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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획안

KBS <공주의 남자>

by iamasiam 2020. 5. 15.

방송 기간: 2011년 7월 20일 ~ 2011년 10월 6일
방송 횟수: 24부작
연출: 김정민, 박현석
극본: 조정주, 김욱
출연: 박시후, 문채원, 홍수현, 이민우, 송종호, 김영철, 이순재, 김서라, 김뢰하, 추소영, 가득희, 홍일권, 엄효섭, 윤승원, 이효정, 이희도, 정동환 등


󰌳 드라마 포인트: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 󰌳

천인공노(天人共怒)! 
내 아비가 그의 아버지를 죽였다!
-수양대군의 딸 <세령>  

그녀의 아버지라 해도, 어쩌겠는가. 
필살(必殺)! 
-김종서의 아들 <승유>

아버지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주가 된 한 여자와,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번민하는 
천민이 된 한 남자.
그들의 서로를 향한 애타는 붉은 마음(丹心)

역사 속에 감춰진 리얼 드라마틱 러브,
<조선 최대 핏빛 로맨스>가 시작된다! 


󰌳 기획의도: 차별화 󰌳

一. 시각의 차별화: 2세들의 이야기

왕이 되고자 하는 열망에 들뜬 수양대군이 대신(大臣) 김종서를 무참히 살해한 사건. 이른바 계유정난이다. 기왕의 사극에서도 심심찮게 다룬 이 사건을 새로운 시각, 즉 <관련자들의 2세>라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수양대군의 딸 <세령>,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 문종의 딸이자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 신숙주의 아들 <신면>이 바로 그들이다.                       

조선왕조실록엔 수양에게 딸이 둘이 있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에는 수양의 딸은 오직 의숙공주 한 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단순한 오기였을까? ‘금계필담’ 등의 야사는 수양의 딸과 김종서 손자의 운명적 사랑을 전하고 있다. 충청북도 백악산에는 두 사람이 피해 살았다는 동굴이 전해지기도 한다. 설혹 수양의 딸과 김종서 손자와의 사랑이 후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 할지라도 아버지인 수양에게 반발하다 폐서인이 된 드라마틱한 여주인공 세령공주의 존재는 허구가 아닌 듯하다.  

또한 김종서의 본관인 순천김씨의 족보에는 계유정난을 통해 김종서와 두 아들 승규, 승벽이 목숨을 잃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멸문지화의 참변 속에 김종서의 손자인 행남은 유모의 손을 통해서 극적으로 구출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그때 행남의 나이 불과 세살이었다고 한다. 순천김씨의 족보를 그대로 따른다면 김종서의 손자 행남과 세령공주의 사랑은 순전히 허구가 되어버린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수양대군의 장녀와 김종서의 손자와의 사랑이라는 설정을 김종서의 막내아들과의 사랑으로 재설정하기로 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원수가 되어버린 승유와 세령 간의 운명적인 로맨스물이다. 여기에 승유를 사랑한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 세령을 사랑한 신숙주의 아들 신면이 엇갈린 애정구도를 형성한다. 그들 네 명, 즉 <관련자 2세들>의 눈을 통해 계유정난 전후 역사적 사건들이 담고 있는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다.  

二. 소재의 차별화: 조선의 <공주>

조선시대 왕비와 궁녀를 다룬 사극은 많았지만 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는 드물었다. 이는 조선시대 공주들이 사회적, 정치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 공주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이름도 생몰년도 알 수 없는 공주(혹은 옹주)도 다수 존재한다. 이 드라마는 최초로 조선시대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두 공주의 삶을 추적한다. 아버지 수양대군으로 인해 종친에서 단박에 공주의 자리에 오른 <세령공주>와 숙부 수양대군으로 인해 공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진 단종의 누이 <경혜공주>가 바로 그들이다.    

 경혜공주는 남편인 영양위 정종의 역모사건으로 일국의 공주에서 노비로까지 신분이 추락한다. 동생 단종과 남편이 모두 숙부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의 묘소는 파헤쳐져 관이 강물에 던져지는 비극을 겪는다. 그 자신도 노비 신분이 되어 도무지 더 이상 생을 지속할 이유마저 없었으나,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그를 살게 한 이유는 아들이었다. 결국 모든 고초를 이겨내고 아들 정미수가 성종 시절 관직을 받는 모습을 보고야 눈을 감는 한 많은 여인 경혜공주는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三. 사극의 차별화: 흥행코드로서의 역사

<청춘애사>는 <복수와 사랑>이라는 대중적 흥행코드를 충실히 따라간다. 수양대군에게 일가족을 몰살당한 한 남자, 승유. 승유의 죽마고우면서도 수양대군과 손잡은 신면. 수양대군과 신면을 향한 승유의 처절한 복수. 그리고 승유와 신면이 동시에 사랑한 한 여자, 수양의 딸 세령. 그들의 역동적이고 생생한 역사를 그린다. 

흥행의 관건은 매력적인 악역구축에 있다. 절대 권력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양. 사육신을 친히 국문할 때 살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고신을 자행하고 형수인 현덕왕후의 묘를 파헤쳐 관을 강물에 던져버리는 등의 무자비한 패악은 정치적 해석만으로는 논하기 힘든 <정신병리학적 접근>이 필요한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한 줌의 권력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에 대한 편집증 환자 수양대군. 불완전한 인물의 심리묘사에 주력하여 <새로운 악역 탄생>을 시도한다. 

악역의 매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는 <현재성>이다. 죽어버린 과거로서의 역사가 아닌 <지금, 여기>를 연상시킬 만한 세트들. 수양과 한명회의 만남은 <대권을 노리는 정치가와 암흑가 우두머리의 커넥션>을, 한명회 수하의 행적은 <정치깡패 동원>을, 한성의 치안을 담당한 신면의 무뢰배 소탕작전은 <조폭과의 전쟁>을 연상시킨다.  

수양과 맞서는 승유 캐릭터는 ‘벤허’의 벤허,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 같은 <마이너-히어로>의 요소들을 차용한다. <몰락-다른 이름으로 부활>의 과정을 겪어 <민중의 힘>을 배경 삼아 <어둠의 제왕>으로 거듭나는 승유는 드라마의 결말까지 수양과 팽팽하게 맞서며 서사적 긴장감을 유지시킬 것이다.

마지막 흥행요소는 당연히 <사랑>이다. 핏빛 계유정난 이전의 승유, 세령, 경혜공주, 신면, 정종. 이들은 더없이 푸르고 싱싱한 <청춘들>이다. 갓 이성에 눈을 뜬 그들에게 사랑이란 ‘감정’인 동시에 ‘감촉’이다. ‘춘향전’이나 ‘로미오와 줄리엣’ 등에서 엿보이는 <풋풋한 에로틱 에너지>를 이들에게 불어넣어 시청자들에게 ‘첫 키스’의 떨림과 ‘첫 스킨십’의 짜릿함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한다.


四. 
결국 이 드라마는...
끔찍한 정변 속에 몰락한 마이너-히어로의 <남성적 복수극>이자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애절하게 얽혀버린 <여성적 로맨스>로,
다양한 시청 층을 포용하는 <웰 메이드 역사 오락물>을 지향한다! 



󰌳 캐릭터 관계망 󰌳 

一. ROMANCE

{1} 조선의 로미오, 김승유 (계유정난 당시 22세, 男)

‘허망하게 철퇴를 맞고 쓰러진 불사이군 충신 김종서의 아들이며, 온몸이 무참히 도륙돼 비명에 간 두 형의 동생이다. 
그리고,
품어선 안 될 여인을 끝까지 사랑한... 
세상 가장 어리석은 사내!’ 

다 가진 자는 낙천적이다. 왕을 능가하는 권력가 김종서의 막내아들이라는 배경, 미려한 외모와 강인한 신체조건, 타고난 지적 능력, 명문가답게 습관에 밴 학문적 태도와 집중력,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높은 자존감, 사내답게 놀 줄 아는 담대한 배포 등 한 마디로 자타공인, 시대의 진정한 <귀공자>이다. 가진 걸 제대로 누릴 줄 아는 자는 거칠 것이 없다. 그리하여 청춘 김승유는, 거칠 것이 없었다.   

성균관 박사이자 종학(종친들의 교육기관/일종의 왕족학교)의 강사인 승유. 본디 태평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성정인데다 벗들과 어울리기까지 좋아해 밤새 기방에서 놀고 지각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벗은 신숙주의 아들 신면, 정충경의 아들 정종으로 어린 시절부터 동문수학하던 동갑내기 막역지우들이다. 그렇다고 승유가 제 할 일에 소홀한 건 아니다. 강론준비는 철저하고 가르침에는 엄격하다. 어느 날, 스승 이개의 지시로 <경혜공주>의 강론을 맡게 되면서 승유의 인생향방은 달라진다. <경혜공주>가 누구인가. 상상 불가의 미색, 왕비 없는 조선의 가장 드높은 여자이자 종학의 스승들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매번 퇴짜를 놓는 까다로운 제자 아닌가. 그렇다고 기죽을 승유가 아니다. 제 까짓 게 아무리 공주인들 여자 아니던가.

허나 <경혜공주>의 행동거지는 상상 그 이상이다. 강론 도중에 말도 없이 사라지는가 하면, 어느새 남몰래 궐 밖에 나가 위험천만한 사고를 친다. 겨우 붙잡아 궁으로 끌고 오던 중 자취를 또 감춰버리기도 한다. 전형적인 조선의 여인과는 전혀 다른,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경혜공주>의 매력에 서서히 마음이 끌리는 승유. 그 무렵, 아버지는 승유가 문종의 부마로 내정되었음을 알린다. 문종의 부마라면 <경혜공주>의 남편이 되는 것이다! 내심 싫지 않은 승유. 아직까지 승유는 제가 알고 있는 <경혜공주>가 가짜라는 사실도, 실은 수양대군의 장녀인 <세령>이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다.           

부마간택이 시작되고, 초간, 재간을 가뿐히 통과한 승유. 최종간택에 나서기 전 그는 생각한다. 저만큼 순조로운 인생은 없을 거라고. 좋아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는 일이 어디 조선 천지에 흔한 일인가. 그러니 급히 전갈을 받고 달려간 공주의 처소에서 진짜 경혜공주를 맞닥뜨렸을 때 더욱 믿기 힘들 수밖에. 승유가 만난 <경혜공주>는 가짜였다! 머리를 스치는 수많은 의문들. 내가 만난 그 여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지금 어디 있는가? 진짜 경혜공주는 어떤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그저 예정된 부부의 연을 저버리지 말라고 차갑게 명령할 뿐. 혼란스러운 승유는 기어이 최종간택에 참석하지 않는다! 불충과 불효의 대가로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걸 알면서도.   

문종의 성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 승유, 종학도 그만두고 집안에 틀어박힌다. 자신의 벗 정종과 혼사를 치르게 된 경혜공주에게 알아낸 거라고는 고작 <그 여자>의 신분이 궁녀라는 것뿐이다. 그 외에는 생사조차 알지 못한다. 이어지는  문종의 죽음 이후 정세가 급변한다. 단종의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을 힘겹게 견제해나가는 아버지 김종서의 일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승유. 수양대군 측 쿠데타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하는 것이 승유의 일이다. 정체모를 여자를 잊기 위해 일에 몰두하는 승유의 앞에 거짓말 같이 도로 나타나는 <그 여자>.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는 승유를 말없이 견디는 <그 여자>를 보면서 그의 가슴에는 억눌러왔던 그리움이 다시 솟아오른다. 제 신분이 궁녀라는 사실 밖에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그 여자>를 더욱 깊게 사랑하게 되는 승유. 

계유정난! 아버지와 형제를 잃는 끔찍한 그 일을 겪고 나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여자였다. 혼자 살아남은, 구차하고 비겁한 제 몸뚱어리를 그녀의 곁에 눕히고 싶다... 하지만 그 여자를 다신 볼 수 없다. 아버지를 살해한 수양대군을 찔러죽이고 목숨을 끊으리라. 득의만만한 승자의 얼굴로 제 집에 돌아온 수양대군을 노리는 승유. 수양대군을 맞이하느라 머리를 조아린 식솔들 중 한 여자가 얼굴을 든다.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들. 딸이래. 경악하는 승유. 바로.... <그 여자>다!! 
           
그 여자. 불구대천의 원수의 딸 세령! 혹시 그 여자도, 아비의 파렴치한 계획에 동참했던 걸까? 그래서 끝까지 제 정체를 알리지 않은 걸까? 아픈 의심. 모든 걸 한꺼번에 잃고 역도로 몰린 승유...그의 무릎이, 풀썩, 꺾인다....이제 그는, 나락으로 떨어져, 죽은 목숨이 된다....털썩. 암흑 속에 부려지는 그의 몸뚱이. 
         
허나 암흑이 반드시 <끝장>은 아니다. 어둠이 켜켜이 서리면 단단하고 독해진다. 생래적으로 빛나던 자, 어둠의 기운을 품고 악취 나는 거리에서 부활한다.  피, 칼, 흉터, 상처, 악몽, 무표정. 그것들 속에 정체를 감추고 잔혹한 적(敵) 수양과 맞서는 짐승 같은 눈빛의 하류인생. 그 다음은? 여자부터 죽인다. 이미 왕이 되어버린 아비는 그 다음이다. 더없이 잔인한 방법으로, 그녀의 숨통을, 끊어 주리라. 적어도 세령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한 승유였다. 미세한 얼굴근육조차 꿈틀거리지 않고, 차갑고 냉정하게 칼끝을 휘두를 수 있을 거라고. 꼭 그럴 수 있을 거라고...

{2} 조선의 줄리엣, 세령 (계유정난 당시 20세, 女)

“그의 여식임이 한스럽습니다.
...사랑이 컸다한들 
어찌 그 죄를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소원은.. 당신 손에, 당신 품에 죽는 것입니다”

 제1종친 수양대군의 장녀. 왕가의 혈통을 지닌 조선여인이라면 마땅히 기대되는 단정함, 차분함, 얌전함... 따위와는 거리가 먼 귀여운 선머슴! 조선보다는 오히려 고려여인에 가까운 풋풋한 말괄량이. 호기심 많고 대담하기까지 한 성품 탓에 하고 싶은 건 꼭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버지 수양대군이 세령에게 엄격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꾸지람을 듣는 일보다 저 좋은 일을 못 해볼까봐  겁나는 세령이다. 그리 배우지 말라는 ‘말’에도 기를 쓰고 올라탄다. 들켜서 호되게  혼찌검이 났을 뿐만 아니라 몇 번이고 떨어져 온몸이 시퍼런 멍투성이면서도.
     
