫만남을 뒤로하고 
다시 조진구를 수소문 하는 탁구. 
그러면서 그 작은 읍내는 살인전과자가 나타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음 살인목표를 찾아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그 때 탁구의 뒤를 조용히 뒤쫓는 무리들이 나타난다.
바로 한승재가 후한을 없게 하기 위해 탁구에게 붙여둔 사내들이다.
그들은 탁구가 조진구와 만나지 못하도록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조진구를 수소문 하던 탁구는 그 사내들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게되고,
일단 맞서 싸우다가 나타난 경찰들덕분에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성공!
허나 이미 중상을 입은 탁구는 근처 몸을 숨길만한 곳으로 들어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마는데.
그런 탁구를 발견한것이 바로 그 절대미각의 처녀, 양미순이었다.
밀가루를 쌓아놓는 창고에 들어갔다가 
그 안에서 반쯤 죽어가던 탁구를 발견한것.
살인전과자가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진것을 보고 처음엔 그대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러나 웬일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죽어가는 탁구를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할수 없이 그를 짊어지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는데.

그리고 인생을 바꿔놓은 평생 스승, 팔봉을 만나다.
그 집은 따뜻한 온기로 가득했다.
몇날 며칠을 거기 누워서 보살핌을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모든 시름이 사라질만큼 따뜻했고 좋은 냄새(빵굽는 냄새)가 났다.
그가 기력을 차려 겨우 앉아서 죽을 먹을수 있게 된건
미순이가 탁구를 집에 데려온지 보름이 지나서였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쇠약해진 탁구는 미순과 미순의 부모로부터
따뜻하고 정성어린 간호를 받으며 조금씩 기력을 찾아갔다.
(물론 미순은 언제나 툴툴거리고 탁구를 막 대했지만..)
미순의 부모님은 선대부터 내려오는 제빵과자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오래되고, 허름한 가게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와보니 규모도 컸고, 무엇보다 그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여섯명이나 된다는게 놀라웠다.
대체 이 허름한 가게에 왜 종업원이 여섯명씩이나 필요한걸까? 했는데
알고보니 그들은 모두 그 빵집의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수하생들이었던 것. 이 곳이 이렇게 대단한곳인가 감탄하는데, 그 때 
그 수하생들틈에 낯이 익은 사내를 발견한다. 바로 조진구였다.
순간 수그러들었던 탁구의 분노가 다시 폭발하면서
회복되지도 않은 몸으로 조진구를 향해 달려드는데.
그런데 조진구는 그저 탁구의 주먹을 맞고만 있을뿐 찍소리도 내지 않았다. 알고보니 그는 실어증에 걸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
(아니, 못한다기 보다 그는 어떤말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조진구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탁구는 그로부터 무언가
말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 계속 주먹을 날린다.
금방이라도 죽일듯 살의를 품고 주먹을 날리는데 바로 그 때
지팡이 하나가 탁구의 어깨를 내리친다.  
"이런 불한당같은 놈을 봤나! 내 신성한 제빵실에서 감히 주먹질을 해?
이런 쳐맞어죽을놈! 당장 내 집에서 나가아아아!" 
아무도 말리지 못했던 그 싸움을 지팡이 하나로 멈추게 한 장본인은 
바로 미순의 조부이자 그 제빵점의 대주(大主)인 팔봉선생이었다.
추상같은 눈빛과 대쪽같은 기개로 불호령을 내린 그는
분노와 악의로 가득한 탁구마저 움찔하게 만드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흰눈이 내리는 영하 날씨밖으로 내쫓겨버리는 탁구..
그것이 탁구와 팔봉선생의 첫만남이었다.
밖으로 내쫓긴 탁구는 얼어죽기 일보직전 마음씨 착한 양인목(미순父)의
간청으로 겨우 다시 집안으로 들어올수 있었고,
오갈데 없는 신세라는걸 안 양인목의 주선에 의해 날이 풀릴때까지만
다른 수하생들과 함께 머물수 있도록 간신히 허락받을수 있게된다.
물론 탁구의 목적은 조진구의 입을 열게 해서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이 누구때문인지를 밝혀내는것밖에 없었다.
조진구가 입을 열때까지 옆에 붙어 있으면서 
그 녀석의 피를 바싹바싹 말려주겠다고 말이다. 그랬는데,
하루하루 날이 가고, 팔봉선생과 수하생들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그는 팔봉선생이라는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게 되고,
조금씩 그의 인생관에 동화되어간다.
그러면서 팔봉선생이 가르치는 빵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는데..
하지만 팔봉선생은 탁구에 대해 너무나 냉정하고 엄격했다.
그렇게 주먹이나 쓰는 놈, 더군다나 눈빛에 살기가 들어있는 녀석한텐
절대로 먹는 음식 만드는법을 가르쳐줄 생각이 없다고 했다.
봄이 되서 날이 풀리는 즉시, 이 제빵집을 떠나라고 말이다.
이제 겨울도 다 지나고 머지않아 봄이 시작될텐데,
그렇게 되면 탁구는 여지없이 그 제빵집에서 쫓겨나게 될판이다.
처음 그 집에 남아있고 싶었던건 순전히 조진구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다는 조금 더 다른 이유가 생겼다. 
이 집의 온기가 좋았다. 이 집에서 나는 빵냄새가 좋았다.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그 제빵집 사람들의 소리가 좋았다.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 팔봉선생의 눈밖에 난 사람은 절대 만회할 수가 없었다.
한번 정하면 절대 번복하지 않는 팔봉선생의 대쪽같은 성품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팔봉의 수하생중 한명이 급성맹장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발생한다. 
마침 졸업시즌에 봄학기 시작까지 겹쳐 제빵집은 말 그대로 전쟁터처럼 
바빴다. 결국 얼떨결에 탁구가 그 빈자리를 대신하게 되는데.
탁구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 일을 열심히 해낸다.
물론 처음 하는 일이라 이런저런 사고도 생기고 말썽도 생기지만, 
성심성의껏 수습해나가는 탁구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고 열심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팔봉은 처음으로 탁구라는 놈의 싹수가 생각보다
괜찮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다급한 일주일이 지나고, 맹장수술을 마친 수하생이 돌아오면서
탁구의 역할도 끝이 난다. 드디어 짐을 싸서 떠나야할 날이 되는데
그 때 팔봉선생이 탁구를 불러앉힌다.
"두 가지만 약속하거라. 
두 번 다시 주먹을 쓰지 않겠다. 마음속에 화를 품지 않겠다.
그 두 가지를 지킬수 있다면 널 받아주마."
