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100퍼센트 여자아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할까? 그녀를 내가 알아볼 수 있을까? 좋다. 첫눈에 딱 알아볼 수 있다고 하자. 무어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운좋게 10대에 그녀를 만난다면 행복에 겨워 그녀를 의심할거다. 과연 그녀가 나에게 100퍼센트 여자일까? 그리곤 헤어지겠지. 30대쯤 되어 그녀와 마주친다면 이번엔 두려움이 먼저 앞설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 내가 100센트 여자일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있어 당신은 100센트 남자가 아닌걸요.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 쇼크에서 두 번 다시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나이 서른 세 살, 결국 나이를 먹는다는 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늘이 내려준 나의 짝을 기다리는 모든 이들이 지닌 사랑의 딜레마가 이 짧지만 아름다운, 가볍지만 진지한 단편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2. <빵가게 재습격>
한밤 심한 공복감에 잠이 깬다. 때마침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또다시 빵가게를 습격하기로 결심한다. 탈취제 튀김을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국도변 철야 레스토랑 따위에서 편의적으로 채울 수 없는 특수한 종류의 굶주림. 몸 속의 그 기묘한 결락감. 공복감은 왜 생길까? 물론 그것은 식료품의 부족에서 온다. 왜 식료품이 부족한가? 적당한 등가 교환물이 없어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등가 교환물을 갖고 있지 못한가? 어쩌면 우리에게 상상력이 부족한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내가 느끼는 공복감은 예전의 그것과 비교할 때 별로 절실하지 않다. 24시간 편의점의 등장 때문이다. 편의점이 등장하기 이전, 마침 라면 한 개, 계란 한 알도 없는 경우 공복감을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공복감은 더욱더 커지곤 했다. 이젠 한밤 배고품이 몰려와도 빵가게 따위를 털 필요가 없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편리해 진 셈이다. 하지만 진보의 이면에는 언제나 상실의 그늘이 있다. 우리는 약간의 편리함 대신 지독한 공복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상상력을 발휘할 기회마저 잃어버린 셈이다.
3. <얼음 사나이>
한때 나도 얼음 사나이라고 불리던 때가 있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신없이 일만하며 살아가던 시절에. 잔뜩 예민해져서 고드름 같이 날카로운 말들을 던지곤 했다. 환상들은 날아가 버리고 차가운 일상만 계속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결혼을 하는 그 순간부터 모든 남자들은 얼음 사나이가 된다. 이 소설에서 정말 뛰어난 부분. 얼음 사나이가 묻는다. 당신은 어디로 여행하고 싶은 거지? 아내가 대답한다. 남극은 어떨까요. 그녀는 왜 그런 대답을 했을까? 남극이라고 하면 남편이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녀는 남극이 끔찍히 싫었을 것이다. 남극을 가면 남편은 완전한 얼음 사나이가 되고 자신은 영원히 불행할 것을 안다. 하지만 그녀는 남극에 가자고 한다. 인생이란 정말 그런 것이다.
4. <패밀리 어페어>
읽을 때마다 이렇게 재미있는 단편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스무번쯤 읽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너무 재미있어 깔깔대며 웃고 만다. 미혼의 오빠와 결혼을 앞둔 여동생간의 팽팽한 설전.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지만 읽고 나면 왠지 모를 따듯함이 느껴진다. 따듯한 가족애. 묘사와 비유에 강한 하루키는 대사 구사에도 뛰어나다.
5. <스파게티의 해에>
갑자기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어. 그래서 스파게티를 삶기로 했지. 끊는 물에 소금을 넣고, 10분간 스파게티면을 삶아서, 채로 건졌어. 삶은 면을 마아가린에 볶은 다음, 소고기와 양파를 넣어 만든 소스를 부었지. 완성된 뜨거운 스파게티를 차가운 샐러드와 함께 먹었어. 혼자서 스파게티를 먹다 보니 하루키의 단편이 떠올랐지. 책꽂이에서 단편집을 꺼내 <스파게티의 해에>를 다시 읽어보았어. 스파게티 맛처럼 멋진 단편이었지. 처음과 마지막에 울림이 있었어. 처음 : 1971년, 그 해는 스파게티의 해였다. 1971년, 나는 살기 위해서 스파게티를 계속 삶았고, 스파게티를 삶기 위해서 계속 살았다. 마지막 : 듀라므 세모리나. 이탈리아 평야에서 자란 황금색 보리. 1971년 자기들이 수출한 것이 ‘고독’이었다는 것을 알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필시 대단히 놀랬을 것이다.
6. <가난한 아줌마 이야기>
얼마 전 대형할인매장의 계산대 앞에서 한 아저씨를 본적이 있다. 그 분은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캐숴에게 천 원 한 장을 내밀었다. 안성탕면 한 개와 소주 한 병. 그것이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가 사려고 한 전부였다. 그 분은 정말 진짜배기 가난한 아저씨였던 것이다. 시간이 가난한 아저씨를 오렌지 짜내듯 짜고 또 짜낸 끝에 조금전 막 그의 마지막 남은 한방울을 짜내고 있었던 거다. 이제 더는 정말이지 한방울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외면할 수밖에 없다. 그 가난한 아저씨가 언제 내 어깨위로 업힐지 모르기 때문에. 예전 내 어깨위로 올라탄 가난한 아줌마처럼.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동시에 그걸 구제하는 일도 된다. 나는 그럴 형편이 못된다. 늘 내 앞가림만도 벅차다. 더욱이 가난한 아저씨를 어깨에 업고 다니면 청승맞아 보이기까지 하지 않은가? 현대는 이미지가 정말 중요한 슬픈 시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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