모든 시작은 그놈의 ‘말’ 때문이었다. 종학 강론을 듣기 위해 입궁한 세령은 가까이 지내는 사촌언니 <경혜공주>에게 문안인사를 올리러 간다. ‘말’을 태워주겠다는 솔깃한 제안만 아니었다면, 세령이가 공주 복색을 하고 공주 강론방에 앉아 있을 리가 있었겠는가. 궁 밖을 나가보고 싶다고 사촌언니가 아무리 졸랐어도 이 미친 짓을 시작하지 말았어야했다. 서로를 보지 못하도록 쳐놓은 발 너머, 스승이 입장하는 기척에 긴장하는 세령. 발을 사이에 두고 예를 갖춘 스승의 목소리는 의외로 젊다. 그가 좌상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라는 사실을 강론방을 나와서야 알게 되는 세령.  

스승 김승유가 발을 걷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놀랐다. 강론을 받던 중 발 너머로 등장한 문종(경혜공주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놀랐다. 승유와 문종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몰래 강론 방을 도망 나와 버렸다. 심란한 그녀의 앞에 그리도 태워주지 않던 말이 제 등을 허락했을 때, 놀랐다. 그 말이 속도를 높였을 때도 놀랐다. 위험천만한 낙마의 상황에서 나타난 승유가 저를 구해줬을 때는, 더욱 놀랐다. 나란히 말 위에 올라탄 승유의 기척을 등 뒤에서 느꼈을 때는, 설렜다. 말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제 팔을 붙들어주는 승유의 손길을 느꼈을 때는, 더욱 설렜다. 진짜 공주가 아니기에 궐로 향하기 전 승유 몰래 집으로 도망갔을 때는, 미안했다. 다시 공주 강론방에서 만났을 때 저를 혼내기보다는 염려했다고 말해주는 승유가, 더욱 미안했다. 

다시 밖에서 만난 스승과 함께 빠른 속도로 말을 달릴 때는 더없이, 상쾌하고, 유쾌하고, 시원했다. 저를 향해 달려드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조선의 여자로 살아야하는 답답함을 얼마간은 날려버렸다. 스승에게 처음으로 고마웠다. 수많은 놀람과 설렘과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이면서 스승은 그저 스승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되어간다. 아니, 아니다. 또 거짓말이다. 그저 사람이 아니라 ‘남자’다. 세령의 인생 최초의 남자. 그 남자에게 자꾸만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일이 버거워지는 세령. 애당초 거짓말이란 담백한 세령의 성격과도 어긋난 짓거리 아닌가. 

공주 행세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러 간 세령은 경혜공주에게 청천벽력의 소식을 듣는다. 스승 승유와 경혜공주 사이에는 이미 혼인이 결정돼있다! 마지막 강론을 맞이하게 된 세령. 이제 제 마음까지 속여 버린다. 승유는 그저 ‘말 타기’를 가르쳐 준 제 마음의 스승일 뿐이라고. 마지막 강론를 끝내고 돌아온 그 밤, 제 곁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여리를 보던 세령의 두 눈에서 주룩 눈물이 흐른다.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떠나보내면, 어떡해?” 첫사랑. 시린 감정....  

제가 경혜공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부마간택을 거부한 승유. 그 소식을 들은 세령은 승유를 향해 달려간다.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처음 느껴보는 애절한 감정. 허나 제 앞을 막는 새로운 남자 신면. 신면은 아버지 수양대군의 오른팔이자 김승유의 친구이다. 수양대군은 이미 신면과 세령의 혼사를 추진 중이다. 몸은 신면 곁에 있지만 마음은 승유의 곁에 있다. 다시 만나면 안 된다고, 이제 만나서 뭘 어쩌겠냐고, 수없이 저를 막았는데도, 기어이, 그 사람 앞에 제가 서 있다. 제 아버지 수양대군을 속이고, 정혼자 신면을 속이고, 눈앞에 서 있는 그 남자승유마저 속인 채, 애써 밝게 웃는 세령.  

문종이 죽고, 단종이 즉위하고, 왕이 되고 싶은 수양의 야욕은 더욱 노골적이 되어간다. 세령은 이미 승유의 아버지와 제 아버지가 같은 하늘 아래 살기 힘든 정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는 달콤함에 취해, 궁녀라는 또 다른 거짓말을 보태며,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세령. 제 아버지가 죽도록 미워진다. 아버지가 제 아버지가 아니라면, 왕위에 대한 욕심을 버린다면, 김종서와 정적 간이 아니라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승유가 자신을 따스하게 바라볼수록 거짓으로 둘러싼 제 꼴이 부끄러워 도망가고 싶어지는 세령. 그 거짓으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아버지가 도모하는 잔인한 계획 속에서 승유만이라도 죽음으로부터 구원하는 일!      

 계유정난! 수양대군은 딸이 사랑하는 승유의 아버지를 무참히 죽여버린다. 그렇게 살리려고 애썼던 승유의 생사 또한 알 수 없게 된 세령. 예정된 수순처럼 비밀이 벗겨진다. 아버지를 죽이러 찾아온 승유 앞에 세령의 정체가 밝혀진다! 거듭된 충격에 실성한 듯 승유가 칼을 휘둘렀을 때, 세령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제 온몸으로 그를 감싸는 일이었을 뿐이다. 감옥에 갇힌 승유를 찾아간 세령. 상처 입은 그는 더 이상 세령을 보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제 상처를 감춘 세령은 말한다. 살아남아 달라고. 제발 살아남아 자기를 죽여 달라고. 그제야 승유는 오열하는 세령을 본다. 텅 빈 눈빛. 삶을 포기한 자의. 얼마 후 정혼자 신면은 승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소식과 함께 세령의 생기도 다한다.    
 마침내 아버지 수양대군은 왕의 자리를 얻는다. 경혜공주 대신 진짜 공주가 된 세령. 권력에 미쳐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겁에 질린 세령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이미 죽어버린 그 남자를 만날 수 있기를. 죽음과 같은 잠에 빠진 세령. 꿈속에서도 그 남자는 그녀에게 등을 돌린다. 그 등이 하염없이 시려 울다가 깨고 울다가 잠드는 세령... 

...그리던 그 남자를 만났을 때 그 남자는 더 이상 그 남자가 아닐 것이다. 이상한 말장난. 죽음으로부터 살아온 낯선 그 남자는 아버지를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을 이용하려한다. 무자비한 그의 목적을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세령. 남자를 망가뜨린 아버지의 죗값은 내가 치러야한다. 이제 세령은 그 남자를 위해 제 아버지를 속여야한다. 그 누구보다 무서운, 턱이 덜덜 떨릴 만큼 두려운, 내 아버지를. 

{3} 비운의 왕녀, 경혜공주 (계유정난 당시 21세, 女)

“한 많은 인생.. 
그저 회한에 몸서리칩니다. 돌아보니,
한 순간도 마음을 주지 않은 당신,
이젠 당신께 기대도 되겠습니까...”

문종대왕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 단종보다 6살이 많은 누이. 어머니 권씨가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죽게 되자 문종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그 덕에 철없고 도도하고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하기까지 하다. 조선 제일의 미색이라 불릴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외모. 아버지 문종과 동생 단종을 제외한 모든 남자들은 제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만 하는 조선 땅에서 가장 드높은 여인네. 과연 이 여자를 감당할 사내는 누구인가. 

아무리 고고한 경혜공주라 할지라도 왕가의 일원인 이상 결혼 상대를 제 멋대로 고를 수는 없다. 병약한 아버지 문종은 자신의 사후 어린 세자의 안위를 위해 김종서 가문과의 정략혼을 추진한다. 김종서의 막내아들 김승유를 부마로 삼겠노라 공언하는 문종. 그 무렵 절묘하게도 경혜공주의 강론을 맡은 김승유. 부부의 연이 될 두 남녀가 자연스레 가까워질 기회를 얻는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아닌가. 허나 그들의 예정된 인연은 경혜공주의 사소한 실책으로 크게 엇갈린다! 궁밖에 나가보고 싶은 경혜공주의 욕심이 제 자리에 사촌동생인 세령을 앉힌 것이다. 세 남녀의 사랑이 어긋나는 운명의 장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경혜공주가 문종에게 승유가 자신의 배필이라는 사실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있다. 승유와 세령이 저 몰래 밖에서 만난 사이라는 걸 알고 나서 궁녀복장을 하고 강론방에 들어가는 경혜공주. 거기서 승유를 처음으로 본다. 수려하면서도 지적이고 고루하지 않은 남자. 아버지 문종은 말했었다. 네 동생을 지키고 싶다면 김승유와 혼인을 해야한다. 경혜공주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은 세자 단종이다. 

 태어난 다음날 엄마를 잃은 동생은, 참 아프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저보다 더 예뻤던 엄마는, 죽을 만큼 아프면서도 어린 경혜공주의 머리를 손수 빗어주었다. “흐트러진 머릿결로 나다니지 마. 그냥 예뻐지는 사람은 없어.” 끄덕끄덕하는 경혜의 눈에 강보에 싸여 누워 있는 갓 난 동생이 보인다. 그 때, 무심함을 가장한 목소리로, 툭, 엄마가 던진 마지막 말들. “동생 머리는 아무래도 네가 빗겨줘야겠다. 그럴 수 있지?” 잠시, 눈물 그렁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던 모녀. 이제 엄마는 어디에도 없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자신을 기만하지만 실은 김승유가 싫지 않다. 더 이상 주저할 필요 없다. 세령이를 자신으로, 자신을 궁녀로 알고 있는 김승유. 하루 빨리 이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 세령과 승유가 서로 이성적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건 알지만 개의치 않는다. 임금의 명을 거스를 만큼 배포가 큰 관료는 이 조선 땅에 없으며 자신의 여성적인 매력을 거부할 만큼 눈먼 사내도 없기 때문이다. 승유를 불러 자신의 진짜 모습을 과감하게 밝힌 것도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최종간택에 승유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전까지는.      

경혜공주에게 씻을 수 없는 자존심의 상처를 입힌 승유는 오히려 세령의 정체를 캐묻는다. 동생을 위해서도 정략결혼을 성사시켜야 한다. 승유를 설득하는 경혜. 그러나 승유는 요지부동이다. 세령 외의 여자에게는 어떤 관심도 없다. 질투심과 모멸감에 사로잡힌 경혜는 거짓말을 해버린다. 세령은 궁녀이며 어딘가로 출궁해버렸다고. 경혜공주의 배필은 승유가 아닌 승유의 친구 정종으로 결정된다. 여기부터 시작이다. 경혜공주의 아픈 몰락은. 

이후, 장난 같던 경혜공주와 세령의 역할 놀이는 슬픈 진실이 되어버린다. 세령은 진짜 공주가 되고 경혜공주는 궁녀보다도 못한 노비가 된다. 아버지를 잃고, 동생을 잃고, 남편마저 잃은 경혜공주에게 다시 만난 승유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의지처가 된다. 수양을 협박하겠다는 명목으로 납치해온 세령을 몰래 내쫓아버리는 경혜. “아버지 죄를 네가 씻겠다면 보여줘. 아버질 네 손으로 죽여.”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서는 세령. 

{4} 은밀한 야망, 신면 (계유정난 당시 22세, 男)

‘한 사내를 섬겨 그를 왕으로 모셨으니
가히 후회 없는 장부의 삶이라 할 수 있으나,
한 여인의 마음만은 얻지 못하니... 
참으로 허망한 사내의 삶이로구나!’

조선 최고의 지성 신숙주의 둘째 아들. 현재 한성부 참군으로 도성 내의 치안을 담당하는 중간 관리. 사내다움이 돋보이는 장수감이지만 아버지의 영향으로 학문의 조예 또한 부족함이 없다. 죽마고우인 김승유와는 학문과 무예 등 모든 면에서 선의의 경쟁자였다. 어디 가나 각광을 받는 김승유에게 은밀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신면은 세상에 제 이름을 크게 드날리고 싶은 욕망을 감추고 있다. 승유의 아버지 김종서의 뒤봐줌을 완곡히 거절한 것도 오로지 제 힘으로 이루고자 하는 신면의 자존심이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알아채는 법. 유난히 바르고 대의에 집착하는 신면의 이면을 알아봐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김종서의 정적인 수양대군이었다. 

저자거리의 왈패들을 수사하던 중, 우연히 기방 내실에서 맞닥뜨린 수양의 풍모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부마로 내정된 승유를 죽이려하는 패거리들의 배후에도 수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면. 그럼에도 제 목표를 향해 선악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수양의 집념, 오로지 왕이 되기 위한 욕망으로 똘똘 뭉쳐진 어둠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점점 빨려 들어간다. 이후 신면의 행보는 수양대군이라는 ‘주군’을 ‘왕’의 자리에 올려놓기 위한 여정이 된다. 그를 수양에게 향하게 한 또 한 가지의 이유. 바로 수양의 딸 세령이다.

처음 본 세령은 다친 승유를 온통 제 몸으로 감싸고 있었다. 곧 칼날이 저한테 떨어질 걸 알면서도 겁도 없이 복면한 자객들을 쏘아보는 앙칼진 표정. 그 표정이 신면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 여자는 승유의 배필이 될 경혜공주라고 들은 신면은 애초에 단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수양대군의 집을 찾은 신면은 거기서 그 여자를 운명처럼 조우한다. 곧이어 알게 된 엄청난 비밀. 그 여자는 경혜공주가 아니라 바로 수양대군의 장녀 세령이다! 신면의 안에서 솟구치는 욕심은 알지도 못한 채 제 비밀을 지켜주는 신면을 고맙게 생각하는 세령. 신면은 세령에게는 따듯하고 좋은 벗이 되어주는 한편 승유에게는 세령의 정체를 감춘다.
          
  신면의 마음을 알아채고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에게 혼담을 건네는 수양대군. 세령을 마음에 품었지만 벗을 잃고 싶지 않은 신면은 승유가 세령의 정체를 모른 채 진짜 경혜공주와 혼인하길 바란다. 하지만 진짜 경혜공주를 보게 된 승유가 최종간택에 참가하지 않고 세령을 찾아 헤매자 점점 불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세령과 승유가 다시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신면.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깊어졌음을 느낀 신면은 심한 배신감에 시달린다. 