주먹을 쓰는 손으로 사람에게 먹는 음식을 만들게 할수 없으며
마음에 화를 품는 녀석의 그릇에 어떤 가르침도 담을수 없다.
세상 어느 누구도 과거 없는 사람 없고, 사연 없는 사람 없다. 
마음을 비워라.
거창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하는것도 다 부질없는 짓이다.
중요한것은 지금을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거다... 
라는것이 팔봉선생의 지론이었던 것. 
그 앞에 탁구는 무릎을 꿇고 만다.
"죄송합니다 으르신. 
저는.. 지금 그 약속을 지킬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킬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으르신!" 
순간 탁구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고,
한동안 말없이 탁구를 내려다보던 팔봉은 
조용히 탁구에게 이 집에 남아도 좋다는 허락을 한다.
그렇게 해서 탁구는 팔봉의 집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새출발.
처음에 미순은 탁구가 영 탐탁치 않았다. 
솔직히 그런 녀석을 왜 수하생으로 받아들인건지 할아버지의 결정이 
영 못마땅했다. 하지만 탁구는 다시 태어난것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한달내내 밀가루 뒤집어써가며 푸대 나르는 일만 하는데도 행복해
보였다. 팔봉이 처음 밀가루 반죽을 해보라고 시켰을때 그 녀석은
마치 장원급제라도 한것마냥 감격해했었다. 
도대체 왜 그런거에 저렇게 감동하고 기뻐하는지 이해할수 없었다.
원래 제빵사들의 위계질서는 군대의 위계질서보다 더 엄격하고 빡쎄다.
탁구도 예외는 아니다. 차상태조장한테 맨날 혼나고, 벌받고, 심지어
발로 걷어차이며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 녀석은 언제나
실실 웃어대며 콧노래를 흥얼거릴정도였다. 미친놈 같았다..
사실이 그랬다. 탁구는 완전히 빵에 미쳐가기 시작했던거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화덕에 불을 피우고, 그 안에서 구워지는 빵을
보면서 완전히 그 매력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마치 빵과 새롭게 연애를 시작한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 냄새, 그 모양들이 어찌나 황홀하고 아름다운지.. 
그 향기에 그 매력에 점점 푹 빠져들면서 그는 점점 더 행복해져갔다.
(여전히 조진구와는 불편하고 쎄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그러면서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빵에 대해 공부했다.
팔봉이 말하는 토씨 하나까지 다 머릿속에 암기하고 새겨두었다.
그렇게 빵을 만드는 행복에 푹 빠져 있던 탁구,
그런 탁구에게 제빵사로서의 첫번째 시련이 닥친다.
알고 보니 그는 타고난 미치(味癡)였던것.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매운맛등 기초적인 맛은 느낄수 있는데
그 사이 사이에 미묘한 맛의 차이들은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같은 단맛이라도 설탕맛과 꿀맛이 엄연히 다른데, 
그 다른것을 탁구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오로지 단맛만 감지할뿐.
그림 그리는 화가가 색맹이라서 색을 구분못하는것과 같은 장애였던것)
함께 공부중인 수련생들은 희망이 없다며 탁구에게 포기하라고 하지만
그러나 탁구는 그럴수가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꿈이라는걸 가져본 그였다.
그 꿈을 이루겠다는 희망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이제 겨우 알았는데
이렇게 시작하자마자 포기할순 없었다.
그 때부터 탁구의 눈물겨운 고군분투는 시작된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그를 도와줄수가 없었다.
언제나 화두처럼 나아갈 길을 제시하던 팔봉선생마저
그런 탁구를 조용히 지켜볼뿐.
그렇게 혼자 외롭게 절망과 맞서 어떻게든 미치(味癡)장애를 극복하려고
미친듯이 몸부림치는 탁구를 보다 못해 나서준건 다름 아닌 미순이었다.
"입으로 안되면 손으로 해."
"???"
"어차피 맛을 내는건 혀가 아니라 손이잖아. 
손으로 주무르고 손으로 배합하고, 손으로 구워내고..
그러니 맛도 손으로 익히면 되는거야."
그러더니 미순은 절대 손감각을 이용해 맛을 보지 않고 손감각으로만
정확하게 그 맛을 내는 시범을 보여준다. 
탁구는 캄캄했던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그 때부터 탁구는 미순이가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니면서 
자신이 배합한것의 맛을 미순에게 맛보게 한다.
(사기라고 무시했던 미순의 절대미각의 수준은 실로 놀라웠다. 그렇게
계속 귀찮게 맛을 물어보고 배합을 물어보면서 미순과 탁구 사이에는
티격태격 미운정 고운정이 들기 시작한다.
실로 두 사람의 멜로가 시작되는 시점이긴 하지만,
그 둘은 전혀 그 사실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천번 수만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손으로 맛을 익혀가게 된 탁구는 드디어 자신이 손으로 배합한 그 맛을
머릿속에서 (마치 연산으로 수식을 풀어내듯) 그려낼수 있게 되는데.
매주 한번씩 열리는 수하생들 시식회에서 처음으로 구워낸 빵을 내놓게 된 탁구는, 팔봉으로부터 "제법이구나"라는 평을 듣기에 이른다.
그 한마디는 남들에겐 그저 평범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팔봉의 수하생들에겐 일년에 한번 들을까말까한 최고의 칭찬이었다.
동료 수하생들의 격려와 질투를 한몸에 받은 탁구는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가장 먼저 미순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러 가는데
그런데 미순은 짐을 싸고 있었다.
품평회에서 팔봉으로부터 최악의 평을 듣고 말았던것.
빵신동으로 불리웠던 다섯살때부터 언제나 할아버지의 칭찬을 듣기 위해
최고의 빵을 만들려고 노력해온 그녀였다.
그러나 점점 팔봉은 그녀의 빵스타일에 노골적으로 못마땅함을 내비쳤고
참고 참아오던 미순의 불만이 결국 한꺼번에 터져버리고 말았다.
탁구는 어떻게든 그녀를 붙잡아보려 했지만 미순의 결심은 확고했다.
서울에서 최고의 블랑제가 돼보이겠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인정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최고가 될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미순은 팔봉제빵과자점을 떠나버리고 마는데..
사실 팔봉선생은 누구보다 미순을 아끼고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어느 순간부턴가 빵의 진정성을 잃고, 
화려한 미장센만 추구하는것이 못마땅해 더 야단치고 엄하게 대했던건데
미순이 그런 팔봉의 속을 헤아리지 못한채 그만 뛰쳐나가버린것이다.
팔봉은 미순에게 펼쳐질 힘든 시간을 예감했지만, 그러나 잡지 않았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사람은 안다. 
인생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게 없다는것을..
그렇게 미순은 서울로 떠나고,
탁구의 가슴 한켠에는 그녀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오는데.

