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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iamasiam 2020. 2. 26.

1. 어느 날 특이한 소설을 읽었다. 다나베 세이코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아가씨 조제와 그녀를 돕다가 사랑에 빠지는 청년 츠네오의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인데, 이 짧은 이야기가 놀랍게도 내 가슴을 흔들었다. 조제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쿠미코. 펄펄 살아 숨쉬는 그녀의 캐릭터에 그만 감동하고만 것이다. 영화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2. 고압적인 말투, 제멋대로 상상하기, 특이한 자아긍정. 하반신 마비 장애인 조제는 집안에만 갇혀 지내지만 의외로 놀라운 상상력을 지녔다. 그녀는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면 매순간 감탄한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츠네오가 놓치고 살아가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는 듯 하다. 그녀는 솔직하다.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다. 직관에 의존한다. 상상을 즐긴다. 내가 만나본 가장 특이한 캐릭터의 장애인이다. 그래서 현실에 가깝다. 얼마 전 내가 만난 그 시각장애우도 전혀 내 예상을 뛰어넘고 있었다. 농담을 잘하는 그는 공무원이고, 밴드의 키보드주자이며, 영화광이다. 익숙한 지하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그를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다. 조제도 나를 놀라게 만든다. 조용한 듯한 그녀 안에 호랑이 같은 열정이 숨어있다. 그녀의 상상력은 물고기들처럼 자유롭다.


3. 조제

츠네오와 처음 만난 유모차 속 조제는 그에게 칼부터 휘두른다. 혹시 치한이 아닐까하고. 요리를 마치면 조제는 언제나 부엌의자에서 마루바닥으로 몸을 날린다. 마치 다이빙하듯. ‘쿵’ 소리에 츠네오는 놀란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조제는 쓰윽쓰윽 팔로 기어 자기 방 옷장 속으로 들어간다. 조제의 취미는 산책과 독서다. 중년 남자에게 습격을 당하는 위험 속에서도 그녀는 산책을 즐긴다. 눈으로 봐야할 게 너무 많다. 꽃이랑 고양이랑... 조제는 할머니가 주워온 책들을 하도 읽어 모두 외운다. 요즈음엔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에 빠져있다. 사강의 소설 매력적인 주인공 조제를 꿈꾼다. 그래서 조제라 불리길 원한다. 츠네오는 조제를 위해 헌책방을 뒤져 절판된 사강의 소설 <멋진 구름>을 사온다. 그 책을 읽으며 그녀는 처음으로 빙긋 웃는다. 그녀는 파리, 에펠탑 근처 포플러나무 아래 앉아 금발 머리를 날리고 있다. 지저분한 옷장 속에서 파리의 조제가 된다.  그녀는 마치 꿔준 돈을 받기라도 한다는 듯 츠네오에게 이것저것 주문하고 요구한다. 강한 자존심은 콤플렉스에서 나왔다기보단 자신의 외모에 대한 강한 자신감에서 나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는 자부심으로 츠네오에게 여기 머물라고 말한다. 장애인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긍정한다. 대단한 스토리다.    

 


4. 호랑이

츠네오와 조제가 사랑하게 된 후 조제는 첫 번째 소원을 말한다. 호랑이를 보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동물원 호랑이 우리 앞에선 무서워 오들오들 떨며 눈도 뜨지 못한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왜 보러오자고 했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 날로 츠네오는 조제네 집으로 이사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내겐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하기나 했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여자친구에게 물었다. 나랑 사귈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였지? 밤 산책. 늦은 밤에 동네 골목길에서 나란히 산책하고 싶었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무서워서 나 혼잔 할 수 없었거든. 과연!

 


5. 물고기들

일년쯤 함께 살고 나서 조제와 츠네오는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즐겁게 준비한 여행은 예감이 좋지않다. 수족관은 휴관이고 둘은 싸우고 만다. 조제는 물고기를 볼 수 없어 화가난다. 얼마나 어렵게 먼 곳에서 왔는데.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둘은 물고기 여관에서 묵는다. 사랑을 나눈 뒤 불을 끄자 파란 조명이 들어오고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조개껍질 침대에 누운 두 사람은 바다 속에 들어와 있다. 예전 조제는 깊은 바다 속 물고기였다. 외로운 줄도 모르고 캄캄한 정적 속에서 살아왔다. 츠네오를 만나 그 깊은 바다 속에서 헤엄쳐 나온 것이다. 츠네오가 그녀를 떠날지라도 조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츠네오가 조제의 집을 떠날 때 둘은 담백한 이별을 한다.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가던 츠네오는 무너지고 만다. 비겁하게 도망치는 자기 때문에. 하지만 조제는 울지 않는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도시를 헤엄쳐 다닌다. 혼자서 생선을 굽고는 감상에도 젖어 보지만, 여전히 용감하게 마루로 다이빙한다. 그녀는 강하다. 호랑이만큼 용감하고 물고기처럼 자유롭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생선을 굽는다. 용기를 내려고 그와의 추억을 굽고 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위해서 생선을 굽는 여성이 있을까? 조제는 그랬다. 조제는 자신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것이 그녀의 매력이다.    

 


6. 휠체어 

조제는 휠체어대신 유모차를 타고 다녔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유모차가 망가졌다. 그래서 어디든 츠네오가 업고 다닌다. 조제는 휠체어를 사자는 츠네오의 제안을 거절한다. 네가 업어주면 되잖아, 평생. 나 좀 봐주라, 나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는다구. 조제는 왜 휠체어를 사지 않겠다고 했을까? 휠체어를 사면 츠네오가 훌쩍 떠나 버릴까 겁이 났을까?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 어떤 관계가 형성된다. 한 사람은 기대게 되고, 다른 쪽은 감싸게 된다. 츠네오는 조제를 품고 감싸고 챙겨야 한다. 그것도 평생. 츠네오가 두려웠던 건 생활의 불편함이 아니라 자기가 맡을 역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는 자기를 챙겨줄 옛 애인에게로 도망간다. 츠네오가 떠나자 홀로선 조제는 전동휠체어를 산다. 다음번엔 누군가를 품어줄 기세다.

 


7. 이별

츠네오가 절판된 사강의 책 <멋진 구름>을 구해온다. 그리고 조제의 낭독을 듣는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뿐이지. 네,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알았다, 조제가 주인공이지?’ 그제야 츠네오는 그녀가 왜 조제라 불리기를 원하는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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