그동안 함께 어울리며 호연지기를 기르던 친구 승유, 이제 친구의 길과 신면의 길은 달라진다. 세령은 그의 여자가 아니라 내 여자가 되어야 한다. 신면은 결국 세령을 주겠노라 약조한 수양의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다. 문종의 사망 이후 수양대군의 입지가 굳어지면서 승유와 신면은 점점 적이 되어간다. 처음으로 승유보다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신면. 자신을 봐주지 않는 세령이 서운하지만 언젠가는 돌아봐줄 거라 확신하며 수양대군의 거사 계유정난을 철저히 준비한다. 계유정난 후, 신면과 세령의 혼인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가.   
 
이제 신면은, 예전 승유처럼, 거칠 것이 없다. 김종서를 살해하는 야합에 가담하고, 스승 이개를 제 손으로 죽이고, 몰락한 주제에 무릎 꿇을 줄 모르는 승유의 숨통을 조여 간다. 권력을 나눌 수 없듯 여자도 나눌 수 없다.  뺏거나 나누자고 하는 자, 누구든지 죽인다. 세령이 자신에게 냉담하면 할수록, 저에게 승유의 목숨이나 안전을 부탁하거나 애원할수록 더욱 독해지고 잔인해지는 신면. 김승유의 최후를 그녀에게 고스란히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그 여자의 머릿속에서 그놈을 싹 도려내지. 제 표정이, 암흑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신면.  

{5} 온화함의 위력, 정종 (계유정난 당시 22세, 男)

“아리따운 공주는 내 곁에 있으나, 
그녀의 마음은 저 멀리 있어라. 
곁에 있어도 간절한, 나의 아내여.” 

승유와 신면의 절친한 벗이며 경혜공주의 남편. 세종 때 동부승지와 중추원부사 등을 역임했던 정충경의 외아들. 몰락한 가세와 지병이 심한 어머니 탓에 자모전가(사채업자)를 들락거릴 정도로 궁색한 처지이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 호인 중의 호인. 튀지 않는 성품에 욕심이 없어 자칫 야망이 없는 한심한 사내로 보이기도 하나 온화하고 누구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내이다. 김승유와 신면, 개성 넘치는 두 친구를 보듬는 넓은 아량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승유와 나란히 경혜공주의 부마간택 후보에 오르고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승유 대신 부마도위로 간택되어 고속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 비록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공주의 남자이지만 경혜공주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한다. 실은, 저자거리에서 경혜공주를 처음 본 날부터, 그녀를 사랑했다. 경혜공주가 친구 승유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는 날까지 제 사랑을 보채거나 포기하지 않는 뼛속까지 멋진 남자, 정종이다. 

애초 권력과 정치에는 뜻이 없던 그였으나 경혜공주를 대신해 단종의 마지막 버팀목이 되어주며 점차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간다.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분노가 수양대군을 향해 폭발한다. 사육신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하고, 금성대군, 승유와 함께 단종 복위를 시도하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그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진다. 급기야 수양의 면전에서 욕설을 퍼붓다가 형장의 이슬로 비극적 생을 마감한다. “괜찮다면 내 아내를 사랑해줘.” 친구 승유에게 제 아내 경혜를 간절히 부탁하며. 



二. POWER


{6} 조선의 마키아벨리, 수양대군 (계유정난 당시 37세, 男)

군주는 나라를 만듦에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무슨 짓을 했든 칭송받게 되면, 위대한 군주로 추앙받게 된다.
-마키아벨리, <군주론>

고통은 나눌 수 있지만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마키아벨리의 화신. 왕좌를 얻은 후 권력의 분화를 두려워한 나머지 후궁조차 들이지 않았고 철저히 정략혼을 기반으로 한 측근정치를 추구했다. “적들이 나를 베기 전에 그들 목에 칼을 꽂아라!” 잔혹한 철권통치 아래 왕권 강화엔 성공했지만 재위 기간 내내 정통성 시비와 내란은 끊이지 않았다. 

수양은 유비의 덕과 조조의 교활함을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인물인 동시에 평정심 속에 잔인함을 갖춘 야누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계유정난 전의 그는 형인 문종에게 더없이 온화하고 따듯한 동생이다. 실은 형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절대 큰 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는 법이 없다. 제 욕망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주도면밀함. 달려야 할 때와 멈출 때, 드러내야 할 때와 숨을 때를 정확히 아는 승부사. 하지만 때때로 욕망실현을 위해 윤리나 도덕의 한계를 과감히 벗어나버리는 정신적 패륜의 속성도 엿보인다. 세상을 얻기 위해선 사람을 얻어야 함을 알고 있기에 타인의 속내를 읽는 <욕망의 독심술>에 매우 강하다. 상대방을 은근히 자극하여 감춰왔던 욕망을 드러내도록 야금야금 유도하는 수양대군.    

병약한 문종의 죽음이 확실시되면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양대군. 어린 세자 단종의 왕권을 제 것으로 하려면 당대의 권력자 김종서를 제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김종서가 단종의 뒤를 봐주며 왕권을 공고히 해주는 순간, 수양대군의 야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또다시 김종서의 사후를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재빨리 김종서에게 협력을 제안하는 수양대군. 김종서에게 그의 아들 승유와 제 딸 세령의 혼담을 건넨다. 사돈의 연을 맺어 조선을 함께 경영하자고. 

답을 기다리던 수양대군은 의외의 소식을 듣는다.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가 문종의 부마로 내정되었다! 결국 김종서는 문종과 손을 잡고 단종의 배후에 서기로 한 것이다. 이제 수양대군과 김종서는 의심할 바 없는 적이 된다! 수양대군의 시도는 더욱 은밀해진다. 한명회로 대표되는, 야만적 왈자패들과 접촉하여 김승유를 살해할 것을 지시한다. 실패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물증 없는 의심은 김종서에게 오히려 두려움을 낳을 것이다. 힘을 쓰는 자를 얻었으니 머리를 쓸 자가 필요하다. 한성부 관리 신면을 제 편으로 끌어들인 건 다 그 이유다. 신면의 아버지는 신숙주가 아닌가. 정해진 플랜대로 신면의 아버지 신숙주마저 포섭하는 그. 

이제 지상과제는 부마간택이다! 간택 과정에서 어떻게든 김승유를 누락시켜야 한다. 제1종친인 수양은 공주의 혼사를 담당하는 주혼이 되어 영문을 모르는 승유의 친구 정종을 은근히 추천한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기어코 길례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수양! 한명회 일파의 포악한 등장! 야만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후 수양대군의 행보는 더욱 포악해진다. 자신의 핏줄인 세령과 승유의 아름다운 사랑마저 핏빛 쿠데타의 도구로 이용하는 악행을 저지른 그는 마침내 딸이 사랑하는 남자 승유와 그의 아버지 김종서 일가를 도륙해 버린다. 죽은 줄만 알았던 김승유가 복수를 빌미로 세령을 납치하자 딸의 목숨마저 미련 없이 버리는 인면수심! 승유의 손에서 살아 돌아온 딸마저 달갑지 않다. 그 남자의 편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음험한 의심. 이제 그의 의심은 점점 커져간다.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 언제든 눈 뜨고 있어야 한다. 피로 얻은 권력을 피로 뺏길까봐 노심초사하는 그의 속내는 기실 <두려움>이다. 등 뒤를 조심하라! 늘 식은땀을 흘리며 모든 사람을 경계하는 불안한 눈동자...   

 

{7} 조선의 대호, 김종서 (계유정난 당시 70세, 男)

대호(大虎)로 불릴 정도로 엄한 최고 권력자. 막내아들인 승유를 내심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엄하지만 따듯한 아버지. 모두들 그를 <금상 위의 좌상>이라 불렀다. 임금보다 더한 권력을 가진 좌의정. 그의 권력 접수기는 특이하다. 그저 불사이군(不事二君)한 만고충신(萬古忠臣)의 길을 걷다보니 저절로 획득된 힘들. 선대왕 세종부터 시작된 충정은 문종에 이어 단종까지 이어진다. 허나 힘을 얻은 자에게 의심은 거둬지지 않는 법. 병약한 임금 문종 대신 조선팔도의 병권을 장악한 김종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수양대군이다. 
     
 먼저 청해온 수양대군의 혼담을 거부한 것도, 경혜공주와 승유의 결혼을 문종과 암약한 일도, 전부 수양대군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어린 단종의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뺏기지 말 것! 내정된 부마를 포장하기 위해 형식적인 부마간택 절차를 시작하는 문종과 김종서. 강론의 스승과 제자로 만난 승유와 경혜공주의 호감까지 확인한 문종과 김종서. 중간에 수양대군의 딸인 세령이 끼어 있음을 알 리가 없다. 모든 일이 너무나 순조롭다고 생각하던 찰나, 승유가 최종간택에 참석하지 않는다! 

강론에 참석하기 싫었던 경혜공주의 사소한 장난이 큰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아들 승유가 수양대군의 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문종은 죽었고, 단종은 어리며, 한명회와 손잡은 수양의 힘은 나날이 커져만 가는데, 김종서는....늙어간다. 지쳐간다. 참으로 피로하다. 이 때, 승유와 세령이 진심으로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종서. 그 일을 빌미로 다시 한 번 혼담을 건네는 수양대군.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아이들을 결혼시켜주자는 수양의 간곡한 청. 이를, 어쩐다?
       
{8} 허약한 왕, 문종 (39세에 승하, 男)

세종의 맏아들이며 수양대군의 형. 실제로 즉위 3년 만에 승하하는 불운의 임금. 무려 29년간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 높은 학문과 온화한 성품으로 세종의 뒤를 이을 성군으로 칭송받기도 했으나 병약한 몸 탓에 오로지 어린 세자(단종)를 무사히 보위에 올릴 생각에만 사로잡힌 유약한 임금. 경혜공주 또한 끔찍이 아끼는 탓에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 어릴 때 엄마를 잃은 딸이 그저 안쓰러운 마음에 버릇을 잘못 들여놓는 아버지.  
 
이미 절대 권력으로 군림한 김종서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던 동생 수양대군 사이에서 깊은 시름에 빠져있다. 두 거물 사이에서 억눌린, 안쓰러운 왕의 모습은 때로 신경질적인 성격으로 드러난다. 또 누구든 저를 무시한다 싶으면 더할 수 없이 예민해지지만 밖으로 표현도 못하는 탓에 속병만 깊어진다. 

승유와 경혜공주의 혼사를 통해 김종서와 혈맹을 맺고 수양대군의 야심을 견제하는 묘수를 던지지만 승유의 불참으로 무산된다. 임금의 명을 무시한 승유의 불참이 문종의 심기를 건드린다. 김종서에게마저 불똥이 튄다. 날 무시하니까 제 아들이 그런 짓을 하도록 내버려둔 거라고. 죽을 때까지 편치 못했던 문종. 그는 수양대군을 제거하라는 고명(유언)을 김종서에게 남기려 하는데...    

{9} 미완의 왕, 단종 (계유정난 당시 13세, 男)

태어난 다음 날 엄마를 잃고, 10대에 아버지를 잃었으며, 내내 두려움 속에서 살다 결국은 숙부에게 살해당한 가여운 아이. 하지만 숨죽인 채 자신의 왕위를 되찾아올 기회를 모색한, 품위 있던 아이. 매우 영민하고 지혜로웠다는, 어쩌면 조선 최대의 성군이 될 수도 있었던, 웃음이 밝고 예뻤던 아이. 슬픈 미완성의 왕.  


三. ENEMY

{10} 어둠의 자식, 한명회 (계유정난 당시 36세, 男)

4대문 안 최고의 왈자패 소굴 청풍관의 드러나지 않은 실세. 작고 깡마른 체격이지만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게 번득인다. 명문가의 혈통으로 태어났으나 곱지 않은 외모와 축복받지 못할 탄생으로 세상에 등을 돌리고 어둠의 자식이 되었다.  

자신을 경멸하는 세상의 시선. 그는 이제 지긋지긋한 음지를 벗어나 환한 빛 속에서 살고 싶다. 기어이 권력을 등에 업고 그토록 자신을 업신여겼던, 별것도 아닌 것들을 몽땅 짓밟아버리려 한다. 제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벌벌 떠는 그것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줄 테다. 또 다시 그의 비상한 두뇌가 회전한다. 과연 누구일까. 누구를 얻어야 ‘권력’의 맛을 느낄 수 있나.   

철저한 손익계산 끝에 가장 유망한 권력을 가진 자 와 접촉한다. 수양대군. 수양과의 검은 커넥션에 성공하며 권력의 말단 하수인이 아닌 권력의 중심부로 향해 가는 그. 승유의 벗인 신면을 또 다른 수양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또 다른 벗인 정종을 경혜공주의 부마후보에 올리는 데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높이 올라갈수록 밝은 데 나아갈수록 수양대군의 꼭두각시 주제에 여전히 저를 멸시하는 신면이 마땅찮다. 새로운 갈등구도의 형성.   

{11} 양정 (계유정난 당시 28세, 男)

청풍관의 행동대장. 수십 명의 수하를 거느린 한명회의 밑에서 더러운 일은 다 도맡아한다. 계유정난에 가담함으로써 공신으로 책봉되고 출세가도를 달린다. 영의정이 된 수양대군을 등에 업고 라이벌 조석주를 제압하고 정치깡패에서 정치 관료가 된다. 숙명의 라이벌 조석주의 싹을 완전히 자르기 위해 강화에 유배한다. 죽음의 섬에서 살아온 조석주가 김승유와 손을 잡고 복수에 가담했을 때, 제1의 희생자가 된다.   

{12} 칠갑 (계유정난 당시 20대 초반)
{13} 막손 (계유정난 당시 20대 초반)
{14} 동표 (계유정난 당시 20대 초반)

청풍관의 조직원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자, 칠갑.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자, 막손. 먹을 걸 보면 눈이 뒤집어지는, 동표. 개차반은 상상불가일 만큼 잔혹하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평등한 폭력을 행사한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같은 조직원들도 덜덜 떤다. 막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놈이 장통방 출신의 칠갑이다. 어떤 상황이든 음담패설을 적용하는 놀라운 재능의 소유자. 저보다 약간 더 잘난 동표의 외모를 시기한다. 잘생긴 동표는 먹는 걸 주는 여자를 제일 좋아한다.   

{15} 실용적 변절자, 신숙주 (계유정난 당시 36세, 男)

어쩌면 수양대군에게 줄을 설 명분이 필요했던 신숙주는 아들 신면이 수양대군과 접촉하는 걸 내버려둔다. 그리고 우아하게, 줄을 갈아탄다. 살아남겠다는데 무슨 명분이 필요한가.    