재회.
환골탈태라는 말이 있다. 
얼굴이 훨씬 아름다워지고 환하게 되어서 딴사람처럼 된다는 뜻인데
지금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신유경이 바로 그러했다.
안그래도 학교 퀸이던 그녀는 외국유학생활을 하면서 더 세련되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삼화식품과 경쟁사인 최고식품의
전략비서실에 스카웃 제의를 받고 입국하는 길이었다.
8년전, 그녀는 탁구를 버리는 대신 유학을 보내준다는 구마준의 약속을
얻어냈었다. 그리고 구마준의 원하는 모든걸 허락했었다. 
하지만 탁구가 살인죄를 선고받고 수감된 뒤 구마준은 
볼 장 다 본 신유경에게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모든걸 잃게 되어버린 신유경은이판사판으로 서인숙을 찾아갔었다.
아들이 저지른 일이니 어쩔수 없이 뒷처리를 해주면서도 서인숙은 
나이 어린 신유경에게 심한 모욕과 굴욕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유경은 참았다. 참지 않으면 달리 살아갈 길이 없었다. 
비굴하게 구걸받듯 유학을 떠난 유경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성공이 곧 서인숙과 구마준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8년만에 서울에 돌아와 구마준앞에 다시 나타난 신유경은
너무나 아름답고 세련되고, 기품이 넘쳤으며 자신만만했다.
커져버린 야심만큼 치명적인 여자가 되어 돌아온것이다.
사실 신유경의 야망은 최고유통의 전략비서실자리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삼화식품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유일한 후계자인 구마준에게로 돌아온것이다.
구마준이라면 얼마든지 자기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었으니까.
유경의 계산대로 마준은 그녀에게 8년전과 똑같은 설레임을 느낀다.
아니 그보다 좀 더 강렬하고 짜릿한 느낌을 느낀다.
하지만 아무리 날라리같은 구마준이라도 서인숙의 피를 물려받았다.
다분히 계산적이고 치밀하며 게다가 질투와 욕심이 많아서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것.
정략적으로 구마준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신유경과
그런 그녀의 야심을 꿰뚫어보면서도 싫지 않은듯 밀고 당기기를 하는
구마준의 야릇한 신경전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서인숙까지 끼어들면서 팽팽한 접전이 벌어진다.
그렇게 세사람의 감정싸움이 점입가경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
신유경은 뜻하지 않은 얼굴과 재회하게 된다.
그녀에게도 첫사랑이었던 남자, 바로 김탁구였다.
미순을 찾으러 온 탁구과 재회하게 된 유경은 그를 다시 만나면서
아직 마음속에 그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워하는데.

