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신문에서 멋진 기사를 보았다. 대기업 4년차인 부부가 적금이 만기가 되자 그 돈으로 330일가량의 세계일주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다. 집이나 늘리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 의미 없어 보였다고 한다. 그들은 참으로 용감하고 멋있는 커플이다. 그들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나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자신말고는.
2. 아버지의 추장자리를 물려받기로 되어있는 아프리카 청년이 한 명 있었다. 그는 어느 날 TV에서 봅슬레이 경주를 보게된다. 그리곤 봅슬레이에 매료된다. 그는 자신에게 약속되어있는 부와 권력을 마다하고 핀란드로 건너가 봅슬레이 선수가 된다.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봅슬레이 경기도중 사고로 목이 부러져 죽고 만다. 이 이야기가 24살의 나를 뒤흔들어 놓았다. 내가 택한 봅슬레이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한번 선택한 봅슬레이는 언제나 내 인생의 봅슬레이일까? 우리는 쉬지 않고 또 다른 봅슬레이로 갈아타야 하는 건가?
3. 어느 진주장사가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진주를 발견하였다. 그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보석을 주고 그 진주 한 알을 얻었다.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 진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그 뿐이라는 점이 유일한 비극이었지만. 친구들과 가족들이 실망하여 그를 떠났다. 그에게는 진주이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행복했지만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
4. 24살, 난 그때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혼자 남겨질까봐 두려웠나 보다. 지금 나는 좀더 많은 걸 가졌고, 조금 더 여유가 생겼고, 그리고 훨씬 작은 꿈을 안고 살고 있다. 이젠 꿈꾸기도 힘들뿐더러 모든 걸 털어 버리고 떠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직도 내겐 가지고 싶은 것 투성이지만, 나는 이미 어디로 떠날 수 없을 정도로 부자인 것이다. 여의도로 직장을 다니고 시청률 따위나 신경 쓰고 있는 내게 자아의 신화를 이룬다는 말은 얼마나 낯선가? 하지만 작가 코넬료는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 나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이며 내가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내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 준다고 위로한다. 과연 그럴까? 하지만 믿고 싶다. 자아의 신화를.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것을.
5. 2년 전쯤 나는 제법 많은 돈을 지불하고 오디오를 들여놓았다. 덕분에 전보다 양질의 음악을 듣고 있다. 신혼시절 나는 라디오와 카세트 겸용 CDP로 음악을 들었다. 그 때는 우리가 소장한 CD라고 해보았자 모두 30장 가량이었다. 하지만 그 30장에는 거짓말 같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음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CD장 앞에 서면 나는 늘 머뭇거리고 만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이 그 중에 없는 것이다. 어쩜 나는 내가 소유한 음반만큼 음악에서, 음악이 주는 위로에서 더 멀어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소유한 만큼 덜 누린다. 혹은 가진 것 이상 잃어버린다.
6.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피라미드와 보물을 본다. 마음의 소리도 듣는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살라는. 그는 마음의 속삭임을 따라 모험의 길을 떠난다. 재산을 팔아 아프리카로 건너간 것이다. 그 곳에서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되지만, 용감하게 사막을 건넌다. 오아시스에 이르러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난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꿈을 향한 모험을 감행한다. 드디어 피라미드 앞에 선 산티아고는 깨닫는다. 지금까지의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시간이야말로 바로 순금의 시간이었음을. 연금술을 찾는 긴 여정을 통해 그는 마침내 영혼의 연금술사로 태어난다.
7. 연금술이란 무엇일까? 단지 철이나 납을 금으로 바꾸어내는 신비로운 작업일까? 진정한 연금술이란 자아의 신화를 이루려고 소망하며 사는 것이다. 파엘로 코엘료도 40살이 되어서야 소설가로 전업한다. 그리고 첫 소설 <연금술사>를 저술한다. 그렇게 그는 영혼의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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