四. FAMILY

󰋎 빙옥관 식구들 

{16} 조석주 계유정난 당시 30세, 男
마포나루의 유곽 빙옥관의 두목. 
하루 종일 말 몇 마디 하지 않는 무거운 입.
청풍관 양정의 모함으로 지옥의 섬에 끌려간다.
배 위에서 승유를 만나 이후의 생사고락을 함께한다. 
승유의 정체를 알고 나서도 저버리지 않는 사내 중의 사내. 
승유의 의지가 되어주는 바위 같은 남자.
위기 때마다 승유를 구해줄 뿐 아니라 유곽에 있는 
여자들을 진심으로 아껴주는 멋진 남자. 

{17} 전경남 계유정난 당시 21세, 男
자신의 본명은 왕경남이고 스스로를 고려 왕족의 후예라고 우기는 절대 마초. 안평대군의 호위무사.    
결국 승유와 석주가 도모하는 새조직의 핵심 무사가 된다.

{18} 공칠구계유정난 당시 27세, 男
도박, 위조, 변장, 소매치기 등에 능한 타고난 사기꾼.
조석주가 없는 사이, 빙옥관을 삼켰다가 도로 내놓는다. 
눈앞에 사욕에 빠져 승유를 번번이 곤경에 처하게 하지만 끝내 승유의 사람이 되어 그를 돕는다. 
   
{19} 초희 계유정난 당시 27세, 女
전직 기생이자 유곽 ‘빙옥관’을 경영하는 수완가.
별명, 얼음선녀. 아름답지만 차갑다.
계유정난 때 죽은 어떤 대신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빙옥관’은 승유와 조석주가 재기하는 발판이 되어주는,
일종의 핵심 아지트가 된다. 
조석주와 불같은 사랑을 나눈다.    

{20} 무영계유정난 당시 20세, 여
빙옥관의 아리따운 검객. 
생리학적인 성은 남성이나 영혼은 여성이다. 
빙옥관 앞에서는 미모를 무기로 호객행위를 하지만
위기의 순간 냉혹한 무사로 돌변하는 매력의 소유자.
관심은 온통 여자들의 고운 옷과 장신구와 화장에 있다. 
마음속에 전경남을 흠모하고 있지만 고백하지 못한다.  

{21} 소앵계유정난 10대 후반, 女 
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은 빙옥관 막내 기생
거리에서 배를 곯던 아이를 초희가 데려왔다.
그만큼 거칠다. 철은 없지만 때도 안 묻었다.
소앵의 첫사랑은 승유. 저를 사랑 안 하면 죽겠다고 
억지 부릴 만큼 무모한 십대의 첫사랑.   

󰋏 김승유 관련 

{22} 김승규계유정난 당시 30세, 男 
김종서의 장자이자 승유의 큰 형. 아버지 김종서를 절대적으로 존경하던 그는 끝까지 아버지를 지키려다 살해당한다.  

{23} 이개 사육신 사건 당시 39세, 男 
승유의 스승이자 신면의 스승. 종학의 교장 격. 
제자 신면의 칼에 최후를 맞는다.
 
{24} 금성대군 32세로 사사(賜死), 男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이자 문종, 수양대군의 동생 
형 수양에게 맞서다 순흥에 유배된다. 
거기서승유, 정종,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거사를 계획,
내부의 고변으로 실패한 뒤 사사 당한다.
  승유의 재목을 알아봐주고 북돋아주는, 품격 있는 왕족.

{25} 이시애 이시애의 난 당시 55세, 男 
함길도의 호족. 이시애의 난 주모자.
 집권 말기 수양이 북방민 등용을 억제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자 반란을 일으킨다. 승유와 조석주 무리를 적절히 끌어들여 그 세를 크게 확장한다. 민심을 선동할 줄 알고, 
적의 내분을 조장하는 술수에도 능하다. 함길도 절도사 
강효문을 제거한 후 그가 한명회, 신숙주와 짜고 역모를 
꾸몄다고 거짓 장계를 올려 수양을 혼란스럽게 한다. 
심리전에 능하여 의심 많은 수양이 급기야 한명회와 신숙주를 하옥하기에 이른다.

{26} 박홍수  계유정난 당시 30세, 男
조선 최정예 포병부대 총통위의 부장. 
김종서가 함길도관찰사 시절 하급장교로 그를 모셨다. 
주군처럼 모셨던 김종서의 아들이 살아있음에 놀라고 
승유의 계획에 동참한다. 승유의 편에 서서 가공할 화력을 
지닌 총통위를 수양의 병권을 제압하는데 사용하려 하나 
거사가 탄로나 실패한다. 간신히 생명을 부지하여 정처 
없이 도망자로 떠돌다가 함길도에서 승유와 재회한다.

{27} 안평대군 계유정난 당시 30대 중반, 男
수양대군의 동생. 시, 서, 화를 사랑한 예술적 기질의 왕족.  
계유정난 당시 유배되어 사사 당한다.  

󰋏 세령 관련 

{28} 윤씨 부인계유정난 당시 36세, 女
왕위를 노리는 남편에게 눌려 사는 아녀자.
여염집 딸들과 다른 세령이 늘 위태위태하다.  
왕위를 지키려는 남편 수양이 점점 잔혹해지면서 
그녀의 자식들은 아프거나, 죽거나, 떠난다. 
점점 병들어가는 어미의 마음. 수양이 딸 세령마저 
미련 없이 버리자 남편에게서 돌아선다.  
이제 윤씨 부인은 작고도 소심한 복수를 꿈꾼다.
경혜공주의 아들 미수를 몰래 들여와 키우는 것.
남편이 그렇게도 두려워하는 역모의 씨앗을 남편의 
등잔 밑에서 기르는 일...

{29} 임운계유정난 당시 24세, 남
수양대군의 그림자. 가노이자 개인비서의 역할. 
유일하게 수양대군이 경계를 푸는, 가장 신뢰하는 충복. 
수양대군의 지시로 은밀히 세령의 뒤를 밟기도 한다.
 계유정난에 참여한 다른 잡인들과 달리 절대 관직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30} 여리계유정난 당시 24세, 女
세령의 몸종. 살집이 좋고 무던한 성격. 
까딱하면 사라지는 세령을 찾느라 늘 바쁘다.  
유달리 잘해주진 않지만 인간 취급 해주는 세령이 좋다. 
끝까지 세령과 함께 하며 온갖 고초를 겪는다. 

󰋐 경혜공주 관련

{31} 정미수경혜공주와 정종 사이에 낳은 아들

{32} 은금계유정난 당시 19세, 女 
경혜공주의 몸종. 
까다롭고 안하무인 상전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하다.
저를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할 때면 특히.   
그래도 은금이가 삐진 척 하면 못 이긴 척 한 번씩 
던져주는 경혜의 예쁜 장신구들 때문에 울다가도 웃는다.
남들에게 우는 꼴을 절대 들키지 않는 경혜가 안쓰럽다. 
그러다보니 미운정이 단단히 들었다.  
궁 밖에 나갈 때도, 유배를 갈 때도 굳이 같이 갈 필요 
없다고 우기는 경혜공주와 기어이 함께 한다. 

󰋑 신면 관련

{33} 송자번계유정난 당시 23세, 男
별명 저승사자. 신면의 충복이자 행동대장. 
피도 눈물도 없는 추격자,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살인병기. 양정 등과 긴밀하게 협조하여 승유를 비롯한 반 수양세력을 
색출하고 제거하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이다.   

󰋒 그 외/ 조정의 대신들/ 왈자패 일당 外




󰌳 이야기: 그들의 핏빛 로맨스 󰌳

{제1화}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스산한 밤하늘을 깨운다.
어둠을 뚫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말 한 필이 있으니, 그 위에는 피 묻은 복색의 승유가 타고 있다. 끝없이 더운 눈물이 솟는 승유의 눈에 방금 전 목격했던 끔찍한 광경이 어른거린다. 
  수양대군과 왈패들이 휘두른 철퇴에 쓰러진 아버지와 형! 그 선혈로 땅바닥이 온통 흥건해진 목불인견! 평화롭고 다복했던 식솔들이 도륙을 당한 아비규환! 
  기적처럼 숨이 끊어지지 않은 아버지 김종서는 승유의 옷깃을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내뱉었다. 
  “당장.. 전하께 역모를 고해라!”  
  “아버지...!”
  “못난 놈! 서둘러라! 수양이 전하에게 가고 있을 것이야.”  
  이미 숨을 거둔 형의 주검과 유혈이 낭자한 아버지를 두고 승유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말에 오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승유가 필사적으로 향하고 있는 곳은 어린 임금 단종의 시어소(임시 처소)가 차려져 있는 경혜공주의 향교동 집이다.  

  “주상전하!”
  간신히 경혜공주의 집 앞에 다다른 승유의 목소리가 밤하늘을 가른다. 이미 수양대군의 편에 선 내금위 군사들이 승유를 가로막고 섰지만 통곡 같은 승유의 목소리가 잠든 시어소를 깨운다.  
  “역모이옵니다. 수양대군이 역모를 일으켰사옵니다!”
  피를 토하는 승유의 목소리에 놀란 경혜공주와 부마 정종. 놀란 얼굴로 집밖으로 나서 승유를 집안으로 들인다. 경혜공주는 피범벅이 된 승유의 몰골에 아연실색하고 급히 단종을 알현하게 하는데..
  승유가 겁에 질린 단종에게 예를 갖추기도 전, 수양대군 일당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집안으로 들이닥친다. 정종은 다급히 승유를 은밀한 곳에 숨기고 단종과 함께 수양대군을 맞는데...

  “전하, 간흉 김종서가 불궤한 역모를 꾸며 신이 주살하였나이다.”
  수양대군의 입에서 터져 나온 역모라는 소리에 승유의 피가 거꾸로 솟는다.
  수양대군이 단종에게 김종서의 역모를 고하는 동안, 한명회의 지시를 받은 양정과 왈패들은 시어소를 철통 같이 에워싸고 집안을 샅샅이 수색한다. 김종서의 마지막 혈육인 승유가 집안에 숨어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그들.
  아직 핏방울이 마르지 않은 칼과 철퇴를 든 채 승유를 찾는 한명회의 수하들.. 그 선두에 다름 아닌 죽마고우 신면이 있다. 
  신면의 날카로운 칼끝은 점점 승유를 향해 옥죄어 가는데... 

  그로부터 2년 전인 1451년. 병약한 임금 문종과 나이 어린 세자 단종을 둘러싸고 좌의정 김종서와 제일 왕숙 수양대군의 갈등은 날로 깊어만 간다. 
  문종에게 수양대군은 자신의 사후에 세자의 보위를 위협하는 강력한 왕재였으며, 김종서는 조선 팔도의 실질적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금상 위의 좌상’이었다.
  그런 막강한 권력자 김종서의 막내아들이며 한양 제일의 귀공자인 승유는 성균관 박사 겸 종학(종친들의 교육기관, 일종의 왕족학교) 직강으로 재직하고 있다. 종학은 자신들의 혈통만을 믿고 무위도식하는 한심한 종친들에게 유학을 강론하는 제법 한가로운 곳이었다. 
  낮에는 부담 없이 종학을 들락거리고, 밤에는 죽마고우들과 더불어 후회 없는 청춘을 만끽하는 승유는 치열한 정치 현실과는 몇 발짝 떨어져 있었다.  

  이즈음 이개(李塏)를 비롯한 종학 스승들에게는 골칫거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문종의 장녀 경혜공주였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생모를 잃은 경혜공주는 그 미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나 아버지 문종의 총애를 믿고 철없고 오만방자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따분한 강론을 견디지 못한 경혜공주는 들어오는 강론 스승들을 줄줄이 골탕 먹여 갈아치우기를 벌써 몇 차례였다. 
  아버지 문종 외에는 그 누구도 올려보지 않는 도도한 경혜공주.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터놓는 유일한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수양대군의 딸인 세령뿐이었는데...  

  종학을 총괄하고 있는 이개는 마땅한 공주의 사부를 찾지 못해 승유에게 경혜공주의 강론 스승을 명한다. 스승들을 놀리는 재미로도 부족했던 경혜공주는 마침 종학 수업을 위해 입궐한 세령에게 대신 공주 역할을 부탁하고는 궐 밖 구경에 나선다. 그리하여 예정된 승유와 경혜공주의 첫대면은 승유와 세령의 첫만남이 되고 만다!

  발을 사이에 둔 첫 강론시간.
  일국의 공주조차 한낱 아녀자에 불과하다 생각하는 귀공자 승유와 공주를 대신해 앉아있는 자유로운 영혼 세령. 첫 대면부터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하고 부딪치는 걸로도 모자라 서로의 용모를 확인해버린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여자와 어린아이는 심히 다루기 어렵다, 가까이 하면 
  버릇이 없어지고, 멀리하면 원망을 한다 이르셨습니다.”
  세령에게 승유의 첫인상은 여인에게 순응과 복종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자였고, 승유에게 공주는 소문과는 달리 제법 만만치 않은 학식이 있으나 역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집불통이었다. 다음 강론 시간에는 이 맹랑한 여인네의 버릇을 단숨에 꺾어놓으리... 세령이 승유에게 제 얼굴을 들켰다는 사실을 안 경혜공주는 오히려 반색한다. 계속해서 세령에게 강론방에 들어가라고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한편 문종은 자신의 사후 어린 단종을 김종서에게 부탁한다. 자식을 지키고자 동생 수양대군을 경계하는 문종의 행동은 애잔하기까지하다. 그 시각. 문종의 멀지 않은 죽음을 알게 된 수양 일파도 고심에 빠졌다. 과연 김종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과감히 칠 것인가 아닌가.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세령을 보면서 어떤 묘수가 떠오른 수양. 그날 밤, 김종서의 집을 은밀하게 찾은 수양대군은 넌지시 혼담을 건넨다! 자신의 딸 세령과 김종서의 아들 승유의 정략혼 뒤에는 문종의 사후 김종서와 함께 조선을 경영하고자하는 정치적 제안이 담겨있다.   
 
  세령과 승유의 두 번째 강론. 신경전을 계속하던 두 사람 앞에 난데없이 문종이 나타난다! 임금에게 저와 경혜공주의 소행이 들킬까 두려운 세령은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승유는 세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괘씸하기만 하다. 승유가 공주를 다시 마주친 곳은 놀랍게도 저잣거리 한 복판이었다. 그것도 일국의 공주가 여염집 여인의 복색으로 말을 타고 지나가는 것 아닌가! 화들짝 놀란 승유는 어이가 없어 공주의 뒤를 따르는데... 