한편 유경과 탁구가 재회한 사실을 알게 되는 구마준은
그 두 사람이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화가 났지만
그 보다는 탁구가 생각보다 멀쩡해보인다는것에 묘한 충격을 받는다.
구마준의 상상대로라면 탁구는 8년동안 복역한 죄수의 모습이어야 했다.
출소했다 하더라도 오갈데 없는 폐인의 모습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 녀석은 너무나 괜찮아 보였다.
무엇보다 그 녀석의 눈빛에서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이 느껴졌다.
그것은 마준이 가장 싫어하는 눈빛이었다.
구마준은 그런 탁구의 모습을 본 순간 심사가 뒤틀렸다. 화가 났다.
좀 더 처참하게 망가뜨려주고 싶은 못된 마음에 발동이 걸렸다.
이제껏 술과 여자와 향락에 빠져 살던 구마준은 
그날로부터 그 모든걸 전폐하고 탁구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한다.
출소후에 그 녀석이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누가 그 녀석을 돌봐주고 있는지.
그러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이 팔봉제빵점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양미순에 대해서도 알아낸다.

위험한 거래.
서울에 상경한 미순이 제빵점에 취직하는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팔봉선생의 수하생이었다는 이력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던것.
(팔봉선생의 이름이 그 업계에서 상당히 전설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미순은 그 때 처음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서울살이라는게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다.
블랑제를 꿈꾸는 그들의 경쟁은 장난이 아니었다. 훨씬 더 살벌하고 
치열했으며 의리나 인정같은것도 없었다. 오로지 경쟁뿐이었다.
뭐.. 그래도 그런건 얼마든지 참아낼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참을수 없는 말이 있었다.
"너 정말 팔봉선생밑에서 배운 놈 맞아? 어째 실력이 이래?" 였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의 진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수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대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돌아갈수가 없었다.
이렇게 빨리 팔봉에게 백기를 들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를 악물고 겨우 겨우 버텨나가고 있는데 그런 그녀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접근해온다. 까칠하지만 있어보이는 귀공자, 구마준이었다.
파리 블랑제가 될수 있는 기회를 줄수 있다며 미순을 유혹하는 마준,
잘만 하면 그녀 이름을 내 건 제빵점을 내줄수도 있다는 제의에
미순은 그만 경계를 풀고 무장해제가 되고 만다.
그리고 구마준으로부터 듣게 되는 김탁구의 과거사.
(물론 구마준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고 거짓으로 꾸며진 과거사였다.
그 왜곡된 과거사 속에서 탁구는 너무나 나쁜 사람이었다.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온갖 권모술수와 협박과 음모도 불사하는,
그러면서 겉으로는 아닌척 이중탈을 쓴 정말 정말 무서운 놈이었다.
실제로 탁구가 나빠보이도록 미순이가 충분히 오해할만한 에피소드들이
구마준의 계획에 의해 일어나기도 한다.)
팔봉이 그런 녀석에게 속고 있다는것에 참을수 없어진 미순은
결국 구마준과의 거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서로의 조건이 맞아떨어져 다시 팔봉제빵점으로 돌아가는 미순,
그녀가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자신의 이름을 걸게 될 제빵점을 위해 팔봉의 마지막 비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옆에 이중탈을 쓰고 팔봉밑에서 수련중인 탁구를 내보내는것.
그렇게 미순은 마준과 탁구를 오가는 위험한 줄타기가 시작하는데.
하지만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탁구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군다나 그 녀석.. 그 곤란한 상황들이 미순 때문이라는걸 뻔히 알면서
한번도 그녀탓을 하지 않은채 그저 묵묵히 곤경을 이겨내는것이 아닌가.
그런 탁구를 보면서 미안함과 감동을 동시에 느끼기 시작하는 미순.
구마준에게 들었던 나쁜 탁구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좋은 탁구..
그 둘중에 어느쪽이 진짜 모습인지 점점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미순은 탁구에 대한 자기의 마음이
점점 진심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탁구 역시 미순에 대한 감정이 진심이 되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퉁명하고 성질 더러운척 하지만
사실은 잘 거절하지 못하고 안된 사람은 돕고 싶어하는 상냥한 마음이
있다는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손맛을 익히기 위해 그렇게
수만번 괴롭혔을때도, 그 때마다 퉁명스럽고 귀찮아하긴 했지만 한번도
피하거나 거절한적 없이 그가 물어보는 모든걸 다 대답해주었다.
그런 그녀가 있어줬기에 그 힘든 순간을 견뎌낼수 있었다는걸 
누구보다 탁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때 눈물이 날만큼 반가웠다.
그녀를.. 좋아하게 되버렸다는것도 그 때 알았다.
아직 제빵사로서의 길은 멀고 험했지만 
미순이와 함께라면 힘들지 않을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에게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걸 알기에
그의 마음은 더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제빵사 시험까지 한달여 남짓 남은 시점..
자격증을 따게 되면 그 땐 미순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해볼까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러던 차에 미순이가 구마준을 만나는것을 알게 된다.
순간 빵을 굽게 되면서 잊고 있었던 삼화家에서의 악몽은 되살아나고,
어쩌면 유경이한테 그러했듯이 미순이마저 구마준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조금씩 그에게 다가오는데..

