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리 크리스마스 산타>(아사다지로의 [철도원]중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기소유예로 석방된 소매치기, 가시와기 산타. 그는 유치장에 두고 온 불쌍한 사내를 생각하며 사내의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산다. 딸들을 위해선 커다란 스누피 인형을, 아내를 위해선 하얀 시클라멘 화분을, 노모를 위해선 만두를 산다. 자기보다 더 큰 인형을 리본으로 묶어 등에 업은 산타를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댄다. 하지만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산타는 불쌍한 사내와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만다. 선물을 문 앞에 몰래두고 한달음에 뛰어내려오는 산타의 등뒤로 여자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산타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기분좋게 제방으로 내달리던 산타도 용기를 내어 한마디 외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유치장이나 들락거리는 소매치기 잡범 산타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바빠진다. 소매치기의 시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산타가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돕는다. 그리고 정말 산타가 된다. 누구나 시즌이 되면 산타를 기다린다. 하지만 산타는 오지 않는다. 가시와기처럼 스스로 산타가 되는 수밖에.
2. <이런 경우>(안토니스 사마라키스의 [거부]중에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늘 이 단편이 떠오른다.
서로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가족을 위해 선물들을 고르는 성탄 전야! 한 남자가 선물가게에서 다섯 개의 선물을 산다. 우와! 다섯명의 아이들! 주위 사람들이 놀라며 부러워한다. 소방차와 비행기, 인형, 곡예 원숭이, 팽이. 다섯 개의 선물을 안고 사라지는 이 남자에게 모두들 축복을 빌어준다. 남자는 빨간 카네이션 한 다발도 산다. 집에 들어선 남자는 일곱 개의 잔을 꺼내 포도주를 따르고, 기분좋게 음악을 틀어놓는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을 풀어놓고 포도주 잔을 든다. “메리 크리스마스!” 텅 빈 공간에 그의 소리가 울린다. 그는 혼자인 것이다. 더 큰 소리로 외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서, 성탄 전날 자신에게 한 일곱 개의 선물 앞에서, 혼자가 아니고 싶은 바램속에서 그는 홀로 서 있다. 소방차는 자꾸만 달리고, 비행기는 빙글빙글 돌고, 인형은 걸어다니고, 어깨에는 곡예 원숭이가 물구나무를 서 있고, 팽이는 쉴새없이 돌고 있다. 온 방안에는 환한 빛과 음악이 넘쳐난다. 하지만 그는 혼자 서 있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훈훈하기는커녕 지독하게 외로운 날인 것이다.
3.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폴 오스터)
폴이 작가라는 것을 안 시가가게 주인 오기는 폴에게 자신의 작품사진 사천장을 보여준다. 12년간 찍어온 똑같은 앵글의 사진들 앞에서 당황한 폴에게 오기가 한마디한다. ‘너무 빨리 보고 있어. 천천히 봐야 이해가 된다고.’ 어느 날 폴은 크리스마스 원고청탁을 받고 고민한다. 오기는 폴에게 독특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전 여름, 오기는 꼬마 좀도둑을 쫓다가 그 애가 떨어트린 지갑을 줍게 된다. 그 해 크리스마스 날, 오기는 지갑을 돌려주러 소년의 집을 방문한다. 아흔쯤 되어 보이는 장님 할머니가 문을 열더니 ‘로버트, 난 네가 크리스마스에 이 할머니를 잊지 않을 줄 알았다.’ 라며 오기를 껴안는다. 오기도 할머니를 껴안는다. 할머니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을 때마다 오기는 거짓말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꾸며댄다. 둘은 훈훈한 만찬을 즐긴다. 할머니가 기분좋게 잠들자 오기는 화장실에서 발견한 최신형 카메라 중 한대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그 카메라로 12년간 사진을 찍어 온 것이다.
로버트란 꼬마는 잡지를 훔친다. 오기는 꼬마가 훔친 카메라를 훔친다. 그리고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할머니가 장님이긴 하지만 오기가 손자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오기도 이런저런 얘기를 꾸며댄다. 오기의 거짓말에 할머니는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작가는 교묘하게 여러 가지 것들을 뒤집어 놓는다. 훔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무엇인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폴에게 들려주는 이 크리스마스 이야기도 오기의 거짓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리 없다. 희망은 있다. 삶의 진실은 거짓말과 도둑질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 적어도 크리스마스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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