  사내들처럼 말을 타고 벌판을 시원하게 달리고 싶은 세령. 
  누굴 닮았는지 모를 호기심과 대범함이 기어이 일을 터트렸다. 집안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기어이 아버지 수양대군의 말 위에 오른 세령. 사내와 계집 차별이라도 하는지 언제나 말괄량이 아가씨를 외면하던 녀석이 오늘따라 음전하고 고분고분하게 세령을 받아준다. 터벅터벅 신사답게 걸음을 떼더니 이내 익숙한 듯 대문 밖으로 나가는 말. 몸종인 여리가 기겁을 하고 막아서려 하지만 세령의 귀에는 이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신나는 경험도 오래가지 않았다. 기특해 옆구리를 쓰다듬어 준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고삐를 조금 당긴 것이 화근이었는지... 히잉! 힘차게 울어 젖힌 말은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한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조차 지를 수 없어 그저 말 등에 납작 엎드린 세령. 저 앞에 출렁이는 강물이 보이지만 점점 더 흥분한 말은 속도를 늦출 줄 모르는데... 
   
  같은 시간 궁궐 안 편전. 문종은 대신과 종친들 앞에서 경혜공주의 혼사에 대해서 입을 연다. 그리고 틈을 주지 않고 김종서의 아들 김승유를 부마로 삼을 것임을 선언해 버린다. 문종과 김종서에게 뜻밖의 일격을 당한 수양대군! 

  위험천만한 마상의 세령. 순간 말을 탄 사내가 기적처럼 다가오더니 세령의 뒤에 아슬아슬하게 올라탄다. 그러나 말을 멈춰 세우기엔 이미 늦은 상황. 세령을 안고 옆 풀숲으로 몸을 던지는 사내는 승유다!
      
{제2화}

   세령이 탄 놀란 말은 강물 앞에서 고꾸라지고, 사단이 났다 생각한 세령은 아직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데... “대체 왜 이리 무모하십니까!” 뜻밖의 상황에서 세령을 마주친 승유는 그녀를 당연히 경혜공주라 생각하며 걱정하고 또 나무란다.
   
  김승유를 부마로 삼는다! 예기치 못한 문종의 발표를 들은 수양대군. 이제 적과 동지는 자명하게 갈라졌다. 뜻밖에 수양대군은 경혜공주와 승유의 혼사를 지지하며 자신이 이 국혼을 책임질 주혼(혼사를 맡아 주관하는 것)을 자청하고 나선다. 하지만 형식적이나마 지엄한 왕실의 예법에 따라 간택의 절차를 밟을 것을 주청한다. 국혼이기에 더더욱 예법을 따르자는 수양대군의 주장을 물리칠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또한 제일 왕숙인 수양대군이 주혼을 맡음은 당연한 법도였으나, 그의 매서운 눈빛은 심상치 않은 음모를 예고하는데...

   어쩔 수 없이 공주 행세를 해야 하는 세령. 다행히 다친 곳은 없으나 바닥을 뒹군 세령의 치마는 크게 찢겨 도무지 거리를 다닐 수 없는 지경이다. 승유가 자신의 말에 세령을 태우려 하는데...   
  “궁 밖으로 나선 일이 들통 나면 어찌하실 겁니까? 
   그 몰골로 궐 안에 들어가실 수 있겠습니까?”
  세령은 어쩔 수 없이 승유의 말에 오른다. 한달음에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승유와 친구들의 단골 기방이다. 이곳에서 세령에게 마땅한 옷을 빌릴 요량인데... 난생 처음 기방이란 곳을 구경하게 된 세령. 보아하니 명색이 스승이란 작자가 기방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뻔뻔한 호색한이 아닌가. 세령의 속마음은 모른 채 승유는 공주에게 마땅한 복색을 찾으려 나름 분주하다. 그러나 기녀들의 복색이 세령에게 어울릴 리 만무하다. 간신히 그나마 얌전한 치마를 골라 세령에게 건네는 승유. 기녀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던 세령은 이내 승유에게 이끌려 궐 앞까지 갈 상황에 눈앞이 캄캄해지는데...
  승유는 세인들의 시선을 걱정하여 말 대신 가마를 준비시킨다. 가마에 오르는 세령은 호시탐탐 승유의 눈을 피해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승유와 가마꾼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서둘러 가마를 빠져나간다. 
  잠시 후, 텅 비어있는 가마 안을 보는 승유. 세령의 옷보자기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승유는 궁으로 찾아가 경혜공주의 시녀인 은금을 불러 혹시 모를 공주의 안위를 확인하고 옷보자기를 건넨다.  

  한편 아버지 문종에게서 제 혼사에 대해 전해들은 경혜공주는 강론 스승인 김승유가 부마가 될 사내임을 알게 된다! 갑작스런 혼담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경혜공주. 그러나 문종은 이것은 단순한 혼사가 아니라 나이 어린 세자를 수양으로부터  지킬 유일한 방책이라며 비장하게 경혜공주를 쳐다본다. 
  이미 세령을 공주로 생각하고 있을 승유를 생각하며 불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는 경혜공주. 그 와중에 시녀 은금은 승유가 건넸다는 옷보자기를 펼쳐 보인다. 찢겨졌으나 분명 세령의 옷이다. 난데없이 세령의 옷을 전해주러 온 승유. 승유와 세령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종잡을 수 없는 불길한 상상들이 경혜공주를 괴롭히는데...
    
  다음날. 종학 강론방에 다시 마주 앉은 승유와 세령. 승유는 세령에게 갑자기 자취를 감춘 영문에 대해 묻고 대답을 하려던 세령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버린다. 강론방 안에서 차를 따르는 궁녀는 다름 아닌 경혜공주 아닌가! 무슨 이유였을까. 지난날 소동에 대해 나무라고 타이르는 승유의 목소리를 듣는 세령은 경혜공주 앞에 거짓말을 하다 들킨 아이가 된 기분이다. 
  강론을 마친 세령은 경혜공주에게 부마간택에 대한 축하인사를 올리는데... 그때까지도 경혜공주가 평소와 달리 왜 그리 냉랭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승유가 자신도 모르는 인연의 소용돌이에 천천히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친구인 신면은 도성의 치안을 담당하는 한성부의 중책을 맡게 된다.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아버지 신숙주였다. 신숙주는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집현전에 머물고 있는 안타까운 인물이었기에 아들의 입신양명을 무엇보다 반겼다. 신숙주는 경혜공주의 혼사를 위해 설치될 길례청에 파견될 예정이었다. 
  신면은 평소 소신대로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는 모리배들을 소탕한다. 그 와중에 고급 기방 청풍관을 기반으로 자모전가(사채업)를 운영하는 한명회와 양정 등의 왈패들을 발본색원하려는데... 권세가의 비호를 받고 있기에 누구도 건드리길 꺼려하는 청풍관으로 거침없이 달려드는 신면. 그곳에서 신면이 목격한 것은 뜻밖에도 수양대군이었다. 그렇게 수양대군과 운명적인 첫 대면을 하게 되는데... 
  신면은 수양대군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에 잠시 주춤하지만, 한명회, 양정을 비롯한 청풍관의 실체에 대한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  

  태연하게 경혜공주와 승유의 혼사에 주혼을 맡은 수양대군. 그는 추호도 이 혼사를 성사시킬 생각이 없다. 아니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반드시 저지해야만 한다. 승유와 세령의 혼사를 추진하던 중 문종에게 회심의 일격을 당한 수양대군은 무서운 음모를 준비하고 있다. 손을 잡을 수 없는 상대라면 그 손목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 수양의 방식이다. 수양은 한명회 일파를 시켜 승유를 깨끗이 제거할 생각이다.  
 
  드디어 주혼을 맡은 수양대군의 감독 아래 길례청이 설치되고, 전국에 부마간택령이 선포된다. 동시에 혼인 가능한 젊은 사내들에게 일제히 금혼령이 내려진다. 승유와 정종의 간택단자 또한 접수되었고, 신면은 아직 혼사를 치르지 않은 친형의 간택단자가 접수되었다. 
  대수롭지 않게 간택단자를 접수시킨 승유는 아버지 김종서 앞에 공손히 앉아있다. “부마는 이미 결정되었다. 부마는 바로 너이니라!”
  자신이 부마로 내정된 사실을 알게 된 승유... 
  ...인연이 아닌가! 아버지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들은 승유는 그렇게 생각했다. 인연이라고...    

  인연은 곧 바로 궐 밖에서 계속되었다. 친구인 정종을 만나기 위해 기방으로 가던 승유. 지난날 타고 나왔다가 쓰러진 아버지 수양대군의 말을 데리러 기방에 온 세령. “또 나오셨습니까, 공주마마”  
  어찌 이 여인은 그토록 말을 타고 싶어 하는가. 위험하지만 누군가 가르쳐줘야 한다면 자신이 해주고 싶었다. 말을 타고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보고 싶다는 세령의 얘기에 승유는 세령에게 말 타는 법을 가르친다. 강론방에서와 달리 자상하고 친절하게...
  천천히 세령과 승유를 태우고 걷던 말이 대지를 박차고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시원한 바람과 아득한 자유를 느끼는 세령.. 
  그런 세령을 보며 묘한 행복감을 느끼는 승유, 미처 복면을 한 한명회 수하들의 접근을 눈치 채지 못하는데... 허공을 가르며 승유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 

{제3화}

  갑작스런 위험을 감지하고 앞발을 허공으로 치켜드는 승유의 말.
  승유를 향해 날아오던 화살은 말의 몸통에 꽂힌다. 그대로 땅으로 내다꽂히는 승유와 세령. 미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칼을 들고 달려드는 검은 복면의 무리들.
  승유는 순간적으로 이 습격이 공주를 노린 것이라 생각했다. 잽싸게 공주를 등지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 승유. 그러나 무기조차 없는 승유가 세령을 지킬 수 있을까..
  먼저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검객을 제압한 승유는 재빨리 칼을 뺐어든다. 그러나 십수명의 자객들을 혼자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일제히 공격하는 복면 자객들. 간신히 한놈 두 놈을 제압하지만 자객들의 검이 순식간에 승유의 팔과 다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놀란 세령은 승유의 뒤에 숨어만 있을 수 없다. 땅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들고 어설픈 공격 자세를 취하는 세령. 야만스런 웃음을 짓는 자객들.
  승유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 절체절명의  순간 천우신조처럼 나타난 것은 신면의 한성부 심복인 송자번이었다.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지나가던 송자번과 군사들이 득달같이 날아와 자객들을 공격한다. 할 수없이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자객들.        
  세령은 깊진 않지만 피가 맺힌 승유의 생채기가 마음에 걸린다. 승유는 방금 벌어진 상황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공주를 노린 불손한 세력들의 정체에 대한.. 그리고 이 일을 조정에 보고할 경우 궁을 월담한 공주의 행실이 도마에 오를 것이다.
  승유는 송자번을 앞세우고 신면이 있는 한성부로 향한다. 말없이 승유의 상처를 묶어 지혈해 주는 세령의 모습은 잔뜩 곤두서 있던 승유의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켜준다.  
  한성부 신면의 집무실. 주위를 물리고 신면과 마주한 승유와 세령. 승유는 믿음직한 친구 신면에게 공주를 소개한다. 세령을 본 신면은 잠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 동안 풍문으로만 전해 듣던 공주의 도도한 외모와는 다른 느낌의 미인 아닌가! 승유는 신면에게 자신과 공주를 습격한 자들의 은밀한 조사를 부탁한다. 친구의 부탁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신면. 

  신면 부하들의 은밀한 호위를 받으며 궐 앞까지 당도한 승유와 세령. 세령은 어쩔 수 없이 궐 안으로 향한다. 세령의 입궐을 전해 듣는 경혜공주. 
  경혜공주와 마주 앉은 세령은 지난번과 같은 오해를 만들기 싫어 궁 밖에서 승유와 우연히 마주쳐 공주 행세를 할 수 밖에 없었음을 털어놓는다. 도적 무리에게 갑작스런 습격을 당한 일을 털어놓다가 승유가 제 몸을 던져 자신을 지키려 했음까지도 말하게 된다. 
  세령의 얘기를 듣는 경혜공주의 표정은 점점 차갑게 굳어가기만 하는데.. 세령의 얘기를 끝까지 들은 경혜공주는 경고를 하듯 세령에게 내뱉는다.
  “김승유는 부마가 될 사내이다.”  
  순간 놀라움에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이 하얀 세령.. 공주에게 머리를 숙여 다시  한 번 감축의 인사를 올릴 뿐이다. 

  한편 김승유의 제거에 실패한 복면 자객들이 수양대군과 한명회 앞에 부복해 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청하는 자객의 우두머리. 그러나 더 이상 벌집을 쑤셔놓을 순 없는 노릇. 차후의 지시를 기다리라는 수양대군의 명을 듣고 물러나는 자객들. 수양은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 대신 술상 한판을 하사한다. 
  그러나 술에 취한 자객들의 목을 노리고 있는 것은 양정과 왈패들이다. 실패한 음모를 어둠 속에 조용히 묻어버리는 수양대군. 이미 다음 계략을 고민하고 있다.

  경혜공주는 더 이상 승유와 세령의 강론을 진행하는 것이 무리라 판단하고 아버지 문종을 졸라 강론을 중단시킨다. 갑작스레 마지막 강론을 하게 된 승유와 세령. 승유는 머지않아 자신의 배필이 될 세령이기에 따뜻한 목소리로 마지막 강론을 진행하고, 세령은 승유의 들뜬 목소리가 경혜공주가 아닌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기에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난생 처음 바람과 자유를 느끼게 해준 스승 승유에게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세령.. 

  최종간택에 오른 최후의 3인이 정해졌다. 당연히 승유의 이름이 있고 거기에 정종이 포함돼 있는 것이 의외였다. 수양대군이 승유를 대신할 대항마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정종이다. 가문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처지지 않으나 이미 가세가 몰락하고 어떤 정치적 연결 고리도 없는 정종이야 말로 수양의 구미에 딱 맞는 패였다.
  수양은 최종간택에서 김승유를 탈락시킬 계략을 철저히 세운다. 경혜공주와 궁합수를 맞춰 볼 김승유의 간택단자는 이미 조작을 끝낸 상황이고, 간택심사관 중 결정적 역할을 할 신숙주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다음이다. 