제빵사 시험날은 점점 다가오고,
구마준과 얽혀버린 미순과의 갈등은 점점 골이 깊어져 가고,
삼화家와의 정략결혼을 위해 서인숙과 파워게임을 벌이는 유경까지
또 다시 탁구를 찾아오는데다,
동료 수하생인 차상태의 방해공작까지 탁구를 힘들게 하던 어느 날,
탁구의 인생행로를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구일중이 갑자기 쓰러져버린것이다.
탁구가 제빵사 시험을 보러가기 바로 하루 전이었다.


과로였다.
갑작스런 회장님의 와병으로 삼화家는 후계자 등극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장녀 자경이까지 후계자경쟁에 합세하면서
바야흐로 삼화家 가족끼리 불꽃튀는 신경전이 시작되는데.
바로 그 때 그들의 후계자경합에 찬물을 끼얹는 인물이 돌연 나타났으니
쫓겨난 장남이자 버림받은 서자, 김탁구다.
그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삼화家를 찾아왔다.
하지만 그의 등장으로 삼화家의 후계경쟁은 혼전에 혼전을 거듭,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데.



"제 3 장,  성공기 (成功記)." (27부 ~ 46부)
  - 1980년 ~ 90년대 -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음이니라」

남자의 로망.
사실 탁구는 다시 삼화家로 돌아갈 생각같은건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
삼화 家의 후계자가 된다는 생각같은건 더더군다나 담아본적도 없었다.
그냥 줘도 싫은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대로 있을수만은 없었다.
바로 내일이 제빵사 시험날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일 제쳐두고
뛰어온것이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한 그는 망설였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게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아직 그들을 용서하지 못해서였다,
그래도 만에 하나 아버지가 잘못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마지막이라도 얼굴을 보지 않은게 평생 후회가 될것 같아서
그래서 돌아온건데, 그들의 반응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소란스러웠다.
물론 그들의 걱정은 탁구의 관심밖이었지만 말이다.
탁구는 오로지 구일중이 무사히 깨어나기만 기다릴뿐이었다.
제빵시험시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구일중은 깨어날줄은 모르고.
결국 탁구는 한숨도 못잔채 뜬눈으로 아버지곁은 지키다가
제빵사시험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좀 더 그가 피곤할수 밖에 없었던 에피소드들이 일어난다)
머리는 멍하고, 던져진 과제는 험난하고,
매순간 피를 말리는 시간이 그에게 지나가지만
결국 기적적으로 과제를 통과하는 탁구.
거기에 구일중까지 깨어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한시름 놓게된다.
탁구가 자기곁에서 밤을 새며 간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일중은
새삼 그에게 고마움과 대견함을 느낀다.
이제 서인숙과 이사들은 드러내놓고 후계자 내정을 요구하기 시작할테고
구일중 역시 자신의 건강문제가 도마에 오른 이상 후계자 자리를 더
비워둘수도 없는 처지가 되버린 지금,
구일중의 머릿속에는 탁구를 후계자로 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그러나 탁구는 겸손하지만 단호히 거절한다.
자기는 지금 팔봉제빵과자점에서 그 어느때보다 행복하다고 말이다.
회사의 경영같은건 자기 분수에 맞지 않는다고 말이다.
아버지의 건강을 확인했으니 돌아가겠노라고 말이다.
그리고 다시 팔봉제빵점으로 돌아오는 탁구.
하지만, 자꾸만 간곡히 그를 붙잡는 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최근들어 소비자들이 가까운 제과점의 신선한 빵들을 선호하면서
양산빵의 명성도 예전같지 않았다.
"자고로 사내란 나 자신보다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헌신해야한다.
그것이 사나이로 태어난 진짜 이유고 의무고 낭만이지.
대한민국 사람중에 누구라도 배고픈 사람이 없게 만드는거..  
그게 내 애국이고, 내 꿈이다."
언젠가 차 안에서 그 말을 할때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느꼈던 
그 가슴벅찬 감동이 새삼 탁구의 마음을 심난하게 했다.
그 날의 아버지와 너무나 쇠약해져버린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자꾸만 탁구의 마음을 괴롭히는데..
그런 탁구를 지켜보던 팔봉은 어느 날 탁구를 불러 떠나라고 한다.
사실 팔봉선생은 탁구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단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겠다는 욕심때문에 심난한것이 아니라는걸.
점점 쇠락해가는 삼화식품이 늙어가는 아버지를 닮은것만 같아서, 
그게 마음 아파서 괴로워한다는것을 말이다.
탁구는 아버지가 일으킨 그 기업을 모른척 할수가 없었던거다.
아들로서 아버지의 그 로망과 정신을 잇고 싶었던거다.
탁구는 결국 결심을 하고 팔봉선생께 큰절을 올린다.
그에게 꿈을 심어주고, 사람답게 살게 해주었고, 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었던.. 그래서 너무나 정들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뒤로한채
탁구는 팔봉제빵점의 문을 나선다.

