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2 반지의 제왕 1. 기억컨대 어린 시절 내 주위엔 영웅들의 모험담들이 넘쳐났다. 아이들은 멋진 주인공과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 커다란 용과 싸우고 어려운 주문을 풀어내고 숨겨진 황금을 한배 가득 실어오는 꿈을 꾸곤 했다. 내가 3부작을 좋아하는 건 이 영화가 색다른 환타지 모험담이기 때문이다. 반지 원정대는 모험을 떠난다. 절대반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파괴하러 떠난다. 황금을 구하러 떠나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아마도) 모험담이다. 아무도 절대반지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누가 반지를 운반하여 파괴할 수 있을까? 그런 의지를 가진 존재는 오로지 호빗뿐이다. 가장 작고 나약해 보이는 족속, 호빗! 2. 호빗 프로도가 운명의 산 분화구에다 절대반지를 버리는 힘든 임무를 맡는다. 중간.. 2020. 2. 26. 공동경비구역 JSA 1. 짧은 글 나는 이 훌륭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 부끄럽지 않은 영화다. 한두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딱히 부족한 것들을 꼬집어 내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영화인 것이다. 커트와 커트, 씬과 씬, 사건과 사건의 연결이 아주 매끄럽게 넘어간다. 카메라의 움직이거나 멈추는 시점, 혹은 카메라가 움직이는 속도, 음악이 시작되는 포인트, 빠지는 포인트 등이 아주 자신 있어 보인다. 그런 자신감이 영화 전편에 걸쳐 안정감으로 나타난다. 특히 배우들이 자기 감정선을 잘 잡고 있다. 관객들은 한국영화에서 좀처럼 경험할 수 없었던 이런 무리없음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자연, 배우들의 대사와 연기에 더 집중하게 되고, 영화 곳곳에 준비해 놓은 유모어에 깔깔.. 2020. 2. 26. 화씨 9/11 1.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것은 철학이나 신념같은 고상한 것이 아니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나 가십이 주는 이미지다. 사실 불멸하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들이다. 부시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그의 정치적 스타일이 아니라 새로 나온 운동기구를 타다가 넘어져 망신당하던 모습이다. 쿤데라는 이란 책에서 이마골로기(imagologie)에 대해서 언급했다. 현대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다. 이미지의 시대다. 화제의 영화 에서 마이클 무어는 카메라로 싸운다. 세계의 대통령 부시를 상대로 대담한 이미지 공격을 가한다. 9/11 테러 보고 직후 7분동안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던 부시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영화로 부시는 놀기만 좋아하는 무능력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2020. 2. 26. 21그램 1.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몸무게를 잰다, 빙고! 잠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은? 체중을 잰다, 빙고! 얼마 전 사은품으로 매끈한 체중계가 생겼다. 그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체중계에 오르고 있다. 밥 먹기 전에 재고 밥 먹은 후에 재본다. 그러면 식사로 섭취한 음식의 무게가 나온다. 외출 시 옷을 입기 전에 재고 옷을 다 입은 후에 잰다. 그러면 걸치고 나가는 옷의 무게가 나온다. 그리하여 집안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체중계로 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기력, 외로움, 슬픈 마음, 욕심, 하품, 열병. 체중계의 기준으로 볼 때 세상은 두 부류로 나뉜다. 무게를 잴 수 있는 것들과 잴 수 없는 것들.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들고 체중계에 오.. 2020. 2. 26. 릴리슈슈의 모든 것 1. 블랙 이와이 슌지 화이트 이와이 슌지-스타일이 아니라 블랙 이와이 슌지-스타일이라고? 뭐 이와이 슌지 영화가 거기서 거기겠지. 은 만만치 않았다. 충격을 받고 나와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눈은 쿡쿡 쑤셨다. 구토를 하는 주인공 유이치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2. 푸른 고양이 스토리만 보자면 사실 복잡할 것도 없다. 영원히 낭만적일 것 같았던 중학시절은 일학년 여름방학이 지나자 악몽으로 변해버린다. 유이치의 단짝 호시노가 학교의 짱이 되어 유이치를 이지메 시킨다. 유이치를 좋아하는 츠다를 원조교제 시켜 돈을 갈취하고, 유이치가 좋아하는 쿠노를 성폭행한다. 유약한 유이치를 위로하는 건 릴리슈슈의 음악뿐이다. 하지만 팬 사이트를 통해 만난 소중한 친구 푸른 고양이가 호시노임을 안 유이치는 그를 칼로 찌.. 2020. 2. 26.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 어느 날 특이한 소설을 읽었다. 다나베 세이코의 .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아가씨 조제와 그녀를 돕다가 사랑에 빠지는 청년 츠네오의 이야기이다. 이를테면 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인데, 이 짧은 이야기가 놀랍게도 내 가슴을 흔들었다. 조제라고 불리고 싶어하는 쿠미코. 펄펄 살아 숨쉬는 그녀의 캐릭터에 그만 감동하고만 것이다. 영화 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2. 고압적인 말투, 제멋대로 상상하기, 특이한 자아긍정. 하반신 마비 장애인 조제는 집안에만 갇혀 지내지만 의외로 놀라운 상상력을 지녔다. 그녀는 산책을 하거나 여행을 할 때면 매순간 감탄한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츠네오가 놓치고 살아가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느끼는 듯 하다. 그녀는 솔직하다. 감정과 욕망에 충실하다. 직관에 의존한다. 상상을.. 2020. 2. 26.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