  최종 부마간택을 앞둔 어느 날. 신면은 승유가 부탁한 사건 조사에서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뜻밖에 아버지 신숙주와 함께 수양대군의 은밀한 초대를 받게 된다. 수양은 신숙주의 마음 속 불만을 꿰뚫어 보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 수양이 신면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음은 신숙주의 마음을 흔드는데 과연 유효적절하였다.
  그 밤 신면의 마음은 사정없이 요동친다. 수양대군이 아버지와 자신에게 던진 얘기들은 교묘하게 신면의 마음 속 야망을 꿈틀거리게 하였다. 잠시 어른들의 은밀한 대화를 위해 자리를 피하는 신면은 후원에서 우연히 세령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수양대군의 장녀인 세령임을 알게 된다! 승유가 경혜공주로 알고 있는 여인이 수양대군의 딸이라니.. 세령 역시 자신의 집안에서 승유의 친구를 마주쳤기에 적잖이 당황하는데... 

  최종간택을 하루 앞둔 날. 경혜공주의 시녀인 은금이 종학으로 승유를 찾아온다.
공주께서 뵙기를 청한다는 얘기에 은금을 따라나서는 승유. 
  마침내 공주 처소에 들어가 경혜공주와 대면한 순간, 그대로 굳어 버리는 승유! “곧 부마가 되실 분께서 다른 여인을 그리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강론장에 들어왔던 궁녀가 공주 복색을 한 채 앉아 있다! 도도히...  

{제4화}

  정신을 추스르고 경혜공주에게 자신이 지금껏 공주라고 믿고 있던 여인의 정체를 묻는 승유. 
  “제가 뵈었던 그 분은 누굽니까?”
  “김직강은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누굽니까, 말씀하소서!”
  세령을 찾는 승유를 원망스럽게 노려보는 경혜공주.
  경혜공주는 승유에게 끝내 세령의 정체를 말하지 않는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 여인은 그저 궁녀일 뿐이라고 거짓말한다. 단순한 질투만은 아니었다. 당장 지아비로 맞이할 승유가 세령을 완전히 잊길 바라는 공주의 마지막 안간힘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충격과 혼란에 휩싸이는 승유. 공주 복색을 하고 앉아있던 강론 시간들, 말을 타며 환하게 웃던 세령의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최종간택의 날이 밝아온다. 
  
  대궐 안은 최종 부마후보들이 문종 앞에서 마지막 간택 심사를 받을 지엄한 자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승유는 넋이 나간 얼굴로 하인들의 치장을 받아 입궐한다.    승유의 친구인 정종도 도무지 최종간택까지 오른 영문을 모른 채 환한 얼굴로 대궐에 들어선다. 부마가 되지 않더라도 최종간택에 오른 후보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에 기분 좋게 승유의 부마간택을 축하해줄 요량이었다.  

   그 시각 편전에서는 문종을 비롯한 대신들과 수양을 비롯한 간택심사관들이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간신히 병색을 숨기고 용상에 앉아있는 문종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는데.. 
  그 시발점은 김승유에 대한 신숙주의 주장이었다. 부마후보 김승유는 모친이 없는 ‘부모미구전자’이기에 부마가 될 수 없다는 자격론. 부모 중에 어느 한쪽이라도 생존해 있지 않으면 왕실과 혼인의 연을 맺을 수 없는 것이 엄연한 법도였다. 집현전 학자로 명성이 드높고 예법에 조예가 깊은 신숙주의 직언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쏟는 김종서의 일파들.  
  여기에 수양대군이 준비한 회심의 비책을 꺼내놓는다. 수양을 비롯한 간택심사관들이 일제히 승유와 경혜공주의 불길한 궁합수를 거론하며 도저히 승유를 부마로 삼을 수 없음을 간청한다. 특히 궁합수의 불운이 그들 자신보다는 어린 단종을 향해있다는, 불길한 예언까지 곁들여.   
  수세에 몰린 문종과 김종서. 문종은 이 난관을 직접 부마후보들을 만나 결정하겠다며 정면 돌파를 시도한다. 예상은 했으나 쉽게 물러나지 않는 문종의 반격에 긴장하는 수양대군. 이미 수양대군은 문종의 강수를 예상하고 김종서를 견제하는 종친세력들을 규합하여 김승유를 부마도위로 삼을 수 없음을 간청하는 상소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집안에서 아버지의 말을 쓰다듬고 있는 세령. 승유가 부마로 간택될 것임을 익히 알고 있는 세령은 말을 타고 달려 나가고 싶다. 난생 처음 가슴에 견딜 수 없는 감정의 격랑을 느끼는 세령..
  “최종간택이 있을 것이오. 후보들은 속히 예를 갖추시오”
  생각에 잠겨 있던 승유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승유가 향한 곳은 문종을 알현해야 할 간택장 앞이 아니다. 간택심사를 거부하고 제 발로 간택장을 빠져나가는 승유!
  자신의 행동이 왕을 능멸하는 일이며 능지처참을 당해 마땅한 일인지조차 승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세령의 웃는 얼굴이 떠올라 자신이 서있으면 안될 자리라 생각했을 뿐이다. 

  승유의 불참에 싸늘하게 얼어붙은 간택장. 문종과 김종서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버렸다. 김종서는 자신의 입으로 승유을 잡아 하옥시킬 것을 명한다. 
  승유가 없는 김빠진 부마간택. 수양대군의 지지를 받은 정종이 부마로 최종 낙점된다. 그 순간, 문종은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환하게 웃는 수양의 미소에 숨이 막혔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부마도위가 되어있는 정종. 이 순간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정종이 부마가 되었다는 소식보다 승유가 최종간택에 나서지 않았다는 얘기가 더 빠르게 퍼져나간다. 
  은금에게 그 얘기를 전해들은 경혜공주는 충격에 휘청이고, 
  역시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세령은 순간 생각한다. 어떡하든 승유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야 한다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5화~8화}

  최종 간택에 불참한 대가는 혹독했다. 의금부에 하옥되는 승유. 종사를 능멸한 승유가 간신히 목숨을 구한 것은 조선 최고 권력자를 아버지로 둔 덕이었다. 게다가 승유의 불참 덕에 큰 시름을 덜은 수양대군의 자비 또한 승유를 살렸다. 
  승유는 종학의 스승 자격을 박탈당하고 벽지로 좌천되는 신세가 된다. 이번 일로 아버지 김종서의 정치 생명에 큰 타격을 입혔음은 물론이다. 수양대군을 비롯한 종친세력들이 모처럼 기를 펴는 순간이다. 

  세령은 한양을 떠나는 승유를 만나기 위해 달려간다. 보고 싶고, 얘기하고 싶다.
나의 이름은 경혜가 아니라 세령이라고..... 자꾸만 더 애절해지는 감정....!! 이럴 때 말을 탈 줄 알았더라면... 그러나 세령의 앞을 막아서는 이가 있으니 바로 신면이다. 
  수양대군은 이미 신면을 세령의 배필로 여기고 있다. 신면은 머지않아 자신의 지어미가 될 세령이 자신의 친구인 승유를 바라보고 있음이 마음 불편하다. 당연히 승유가 세령의 정체를 모른 채 경혜공주와 혼인하길 바랬고, 간택장을 뛰쳐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세령이 승유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눈빛에서.. 신면은 승유에 대한 강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어린 시절부터 항상 자신보다 우월하고 여유로웠던 승유이기에...
  끝내 신면을 밀쳐내고 승유에게 달려가는 세령! 그러나 승유는 이미 사대문을 빠져나간 후이다. 

  문종은 경혜공주의 길례를 서두른다. 문종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모처럼 궁에는 수양대군을 비롯한 대소신료와 종친들이 모여 경혜공주의 혼인을 축하한다. 세령도 경혜공주에게 축하의 예를 갖추지만 공주는 싸늘하게 세령의 눈빛을 외면한다. 
  겉보기에 더없이 축복받을 만한 이날, 수많은 죄인들이 유배지에서 풀려났고 승유 또한 조용히 한양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양으로 향하며 승유의 머릿속은 애써 묘령의 여인 세령을 밀쳐내고 있다. 또 다시 어리석은 사랑은 하지 않으리 다짐하며..  

  경혜공주와 정종의 첫날밤. 비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된 공주의 남자이지만 경혜공주를 위해 한평생 살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믿음직한 지아비 정종이다. 그러나 그런 정종을 차갑게 거부하는 경혜공주. 정종이 사내로 마음에 차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아무런 배경 없는 정종이 어린 단종을 지켜줄 수 있을지 못미더워서인지.. 
  냉랭한 첫날밤은 깊어만 가는데, 난데없이 문종의 위독함을 알리는 긴급한 전언이 다다른다. 창백하게 질린 경혜공주를 말없이 부액하는 정종.

  문종의 사후 정국의 주도권은 고명(임금의 유언)을 받은 자가 쥐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문종의 고명을 받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수양대군과 김종서. 부마간택 사건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소원해졌던 문종과 김종서. 그러나 문종은 마지막 고명을 김종서에게 내리며 어린 단종을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초야조차 치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잃은 고아가 된 경혜공주, 그렇게 기구한 여인의 운명은 시작된다.

  부마간택 이후 수양대군에게 쏠렸던 권력은 문종의 고명을 계기로 다시 김종서에게 기운다. 게다가 안평대군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야심을 경계하며 어린 단종을 보좌한다. 
  세령은 승유가 도성으로 돌아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선뜻 승유 앞에 나서지 못한다. 신면과의 혼사를 선언해버린 아버지 수양대군. 게다가 자신이 수양대군의 핏줄이란 놀라운 사실을 어찌 설명한단 말인가..
  한편 승유는 과거의 악몽을 잊고 병조에 몸담은 채 아버지와 형을 보좌하며 정치를 배워나간다. 가끔씩 대궐을 거닐 때면 세령을 닮은 궁인들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을 뿐.. 다만 아쉬운 것은 죽마고우인 신면, 정종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아버지들의 정치 행로가 갈리면서 승유와 신면의 사이 또한 예전 같을 수 없었으며, 세령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신면은 승유를 마주치는 것이 왠지 껄끄럽다.  

  수세에 몰려있는 수양대군은 한명회 일당과 역사를 일순간에 뒤바꿀 거사를 은밀히 준비하고 있다. 그러는 한편 세령과 신면의 혼사를 추진하는데.. 혼인을 강하게 거부하는 세령. 여리를 추궁하여 딸의 마음속에 승유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는 수양대군. 여리의 얘기를 듣는 수양의 눈빛이 번뜩인다!
  수양대군의 사랑채. 훗날 계유정난이라 불릴 피바람의 거사일을 언급하는 한명회. 그러나 쥐도 새도 들어선 안 될 거사 계획을 우연히 엿듣고 있는 이가 있으니.. 다름 아닌 세령이다! 아버지의 끔찍한 계획에 놀라 입을 틀어막는 세령.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아버지는 진정 무서운 사람이었다.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의 날이 밝는다. 며칠째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에 휩싸인 세령..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승유와 그 아버지 김종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고, 만약 승유에게 이 사실을 고한다면 아버지 수양대군은 물론이고 집안 전체가 풍비박산이 날 것이다. 끔찍한 선택만이 그녀 앞에 놓여있다.
  고심하던 세령이 마침내 여리를 통해 비밀스레 승유에게 서찰을 전한다. ‘금일 해시(亥時) 말을 타던 여인이 그 언덕에서 스승님을 뵙기를 감히 청합니다.’
  서찰을 받아들고 놀라는 승유. 반가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호기심 때문일까..
망설임도 없이 집을 나서 예전 세령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렸던 그 언덕으로 향한다.    잠시 후에 있을 살육의 현장을 극적으로 모면하는 순간이었다.

  먹구름 사이로 간신히 초승달이 떠오르고.. 수양대군은 마치 딸의 혼사를 의논하려는 아비처럼 평화롭게 김종서의 집으로 향한다. 칼을 숨긴 가노 임운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양정을 비롯한 믿을 만한 왈패 넷이 가마꾼으로 위장해있다. 가마 안에 칼과 철퇴를 숨겨 놓았음을 누구도 눈치 채기 힘들었다.    
  “이리 오너라! 수양대군 행차시다.” 
  김승규가 나와 예를 갖추나 역시 수양대군의 갑작스런 행차를 경계한다. 
  “대군대감께서 어인 행차십니까?”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청혼서를 꺼내는 수양대군.  
  “그댁 막내인 승유와 내 장녀인 세령의 혼인을 청하러 왔네”
  그 후는 모든 것이 계획된 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수양대군이 사랑채로 안내되고 김종서와 나란히 마주 앉게 된다. 의아한 얼굴로 청혼서를 읽는 김종서에게 먼저 칼을 내리친 것은 수양이었다. 그렇게 도륙의 서막은 시작되는데...
  
  복면 자객들을 상대했던 예전 풀숲 언덕에서 세령을 기다리는 승유. 그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는 세령. 이것이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면 최선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운명에 두렵고 아픈 세령이다.
  기약 없이 세령을 기다리던 승유는 씁쓸히 발걸음을 돌리는데.. 
  이미 아버지 김종서가 쓰러졌고, 형 승규가 이미 숨을 거뒀다. 승유를 찾는데 혈안이 된 양정과 왈패들.. 그러나 승유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수양은 다시 가마에 오른다. 

  목불인견! 집으로 돌아온 승유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가 없다. 
  비명을 지르며 형을 밀치고 아버지를 끌어안는 승유. 기적적으로 숨이 끊기지 않은 김종서는 어서 단종에게 역모를 고하라 피를 토하며 내뱉는다.  
  이미 숨을 거둔 형의 주검과 유혈이 낭자한 아버지를 두고 승유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말에 오른다. 승유는 필사적으로 어린 임금 단종의 시어소(임시 처소)로 향한다.  
 
  단종의 시어소가 차려진 경혜공주 사저. 귀공자였던 승유가 피범벅이 된 몰골로 나타나자 경악하는 경혜공주와 정종. 참혹한 상황을 채 전하기도 전에 수양대군과 그 무리들이 들이닥치고, 피의 회오리는 이곳에서도 계속된다.
  대문 밖에서는 한명회의 살생부에 의해 잔혹한 피의 쿠데타가 절정으로 치닫고, 집안에서는 김종서의 혈육인 승유를 찾기 위한 수색이 이어진다. 정종은 승유를 찾는데 혈안이 된 무뢰배들의 선두에서 신면을 발견하고 놀라는데, 그 광기 어린 눈빛에 경악하고 만다.  
  경혜공주의 기지로 살길을 도모하던 승유.. 그 앞을 운명처럼 가로 막는 신면. 단숨에 죽마고우의 목에 검을 겨눈다.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승유..
  신면은 애써 감정 없는 목소리로 승유에게 마지막을 고한다. 
  “미안하다. 오랜 벗의 우정으로 역사를 그르칠 수 없구나” 
  신면이 검을 휘두르는데.. 그 앞을 두려움 없이 막아서는 정종이다.
또 다른 친구 정종의 용기에 당황하는 신면. 정종이 눈물로 사정한다. 
  “어찌 친구의 목을 치고 편히 잠들기를 바라는가.. 차라리 나를 먼저 치게나.“
  절체절명의 순간, 승유는 정종의 용기와 신면의 자비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경혜공주의 처소를 빠져나온다. 