여자의 오해.
그가 떠남으로 인해 가장 충격을 받은건 미순이었다.
그녀에겐 작별 인사 한마디 없었다.
서로 진심이 통했다고 믿었었는데.. 그런데 그는 그냥 떠나버렸다.
미순과 함께 수련하게 된 시간들이 행복하다 했는데.. 
그런데 그는 그냥 떠나버렸다.
정말 마준의 말대로 탁구에겐 오로지 후계자가 되고픈 욕심뿐이었을까?
그래서 자신의 절대미각을 이용해 제빵 기술을 마스터한뒤 
이젠 필요없게 되자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버린걸까? 
그를 이만큼이나 좋아하게 됐다는 말도 채 못한채
그저 떠나버린 탁구에 대한 서운함과 오해로 상처받게 되는데.
그럴즈음, 구마준이 그녀를 다시 찾아온다. 그녀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마준은 탁구가 삼화家에 다녀간뒤 삼화식품에 정식 입사할 결심을 
하게 된다. (물론 일반 사원이 아니라 기획실장의 자리였다.)
솔직히 그는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별로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빵을 알지 못해서는 체면이 서질 않는 자리이기도 했다.
해서 생각해낸것이 미순이었던 것.
이미 미순의 절대미각과 절대손감각의 놀라움을 경험했던 그였다. 
그녀의 입맛과 손재주만 있다면 굳이 자신의 손에 밀가루를 묻히지 
않아도 될거라고 판단, 회유에 들어가는데, 
하지만 미순은 거절한다. 
이제와 새삼 구마준과 손을 잡고 일할 마음같은거 별로 당기지 않았다.
(구마준이 탁구에 대해 거짓말한 사실을 알게 된 뒤 거래를 파기했었다)
말로 안되자 마준은 팔봉제빵과자점을 놓고 실력행사를 한다.
결국 미순은 할아버지가 지난 오십여년동안 자리잡고 일구어온 
팔봉제빵과자점을 지키기 위해 구마준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삼화식품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미순,
구마준의 각별한 관심을 받게 되면서 신유경과 새롭게 묘한 신경전을
벌이게 되는데. 하지만 미순의 관심은 오로지 탁구뿐이었다.
그렇게 삼화식품에 들어오기로 결심한 이유중에 하나도,
어쩌면 다시 탁구를 만날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리도 작용했던것.
그런데 삼화家에 당연히 돌아와 있을줄 알았던 탁구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무도 그가 간곳을 몰랐고,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로비 對 경험의 대결.
그 무렵 탁구는 삼화식품의 제조공장의 말단직원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는 거기서부터 배우고 싶었다.
그 가장 낮은 자리까지 베어있는 아버지의 기업정신과 손길을 느끼며 
아버지가 이룬 것들을 직접 몸으로 체험한다.
그러면서 탁구는 금새 제조공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구마준이 실장이라는 높은 자리에서 입지를 굳히기 위해 
힘을 가진 이사진과 중역진들에게 돈과 뇌물로 정치를 할 동안
탁구는 차근차근 경험을 쌓고 인정을 받으며 자신의 입지를 세워가는데.
그렇게 양쪽에서 점점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가던 구마준과 탁구는
분위기 혁신을 위한 신제품 개발을 앞두고 맞대결을 하게 된다.
(실질적으로는 김탁구와 양미순의 대결이었다)
탁구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구일중은 이번 신제품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에게 삼화식품을 물려주겠다고 선포해버리고.
바야흐로 탁구와 마준, 탁구와 미순의 명예를 건 한판이 시작된다.
탁구는 제빵인으로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
미순은 실력으로 팔봉에게 인정받은 탁구를 이기기 위해서,
구마준은 후계자의 입지 굳히기를 위해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데.
물론 구마준은 정정당당하지 않았다.
구마준의 권모술수와 음모와 함정은 가차없이 탁구를 공격, 
계속해서 곤경에 빠뜨리고 위기에 빠뜨리지만 
그러나 예전의 탁구가 아니었다.
한때 그는 힘이 없어서, 나이가 어려서 살인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억울한 유년기를 보내야 했지만 지금의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조진구가 이때 말없는 지원자가 되어 탁구의 오른팔 역할을 해준다.
물론 그 때까지 그는 입을 열지 않은 상태다)
미순 역시 구마준의 방식을 거부한다.
정정당당하게 탁구를 이겨보이고 싶은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좋아하는 여자 대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제빵사대 제빵사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던 거다.
하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한 구마준은
결국 자충수를 두게 되는데..
아무리 돈과 인맥과 로비의 파워가 세다고는 하지만
진심으로 만든 제품앞에서는 그 힘도 위력을 잃고 마는 법.
구마준의 온갖 중상모략과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탁구는 자신이 원하는 신제품을 만드는데 성공하는데!