  아버지만... 아버지만 살아계신다면... 황급히 아버지가 몸을 숨긴 은신처로 달려간 승유는 경악한다. 아직 김종서의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한명회 무리가 이미 다녀간 후였다. 머리를 잃고 바닥에 뒹구는 아버지의 주검을 끌어안고 짐승의 울음을 토하는 승유. 
  길고 길었던 밤이 지나가고 날이 새고 있다. 4대문 안은 온통 피비린내로 가득한데.. 승유의 머릿속은 온통 수양대군으로 가득 차 있다. 
  네놈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놓으리라! 
  검 한 자루를 품고 수양대군 저로 향하는 승유.  

  역사를 뒤집어놓은 영웅은 좀처럼 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경계만 삼엄해질 뿐 당당히 개선하는 수양의 행렬은 나타나지 않았다. 수양대군의 집 맞은편 으슥한 곳에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 승유.
  멍한 승유의 머릿속에 그 밤 자신을 불러냈던 서찰이 생각났고, 가짜 경혜공주가 스쳐갔다. 그 순간! 삼엄한 경호를 받으며 수양대군이 나타난다. 민심이란 이리도 야속한 것인지.. 역모를 진압한 수양대군을 칭송하는 백성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리고 수양의 가족들이 대문 밖으로 나와 가장을 맞이하는데...
  천천히 인파 속에 섞여 수양에게 접근하는 승유. 이 순간을 놓치면 평생을 후회할 지도 모를 일이다. 천천히 품 안의 칼을 핏줄이 터져라 움켜쥐는 순간! 
  승유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 수양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는 여식은 다름 아닌 가짜 경혜공주가 아닌가!
  순간 자신이 속았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승유.. 자신의 어리석음이 아버지와 형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는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칼을 뽑아들고 피맺힌 고함을 지르며 수양을 향해 야수처럼 달려드는 승유. 그 짧은 순간 승유와 세령의 눈빛이 스친다.  
  임운의 칼에 가로막혀 야수의 심장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튕겨나가는 승유의 칼. 그렇게 승유는 수양을 죽이지도 자신이 죽지도 못한 채 무릎을 꿇는다.

{9화~14화}

  의금부에 하옥된 승유는 참수를 앞두고 있다. 세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승유를 만나려 한다. 세상은 벌써부터 수양대군의 딸에게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간수의 안내를 받아 기나긴 의금부 옥청을 지나가는 세령, 승유에게 무릎을 꿇고 아버지 대신 죽음을 청할 작정이다. 저주를 퍼붓는 승유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마침내 승유를 만나려는 순간! 세령의 앞을 또 다시 신면이 가로막는다.  
  자신의 여인이기에 지키고 싶고, 막아서고 싶은 사내의 마음.
  끝내 세령은 승유와 마지막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는데...

  날이 밝고, 광희문 밖에서 승유의 참수가 집행되려는 참이다. 어떻게든 승유를 살려야 하는 세령은 극단의 방법을 택한다. 아버지 앞에서 제 목에 칼을 들이대는 세령. 그를 살려주지 않으면 기필코 죽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 수양은 세령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는다. 
  신면이 복잡한 심경으로 승유의 최후를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승유의 참수를 거두고 서해바다 외딴섬 덕적도의 노비로 부처하라는 어명이 내린다. 결국 천하의 수양대군도 여식의 뜻은 꺾지 못한 것인가..

  유배지인 서해로 떠날 배가 죄수들을 태우고 양화 포구를 떠나려 한다.
  배 안에는 수양대군에 의해 역도로 몰린 관료들과 그 자제들이 타고 있다. 또한 청풍관의 양정에게 맞서 한양 뒷골목 패권을 다투던 건달패 두목 조석주, 안평대군의 호위 무사였던 전경남 등의 거친 사내들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수양대군과 한명회의 더 잔혹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으니, 죄수들을 태운 배가 망망대해를 지날 때 난파시켜, 승유를 비롯한 골치 아픈 반 수양 세력을 일순에 수장시켜 버리려는 속셈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조석주는 배가 출발하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이렇게 죄수들을 한 데 모아 유배지로 향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죄수들을 태운 배 바로 뒤에 또 다른 배 한 척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철삭과 차꼬로 나란히 포박당해 있는 석주와 승유. 바닷물을 바라보는 승유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수양에 대한 적개심 그리고 세령에 대한 분노가 그를 괴롭힌다. 
  석주는 저들의 계획이 자신들을 바다에서 수장시키는 것임을 눈치 챈다. 어쩔 수 없이 형구에 함께 묶여있기에 승유와 힘을 합쳐야 하는 상황. 석주의 눈에 승유는 세상물정 모르고 살다 집안이 몰락한 한심한 양반가의 자제일 뿐이나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한 몸이 돼 움직여야 한다. 역시 음모를 눈치 챈 전경남도 조석주의 계획에 동참한다.

  파도가 거칠어지고 배가 요동치자 계획대로 전경남이 일부러 소동을 일으키고, 석주와 승유가 다가오는 군장을 인질로 잡고 대치한다. 그러나 군장마저 포기하고, 죄수들을 제압하려 드는 순군들. 
  생사가 눈앞에서 오락가락하는 순간. 죄수들의 필사의 발악은 호송선의 전세를 뒤집는다. 승유도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죄수들을 제압해 나가는 순간! 
  쾅! 쾅!! 갑판 아래 배 밑창을 때리는 소리가 위태롭게 울려 퍼진다. 점점 커져가는 도끼소리와 함께 드디어 배안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줄기는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오르고, 배가 요동칠 때마다 죄수들과 순군들은 검푸른 바다에 처박힌다. 아비규환! 죄수들의 몸에는 한데 얽힌 형구가 여전한데...
  급기야 죄수들은 순군들에게 빼앗은 칼로 서로를 찌르고, 자신과 연결된 죄수의 팔다리를 베어버리려 한다. 석주와 승유의 팔은 여전히 철삭에 연결되어 있고, 칼을 들고 있는 승유는 순간 무방비 상태의 조석주를 노려본다. 살기 위해 석주의 팔을 벨 것인가.. 승유와 석주의 눈빛이 교차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휘두르는 승유! ...석주의 팔 대신, 석주를 노리던 순군을 베어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 배 안은 바닷물에 완전히 잠기고, 검푸른 파도가 승유와 석주, 그리고 죄수들을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떨어져 항해하는 배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신면.

  살아있는 것조차 죄스러운 세령에게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승유를 태우고 유배지로 향하던 배가 침몰하여 그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다는 전언이다. 아버지가 처음부터 승유를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세령.. 아버지를 향해 흡사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고 발악한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한없이 따뜻한 아비의 얼굴로 세령을 쳐다볼 뿐이다. 아버지에게 공포를 느끼는 세령..

  강화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무인도 해변. 기적같이 목숨을 건진 승유와 석주가 눈을 뜬다. 돌아보니 파도에 휩쓸린 죄수들 한 무리가 떠밀려 왔다. 함께 배에 탔던 이들은 대부분이 수장 되었고.. 승유와 조석주, 전경남을 포함한 십 수 명의 무리가 운 좋게 살아남았다. 
  하나같이 수양대군에 의해 목숨을 잃을 뻔한 무리들. 이들의 면면은 양반가의 자제부터 왈패 두목, 호위 무사 등등 개성 강한 다양한 군상들이다. 모두들 자신을 소개하는데.. 승유만은 입을 다문다. 아버지의 이름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죄책감. 섬 중앙에 있는 산에 올라 멀리 바다를 바라보는 승유..
  모두들 작금의 상황에 좌절하고 분노하지만 좀처럼 하나로 뭉치질 못한다. 섬을 빠져나갈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질 않는데.. 바다 저 멀리 큰 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작은 배 여러 척을 띄워 섬을 향해 다가온다. 신면이 확실히 승유를 제거하러 온 것이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무리들.. 그러나 신면에 의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꾼으로 변한 송자번이 차례로 이들의 목을 거둔다. 승유는 이 토벌대의 선두에 신면이 있음은 미처 알지 못한다. 

  섬 이곳저곳을 도망 다니며 간신히 몸을 숨긴 승유와 무리들. 이제 남은 사내는 일곱에 불과하다. 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승유가 사내들 앞에 나선다. 도망만 다니다가는 저승밖에 갈 곳이 없다는 얘기에 모두 입을 다문다. 이미 섬의 지리를 훤히 파악하고 있는 승유.. 대항할 인원이 현격히 부족하기에 낮에는 몸을 숨기고 밤에는 조직적으로 흩어져 공격하는 게릴라 전술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유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는 전경남. 조석주도 이에 동조한다. 
  어느 순간 승유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사내들. 

  승유를 중심으로 한 죄수무리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는 신면의 토벌대. 밤마다 군사들을 잃은 신면은 영리하게 다른 작전을 강구한다. 
  소모뿐인 공격 대신 함정을 놓아 전경남을 생포하는 데 성공한 신면. 그는 전경남을 죽이는 대신 자신의 목표는 오직 김승유 뿐이라며 회유한다. 전경남은 자신의 생존을 약속 받고 다시 풀려나는데...

  복수를 꿈꾸던 사내들은 전경남의 배신으로 차례로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 뒤늦게 전경남의 배신을 알아챈 조석주는 그의 목을 치려 하는데, 전경남이 소리치며 승유를 가리킨다. “놈들이 찾고 있는 건 우리가 아니라 바로 저놈이란 말이야!”
  그러나 이미 송자번이 코앞까지 다다른 상황. 도주하던 승유와 조석주가 멈춰 선다. 그러나 이들 앞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으니... 
  칼을 든 석주가 승유를 쳐다본다. 먹잇감을 확인하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송자번. 순간 승유의 배를 찌르는 조석주의 칼! 놀라는 송자번..
  칼을 뽑은 석주가 승유를 낭떠러지 밑으로 밀쳐버린다. 떨어지는 승유의 얼굴...
배신, 회한, 원통함이 뒤섞인 눈빛으로 추락한다.
  조석주가 송자번에게 소리친다. 너희가 원하는 것을 이뤘으니 더 이상 나를 쫓지 마라. 하며 퇴로를 만들어 도주하는데...
  잠시 후 해질 무렵.. 낭떠러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신면. 저편 아래 피범벅이 된 승유가 널브러져 있다. 신면의 눈치라도 보듯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승냥이들이 몰려든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리는 신면.

  군사들을 절반가량 잃은 신면이 섬을 빠져나간다.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고 승냥이들이 울부짖는데... 의식을 잃은 승유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바로 조석주다.
  석주의 칼은 혈도가 지나지 않는 안전한 곳을 관통했다. 간신히 의식을 차리는 승유를 들쳐 업고 어딘가로 향하는 조석주. 전경남이 석주와 승유에게 자신의 과오를 사죄하며 승유를 극진히 치료한다. 
  며칠 후. 신면의 군사들이 버리고 간 배를 타고 육지로 향하는 조석주와 전경남. 고열에 정신을 차리고 잃기를 반복하는 승유를 태우고 망망대해를 향해 나간다. 석주는 승유를 보며 생각한다. 이 자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승유가 눈을 뜬 곳은 마포나루의 허름한 유곽 빙옥관이다. 이곳은 본래 석주의 조직이 관리하던 곳으로 계유정난 이후 조석주와 양정 사이를 기생하던 공칠구가 어부지리로 챙겨 운영하는 중이다. 죽은 줄 알았던 석주의 귀환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공칠구.  
  마땅히 머물 거처도 가야할 곳도 없는 승유는 당분간 이곳에서 몸을 치료하기로 한다. 석주는 승유의 신분에 대해서 캐묻지 않았고, 이곳 빙옥관 식구들은 승유를 그저 몰락한 양반가의 자제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석주는 천천히 자신의 패거리를 재건한다. 자신은 왈패들과는 급이 다른 무사라 자존심을 세우던 전경남이 합세했고, 눈치 빠른 공칠구도 잽싸게 충성을 맹세한다.
  또한 석주를 불같이 사랑하는 초희, 아리따운 기녀인줄 알았으나 출중한 검술 실력에 생리학적 성은 남성인 무영, 아직 머리도 올리지 않은 애기 기생 소앵 등이 승유의 새로운 가족이 된다. 이들의 관심과 손길로 나날이 몸을 회복하는 승유.

  야심한 밤. 은밀히 경혜공주의 사저를 찾는 승유. 이미 저 세상 사람인줄 알았던 승유의 등장에 기함하는 정종과 가냘프게 눈빛이 떨리는 경혜공주. 그러나 그녀 앞에 사내는 예전 그 귀공자 승유가 아니다. 수양대군에 대한 무서운 복수심에 불타는 한 마리 짐승 같은 사내가 앉아있을 뿐이다. 
  승유는 정종으로부터 신면이 머지않아 세령과 혼인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듣는다. 분노로 몸을 떠는 승유, 세령을 납치하여 수양을 유인할 계획을 세우는데..

  마침내 승유는 세령을 납치하는데 성공한다. 세령은 자신을 납치한 것이 승유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못하는데...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들지만 애써 흐트러지지 않는 세령 앞에 모습을 드러낸 승유! 살아있는 승유를 보고 그대로 무너져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세령.. 하지만 승유는 세령의 눈물을 믿지 않는다. 뒤늦게 진실을 추궁하는 승유. 그러나 세령의 대답은 오직 눈물뿐이다. 승유는 애써 냉정하게 여인의 눈물을 외면하는데... 

  영의정인 수양대군邸에 서찰이 묶인 화살이 날아든다. 딸의 목숨을 살리고 싶다면 수양 홀로 명시된 장소로 나오라는 일방적인 통보다. 발칵 뒤집히는 수양의 집안. 비보를 접한 신면은 한달음에 수양의 집으로 달려온다. 딸의 목숨을 외면할리 없는 수양이지만 그의 행동은 역시 지독히 차갑고 이성적이다. 
  수양은 신면과 함께 가노로 위장한 사병들을 대동하고 약속된 장소에 나타난다. 그리고 군사들로 하여 주위를 겹겹으로 에워싸게 한다. 그 순간 신면은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이 세령에게 사내로서 인정받을 절호의 기회라고..

  멀리서 수양대군을 본 승유는 순간 이성을 잃는다. 악몽처럼 그날의 참극이 떠오르는 것이다. 부르르 몸을 떠는 승유가 수양대군을 향해 활을 겨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세령의 마음은 또 다시 지옥이다.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아버지이나, 자신의 마음 속 정인이 아버지를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비극.. 
  세령의 눈빛에 승유의 마음이 흔들렸던 것인가.. 활시위를 떠난 활은 허공을 가르고 수양 옆의 가노에게 꽂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신면의 화살이 승유를 향해 날아간다. 그 화살을 막아서는 세령. 화살은 세령의 어깨에 꽂힌다! 
  승유의 위치를 파악한 매복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드는데.. 활을 맞은 세령과 눈이 마주치는 승유.. 그제야 세령의 안타까운 진심을 읽는데... 승유가 생포되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석주가 승유를 구하고 극적으로 현장을 탈출한다. 

 {15회~20회}

세령의 납치 사건 이후 수양대군의 모략과 피의 잔치는 그칠 줄을 모른다. 자신을 견제하는 동생 금성대군을 귀양 보내고 애처로운 단종을 사정없이 뒤흔든다. 
  상처를 치료하느라 제 방에 틀어박혀 있던 세령.. 지극정성으로 드나들며 마음을 쏟는 신면. 세령은 신면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한다. 그리고 문득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가망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이 딱한 사내. 세령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신면을 지아비로 맞을 수 없는데...
  상처가 제법 아물어갈 무렵. 세령은 신면에게 믿을 수 없는 얘기를 전해 듣는다.
  아버지가 왕이 되었다는! 고로 자신이 공주가 되었다는...!    

  승유는 끝없는 무기력증에 빠져든다. 자신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수양은 왕이 되어 닿을 수 없는 먼 곳으로 가버린 기분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패배감에 술을 마셨고, 유곽에서 행패를 부리는 취객을 죽을 만큼 두들겨 패기도 했다. 
  날로 잔혹해지는 승유의 폭력성을 묵묵히 바라보던 석주. 그는 승유가 김종서의 아들임을 눈치 채고 있다. 석주는 술독에 빠진 승유를 데리고 나가 한양의 뒷골목을 하나씩 제압해 나가기 시작한다. 두려움을 모르는 승유의 칼과 주먹은 그 어떤 왈패도 당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터져 나오는 분노를 감당하지 못하는 승유에게 석주가 혼잣말처럼 얘기한다. 나 또한 복수의 칼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다. 다만 때를 기다릴 뿐이라고..
  그 후 승유는 계유정난의 공신들을 차례로 습격한다. 잔혹한 피의 응징 후에 아버지의 이름 같았던 대호(大虎)란 두 글자를 박아놓는다. 도성 안에는 서서히 김종서가 살아 돌아왔다는 풍문이 퍼지기 시작하는데..

  하루하루 끔찍한 현실에 무너져가는 경혜공주. 그런 공주를 말없이 바라보던 정종이 움직인다. 종학에서 옛 스승 이개를 비롯한 집현전 학자들과 비밀리에 모여 패륜아 수양을 제거하고 상왕이 된 단종을 다시 보위에 오르게 할 거사를 계획한다. 
  천우신조처럼 일거에 수양의 목을 칠 절호의 기회가 다가온다. 일단 수양의 목을 치면 그 잔당을 처단하기 위해 승유의 도움이 필요한데.. 
  정종에게 거사 계획을 전해 듣는 승유는 너무나 수월하게 짜여진 상황에 수양이  파놓은 함정임을 직감하는데... 어느새 맹수처럼 날카로워진 승유는 수양과 같이 생각하고 느끼고 호흡하고 있다. 

  승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집현전 학자들은 거사를 실행한다. 승유의 직감대로 그것은 수양과 한명회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수양의 목을 노린 여섯 명의 발칙한 집현전 학자들은 차례로 목숨을 잃는다.   
  이미 死六臣이 되어버린 스승 이개의 주검 앞에 눈물을 흘리는 정종. 이 사건으로 정종 또한 목숨이 위태로운데... 그 동안 마음과 달리 늘 정종에게 차가웠던 경혜공주가 세령을 찾아가 무릎을 꿇는다. 눈물로 남편의 목숨을 구걸하는 경혜공주. 그 모습을 가슴 아프게 보는 세령..

  세령은 수양에게 그동안 거부해온 신면과의 혼인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내건 조건은 정종의 목숨이다. 세령의 희생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정종이 경혜공주와 함께 유배지로 떠난다. 상왕이던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로 떠나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경혜공주는 하루하루가 불안하기만하다. 수양이 언제 동생에게 사약을 내릴지 모르는 일 아닌가.. 
  그토록 신면이 기다리던 세령과의 혼사가 거행된다. 그러나 세령은 부마가 된 신면을 차갑게 외면한다. 부부가 되었으나 세령의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신면은 미쳐버릴 듯 하다. 끝내 그녀의 몸이라도 가지려 몸부림치나 그럴수록 한없이 공허해지는 사내의 마음..
  신면과 세령의 혼례가 있던 날. 김종서에게 철퇴를 날렸던 일등공신 양정이 승유에게 처절한 죽음을 당한다. 양정의 피살을 계기로 신면과 수양은 김승유가 살아있음을 알게 되는데... 격노한 수양은 신면에게 확실한 김승유의 목을 가져올 것을 명한다. 어느새 승유를 뒤쫓는 사냥견이 된 기분을 지울 수 없는 신면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또 한 번 경악하고 만다. 세령의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세령은 몸종 여리와 함께 승유의 행방을 찾아 정처 없는 길을 떠난다. 공칠구에게 봉변을 당할 뻔하나 그를 계기로 승유와 재회하는 세령. 
  승유는 세령에게 돌아가라 말한다. 그러나 세령은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평생 승유의 곁에서 아버지의 죄악을 씻겠다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나는 승유.
  세령은 승유의 침묵이 무언의 긍정이란 사실을 안다. 이후 세령은 강한 여자가 되기로 한다. 유곽의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괜한 텃새를 부리는 소앵 등의 괴롭힘도 묵묵히 견뎌낸다. 그런 세령을 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말없이 바라보는 승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신면이 빙옥관에 들이닥친다. 빙옥관 식구들은 이제야 승유의 정체를 알게 된다. 또한 세령이 수양대군의 핏줄이라는 사실에 경악한다. 그러나 빙옥관은 이미 난장판이 된 상황이다.  
  신면과의 일전을 기다리던 승유는 세령 때문에 결투 대신 도주를 택한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빙옥관의 식구들.. 세령과 함께 도성을 떠난 승유는 정종이 유배된 경기도 통진으로 향하는데.. 그 길 위에서 하염없이 애틋한 두 사람, 그 사람의 눈길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마주볼 수 없다. 말없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묵묵히 서로를 챙기면서 정종의 유배지에 도착한 승유와 세령. 그러나 이미 정종과 경혜공주는 새로운 유배지인 전라도 광주로 떠난 지 한참 후이다. 또 다시 광주로 말을 달리는 승유.
  그 옛날처럼 승유의 팔에 갇혀 말을 타고 있는 세령.. 그러나 왕가의 자제로 태어나 곱게만 자란 세령은 많이 지쳐있다. 그런 세령을 보며 다시 말에서 내리는 승유.
세령을 위해 하룻밤 쉬어갈 거처를 마련한다.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 세령을 바라보는 승유...
  승유는 더 이상 세령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 달빛 아래 입을 맞추는 승유와 세령.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을 보상받으려는 듯 승유의 품에 깊숙이 안기는 세령.. 승유는 세령의 어깨에서 자신을 대신해 화살을 맞았던 상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의 고통스럽기만 했던 사랑을 절감한다. 그렇게 비로소 하나가 되는 두 남녀..  

  마침내 도착한 정종의 유배지 광주. 야심한 시각에 승유와 세령, 정종과 경혜공주가 한 방에 모여 있다. 정종이 합석하기 불편한 세령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세령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음을 잘 알고 있는 정종이다. 여전히 서먹하고 어색한 세령과 경혜공주.. 세령은 경혜공주를 깍듯한 공주로 모시며 예를 갖춘다.  
  정종은 이곳에서도 수양을 제거할 거사를 계획하고 있다. 아버지 얘기가 나오자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세령. 모두들 자신의 아버지로 인해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정종이 구상한 거사의 중심에는 이미 금성대군이 들어와 있었다. 금성대군이 경상도에서 군을 일으켜 단종을 유배지에게 탈출시키면, 정종이 전라도에서 치고 일어나 하삼도에 집결, 도성으로 향한다는 계략이다. 정종은 이미 수양의 집권에 불만을 품은 광주 인근의 지역 현감들을 포섭했고, 마지막으로 거사의 성패를 좌우할 조선 최정예 포병부대인 총통위만 끌어들일 수 있다면, 아무리 병권을 장악하고 있는 수양이라 해도 꼼짝할 수 없을 것이다. 
  승유에게 총통위를 움직일 수 있게 도움을 달라고 부탁하는 정종. 뜻하지 않은 거사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승유. 그런 승유를 경혜공주는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보는데... 어느새 지아비 정종에게 의지하고 있는 경혜공주, 그녀의 뱃속에는 정종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승유는 정종으로부터 받은 금성대군의 서찰을 가슴에 품고 한양으로 향한다.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해야 할 마땅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승유의 눈은 활활 타오른다. 그러나 수양을 죽이는 거사에 세령을 동행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령을 공주 동학사에 은신시키고 홀로 길을 떠나려 하는 승유. 세령은 승유와의 이별이 아쉽고, 아직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아니다. 실은 그가 살아 돌아오지 못할까봐 두렵고, 두렵다. 애절한 세령의 눈빛을 보던 승유, 각오한 듯 등을 돌린다. 다시는 세령에 대한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으리... 다짐하며 말에 오르는 승유.

  한시 바삐 말을 달리던 승유가 한양에서 내려오는 일군의 기마들과 스친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숨기는 승유. 기마의 정체는 신면과 그의 수하들이다. 근처 사찰을 뒤지며 공주 쪽으로 향하는 신면의 진로. 
  세령이 신면에게 잡힐 것을 알지만 승유는 말을 돌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를 위한 최선이리라. 언제까지 내 곁에 그녀를 붙들어둘 수는 없지 않은가. 

  동학사에서 세령을 붙잡은 신면은 말없이 그녀를 한양으로 데려간다. 수양 앞에 서게 되는 세령. 자신의 여식이 불손한 세력과 어울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 수양은 세령에게 경고한다. 자신의 핏줄이기에 살려두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러나 지지 않고 아버지에게 항변하는 세령.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궁 안에 울려 퍼진다. 크게 분노한 수양은 마침내 세령을 폐서인시키고, 신면에게 노비로 하사한다. 더불어 사관에게 모든 사료에서 세령공주에 대한 기록을 삭제할 것을 명한다. 핏기 없는 얼굴의 신면이 집으로 향한다. 자신의 지어미가 노비가 되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양에 잠입한 승유는 총통위 장교들과 접촉할 방도를 강구한다. 마침내 총통위 부장 박홍수가 김종서의 하급 장교였음을 알아내고 그에게 은밀히 접근하는데... 정종의 서찰을 읽는 박홍수의 손이 떨린다. 그러나 그는 거사에 동참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거사들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가. 
  돌아서는 박홍수에게 승유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자신이 대호 김종서의 막내아들이라고... 자신이 주군처럼 모셨던 김종서의 혈육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박홍수. 그는 승유의 손을 잡으며 거사에 동참할 것을 약조한다.

  한달음에 말을 달려 금성대군에게 향하는 승유. 총통위가 거사에 동참한다는 가슴 벅찬 소식을 전하는데... 금성대군은 승유에게 단종을 한양으로 모시는 중책을 맡긴다. 복수의 그날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음에 가슴이 떨려오는 승유. 
  금성대군은 순흥부사 이보흠과 승유가 보는 앞에서 영남 각 고을 수령들에게 보내는 격문을 초한다. 무도한 형 수양을 몰아내고 가엾은 조카를 복위시키려는 금성대군의 의지가 붓 끝에 전해지는데... 그 순간! 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이 문밖을 향한다. 유배지에서 심부름을 하는 시녀가 이들의 대화를 낱낱이 듣고 있었던 것이다. 
  승유의 날카로운 추궁에 울음을 터뜨리는 시녀. 그녀는 평소 금성대군이 어여쁘게 여기는 아이였다. 왕자의 배포로서 시녀를 감싸는 금성대군. 그러나 하늘은 어찌 수양을 버리지 않는 것인지..! 그녀는 한명회의 사주를 받아 금성대군의 동향을 보고하고 있었으니...   

{제21화 이후}

  거사는 그렇게 허망하게 끝이 난다. 이 일로 큰 화가 몰아닥친다. 금성대군이 목숨을 잃고, 총통위는 폐쇄되었으며, 영월에 있던 단종에게는 사약이 내려진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정종은 미쳐가기 시작한다. 마지막 희망이던 금성대군과 단종마저 죽자 그는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다. 동생을 저 세상으로 보낸 경혜공주는 슬퍼할 여유조차 없다. 급기야 수양에 대한 욕설을 퍼붓던 정종은 모반을 꾀했다는 죄목으로 한양으로 압송된다. 이미 죽기를 결심한 정종은 수양의 면전에서 마음껏 저주를 퍼붓다가 끝내 능지처참을 당하며 비통한 생을 마감한다. 
  
  승유는 죽마고우 정종의 갈기갈기 찢긴 시신을 수습하여 경혜공주에게 향한다. 관비의 신분으로 몰락하여 순천으로 가야하는 경혜공주.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는 서글픈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계속해서 울기만 한다. 승유는 경혜공주에게 자신을 따라 수양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머나먼 함길도로 떠나자고 설득하지만.. 그녀에겐 더 이상 움직일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다.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 경혜공주, 그녀는 삶을 포기하고 복수를 포기한 듯하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며 사라졌고, 사랑하는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끊임없이 도모하고, 하늘을 바라보았으나 언제나 하늘은 수양을 선택하는 듯했다.  
  승유는 행방을 알길 없는 세령을 마음 한 곳에 간직한 채 생애 마지막 투쟁을 위해 함길도로 향한다. 아버지 김종서가 젊음을 바쳤던 삭막한 땅에서 수양이 만든 피의 제국을 완전히 전복시킬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는데...
    
사랑에 온 生涯를 내어준 어리석은 두 男女를 追憶하며,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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