바로 그 때, 서인숙이 나선다.
아들이 이대로 무너지는걸 그냥 두고 볼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마지막 카드로 신유경을 꺼내든다.
신유경은 기꺼의 그녀의 편에 서 주었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구마준이 그 경쟁에서 이길수 있도록 손을 쓴다.
탁구가 미워서가 아니었다. 여전히 탁구에 대한 마음을 한쪽 깊이
담아두고 있었지만 유경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야망을 위해
탁구와 탁구의 신제품을 철저하게 파괴해버린다.
그리고 그 댓가로 구마준과의 결혼 약속을 받아낸다.
그렇게 유경때문에 또 한번 좌절을 맛보게 되는 탁구.
(덕분에 미순이 개발한 신제품이 채택이 되지만.. 그러나 미순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렇게 이기고 싶었던게 아니었다)

서인숙과 구마준의 계략때문에 탁구가 졌다는 사실을 안 구일중은
어떻게든 그를 후계자로 앉히고 싶어하지만
이미 서인숙의 힘이 수 많은 이사들에게 뻗쳐있었다.
(그렇게까지 재빠르게 손을 쓴 그 뒤에는 한승재의 힘이 있었다)
"이것으로.. 삼화의 가운(家運)도 다하는구나.."
구일중이 삼화식품을 구마준에게 물려주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삼화식품의 모든걸 구마준에게 물려준 구일중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지분이 가장 많은 자회사 샤인을 탁구에게 물려주기로 한다. 
지금은 적자운영으로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상황에 빠진 회사라 
어느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나마 구일중이 탁구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자신의 흔적이기도 했다.
탁구는 아버지의 선물을 고맙게 받는다.
그리고 결심한다. 어떻게든 이 회사를 일으켜보겠노라고 말이다.

진짜와 가짜 사이..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공장은 생각보다 시설이 낙후되어 있었고,
공장 사람들은 회사가 문닫을것이라는것이 기정사실인양
완전 의욕을 잃은채 불만불평만 가득했다.
모두가 힘을 합해도 회사를 정상화한다는건 힘든 일인데
이렇게 비협조적이고 불신만 가득해서는 더욱 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도 그들은 탁구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해도 안되자 탁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진행한다.
아침마다 누구보다 일찍 나와 제조실에서 빵을 굽는것이다.
첫날은 식빵, 둘째달은 단팥방, 셋째날은 소보루, 넷째날은 카스테라.
그렇게 매일매일 빵을 만들어 직원들에게 시식하도록 권했다.
거기에는 팔봉선생으로부터 배운 그의 기술이 전부 녹아 있었다.
따라서 향과 맛은 말 그대로 일품이었던 것.
처음엔 아무도 그런 탁구의 노력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미순이 아침마다 나타나 빵을 먹기
시작한다. (탁구가 혼자 곤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원병으로
그를 돕기 위해 나타난것) 그리고 맛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미순과 탁구의 관계를 알리 없는 직원들은 본사 최고의 제빵사 미순이가
자기네 공장에 나타나 맛을 평가하는것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그 때부터 하나 둘 빵시식에 참가하는 직원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탁구의 빵맛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달넘게 종류를 바꿔가며 빵을 만들어댄 탁구의 진심과 열정은
어느 덧 공장 사람들에게 하나 둘 전달이 되기 시작하고.
언제나 비협조적이고 투덜대기만 했던 직원들도 조금씩 탁구에 대해
마음이 움직이는 가운데, 또 한번 그들에게 위기가 발생한다.
(직원이 다쳤다든가, 또는 직원들을 보호해줘야만 하는 상황 발생,
구체적 에피소드는 빵공장 취재후 설정할것임)
하지만 위기였던 그 사건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그 일로 적대적이었던 공장직원들이 말없이 탁구를 향해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공장은 차츰차츰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제조가 정상화 되자 그 다음 숙제가 판로개척이었다. 
탁구는 무리수를 둬서라도 직영점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자금마련이나 여러가지에서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미 탁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면 통한다.
그리고 진심을 다하면 통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샤인제빵공장을 힘차게 재가동시키기에 이르는데.
언제나 그렇듯 계속해서 시련이 닥쳐왔지만 탁구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이제 미순이가 있었다.
미순은 탁구와의 대결을 통해서야 비로서 깨닫게 된다.
팔봉선생이 말했던 진정한 의미의 빵이 무엇인지.
신제품 대결에서 탁구를 이기고 자신이 개발한 빵이 채택되면서
미순은 마준으로부터 높은 지위와 명예를 약속받지만 거절한다.
사표를 내고 그녀가 돌아온곳은 바로 탁구의 쓰러져가는 빵공장..
거기서 그녀는 처음으로 팔봉선생한테 인정받는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편,
삼화식품을 인계받은 구마준도 본격적으로 경영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식품사업쪽엔 관심이 없었다.
좀 더 그럴듯한거, 좀 더 체면이 사는거, 그러니까 건설같은것에
관심을 보이며 아예 회사를 체질적으로 바꿔보려고 한다.
결국 그는 리조트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쪽으로는 아무런 경험도 없는 중역들을 데리고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해가기 시작하는데,
그럴즈음 그의 앞으로 충격적인 편지가 한통 날라든다.
"당신은 삼화식품의 적통이 아니다!"
처음에 구마준은 탁구가 꾸미는 짓인줄 알았다.
그래서 탁구를 찾아가 샤인공장을 뒤집어놓고 맘껏 화풀이를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탁구가 보낸 편지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다른 누군가가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구마준은 그 편지 내용때문에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가 진짜로 구일중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스스로 하게 되는데... 그리고 드러나는 진실.
딸만 연달아 둘을 낳은 서인숙이 구일중에게 어떻게 외면당했는지,
그러다 딴남자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쩌다 마준을 갖게 되었는지...
그 모든걸 알게 된 구마준은 피가 차갑게 식는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그토록 미워하고 적자가 아니라며 괴롭혔던 탁구가
사실은 진짜 구일중의 아들이었고, 
자기의 피는..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남자의 것이었다.
구마준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채 
서인숙의 다른 남자(마준의 친부)를 밝혀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알고 싶었다.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번번히 서인숙에 의해 그 길이 막혀버리고 만다.
유일하게 그 비밀을 쥐고 있는 서인숙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자 구마준의 포악과 패악은 점점 더 심해지기 시작한다.
자라면서 느껴온 그 모든 피해의식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끝내 갖기 못한 부자지간의 연대감... 
그 모든 원인이 탁구때문이 아니라 구마준 자기 때문에,
자기가 친아들이 아니라서였다니! 인정할수 없었다.
무엇보다 마준은 구일중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이미 법적인 절차로 삼화식품은 구마준의 것이었지만,
그래도 마준은 끝까지 구일중의 아들이고 싶었다. 
다른 누구도 싫었던거다.
구마준은 자기에게 협박편지를 보낸 놈을 찾기 시작한다.
대체 그 놈이 누군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됐는지...
찾아내리라. 찾아내서 그 입을 영원히 다물도록 해주겠다고 결심한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자연히 사업은 뒷전으로 미루게 되고,
새로 벌인 리조트 사업마저 흔들리면서
구마준의 인생마저 총체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아들이 모든 사실을 알아버렸다는 자괴감에 서인숙은 자살시도를 하다
결국 실패, 요양원에 들어가게 되고.
마준과 결혼한 신유경이 자경과 함께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보지만 그럴수록 삼화식품은 점점 더 해결책이 보이지 않았고,
둘째딸은 더 이상 삼화家에 발을 들이지 않게 되었다.
병석에 누운 구일중만이 쓸쓸하게 삼화가가 무너져가는것을 지켜볼뿐.

그렇게 샤인의 경영정상화로 성공의 길을 달리기 시작하는 탁구와
자신의 존재에 관한 흔들림때문에 스스로 무너져가는 
구마준의 엇갈린 운명과 행보들,,
그와 맞물려 하나 둘 베일을 드러내는 마준의 친아버지에 관한 진실과
그것을 이용해 마준을 무너뜨리려는 제 3의 인물(준수)의 등장,
그리고 조진구가 입을 열면서 밝혀지는 탁구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들이 차례 차례 드러나면서 드라마는 클라이막스로 치닫게 된다.


"제 4 장,  에필로그, 인연의 끝. (46부 ~ 50부)"
  - 1990년대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모든 진실들이 밝혀지면서 탁구와 마준,
신유경과 미순, 그리고 서인숙과 구일중, 그리고 한승재까지..
그들 사이에 얽히고 얽혔던 모든 운명과 인연의 끈들이 
하나 둘 풀어지고.
마지막으로 한승재는 구마준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자신의 야망이
무너저지게 되면서 구일중의 아들인 탁구에게 마지막으로 
거대한 시련을 안겨주게 되지만,
그러나 결자해지라고, 모든것을 시작한 구마준에 의해 
모든것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그렇게 폭풍같던 청년시절이 지나고...

미순과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 김탁구는 네살바기 아들을 둔 아버지이자
샤인을 성공적으로 일으킨 제빵업체의 사업가가 된다.
팔봉선생과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오로지 식품업체에만 전력투구를 해서 만들어낸 샤인(주)은
파리브레드의 런칭 성공으로 전국에 300곳이 넘는 지점을 갖추었고,
외국에서 들여온 아이스크림 업체까지 성공을 거둬 연매출 5000억에 
달하는 대기적을 일구어내고 있었다.
그럴즈음 IMF가 터지게 되고, 방만한 기업경영을 하면서 자금난에 
쫓기던 구마준은 결국 부도를 맞게 된다. 
구마준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꺽고 탁구를 찾아간다.
그리고 다른건 몰라도.. 삼화라는 이름만은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사실 마준은 아버지 구일중을 사랑했었다.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던거다.
그 뒤로 그는 패악의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모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유일하게 그를 버리지 않은것이 바로 탁구였다.
탁구는 마준의 부탁을 들어줬고, 그렇게 해서 탁구는 자신의 힘으로
아버지의 기업인 삼화식품을 인수한다.
병석에 누운 구일중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마지막으로 아들에게 부탁한다.
"다시 한번.. 옛날 그대로의 크림빵을 만들어주겠니?"
탁구는 열일 제치고 아버지를 위해 연구개발에 들어가 아버지가 
만들었던 그 60년대의 크림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지병으로 손가락조차 움직일수 없었던 구일중은 
그 빵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숨을 거둔다.
국민의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양산을 빵을 만든 거인의 마지막이었다.
(- 마지막 앤딩씬은 삼립식품의 허창성회장과 샤니를 물려받은뒤 형이
물려받은 삼립식품을 인수한 둘째 아들 허영인의 실제 에피소드다 - )

핏줄에서 핏줄로 가업을 물려주고 싶은 아버지들과,
그 아버지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 시대의 경제부흥을 이뤄낸 
바로 7080세대들의 로망도 그렇게 20세기와 함께 저물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그들의 아이들에서 아이들에게로 이어질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고, 또한 희망이 되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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