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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기획안

SBS <시크릿 가든>

by iamasiam 2020. 5. 15.

SBS 주말특별기획/20부작 
작가: 김은숙
연출: 신우철
출연: 현빈, 하지원, 윤상현, 김사랑, 이종석, 손예진 등

 



1. 기획의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시크릿 가든’의 로맨스!

 

여자라면 누구나 동화 속 공주님처럼 마법 같은 사랑이 찾아오길 꿈꾼다. 때문에 여자들에겐 현실보다 환상이 더 달콤한 법이다. 그런 당신이 어느 날 진짜 마법에 걸린다면?!!
중세유럽의 대 장원(莊園)을 연상케 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대저택. 사람들은 숲과 연못으로 둘러싸인 그곳을 ‘시크릿 가든’이라 부른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그곳엔 히스테릭하고 까칠한 백화점 사장 주원과 오만방자한 한류스타 오스카가 살고 있다. 흰 토끼를 쫓다 ‘이상한 나라’로 굴러 떨어진 앨리스처럼 어느 날 라임은 누구나 한번은 꿈꾸어 보았을 환상적인 공간 ‘시크릿 가든’에 발을 들여놓고 만다.  
앨리스에게 모자장수와 체셔 고양이가 있었다면 라임에겐 ‘시크릿 가든’의 꽃미남 4.5촌(?)형제 주원과 오스카가 있는데... 

 


로맨틱 코미디와 
판타지가 만났을 때, 
마법에 빠진 사랑이 온다.

 

남잔, 죽었다 깨어나도 여자를 모른다. 여잔, 세상의 모든 남잔 다 똑 같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남자와 여잔 한 침대에 누워서도 동상이몽을 꾸고,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말이 안통하고, 서로 사랑하면서도 죽어라 싸우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남녀가 마른하늘의 날벼락처럼 영혼이 뒤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한 술 더 떠 영혼이 뒤바뀐 남녀가 히스테릭하고 까칠한 백만장자 백화점 오너와, 애걸복Girl 산중호Girl도 아니고 하필 최초 여자무술감독을 꿈꾸는 ‘스턴트 걸’이라면? 세상은 넓고 Girl은 많은데 도대체가 이게 웬Girl?  
<시크릿 가든>은 영혼이 바뀌고 나서야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게 되는 두 주인공의 성장 드라마임과 동시에 새콤달콤 전대미문 'Body 쟁탈전'이다.

 

2. 주요 등장인물.


▶ 김 주 원 (31세/K백화점사장)
오만함의 결정체, 김주원.. 그는 말한다.
“신은 분명 여자다. 그러니까 날 만들었지...“  

최고급 수제화 마니아. 
짙은 눈썹, 베일 듯 날카로운 콧날, 탄력 있는 몸매, 
여자를 버릴 때조차 달콤한, 신의 사랑을 받아 마땅한 이 남자 두뇌마저 섹시하다. 인터뷰 한 번으로 美명문대에 입학, 최우수 졸업생(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어디를 가나 타고난 미모(?)로 여심을 사로잡고, 수려한 말빨로 남자들의 혼을 빼놓는다. 물려받은 재산이, 또 앞으로 물려받아야 할 재산이 얼만지 정확히 모른다. 외조부인 문회장에게 K백화점을 물려받자마자 VVIP 전략으로 업계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일주일에 이틀 출근이란 기염을 토해 전 직원의 미움을 한 몸에 받는 오만함의 결정체. 대놓고 말하면 용감하다 칭찬이라도 할 텐데 없는 놈들은 늘 뒷말뿐이다. 

이렇듯 완벽한 주원에게 딱 하나 약점은 호적상 4.5(?)촌, 심정상 철천지원수인 오스카다. 
오스카가 스포츠카를 사면 스포츠카 매장을 사들이고, 오스카가 요트를 사면 선착장 근처 땅을 죄다 사버려야 뱃속이 편하다. 
남자는 평생 철이 안 든다던데, 딱 이 남자다. 

이상형도 심플하다. 재계순위 20위권 내 영애로, 키 170에 27세 미만, 해외명문대 학사학위 소유자면 누구나. 
주원에게 여자란 아이 낳아 잘 키워줄 인생의 전략적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다? 사랑땜에 죽고 싶다? 그런 건 멍청한 오스카나 앓는 호르몬 질병이다. 시간 낭비 감정 낭비 안 해도 되는 정략결혼이 최고의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남자.  
그러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여자 라임을 만나게 되고 혼란스러워 진다.  
밥을 먹으면 계산서에 제 밥값을 꽂아놓고, 
나보다 쨉이 빠르면 덤벼! 사나이 가슴에 비수를 꽂아버리고, 
불량배를 만나선 냅다 하이킥을 꽂아버리는 여자. 
자존심 상하게, 이 이상한 여자가 자꾸 보고 싶다.

 



▶ 길라임 (28세/스턴트우먼)

 

멋지다는 말을 더 좋아하는 여자, 길라임..
“이상형? 나보다 쨉(Jab)이 빠른 남자..“


 

돈 없고 못생기고 과거 있는 남잔 용서해도 jab이 느린 남잔 용서 못한다. 
돼지껍데기에 소주를 아무리 퍼 마셔도 슈퍼모델급 에스라인 몸매다. 
화장품 샘플만 발라도 자체발광이니 감출래야 감출수도 없는 미모다. 그 미모에, 그 몸매에 왜 액션배우를 하냐는 물음에 “팔잡니다.” 하며 싱그럽게 웃는 여자. 그래서 늘 탑 여배우들의 질투의 대상이다. 예뻐서 손해 보는 지구상 단 한 명의 여자. 

태권도 관장이었던 아버지 덕에 돌잔치도 체육관에서 했고, 돌잡이로 품띠를 잡은 여자. 고등학생 때 이미 태권도, 합기도 사범 자격증을 땄고 검도와 유도도 마스터할 무렵, 아버지를 잃었고, 사부님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미국에서 날아온 종수를 만났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섰다. 분칠한 것들은 유치했고 몸은 고단했고 대접은 서러웠지만 꿈이 있어 행복했다. 그래서 오직 꿈을 향해 매일매일 맞고 구르고 달리고 날아올랐다. 
수다 떨 줄 모르고 시크한 성격 탓에 내편 니편이 분명하다. 
약한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 그냥 못 지나쳐 몸 성할 날은 없지만 맘은 늘 꽃밭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철없고 미성숙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주원을 만난다. 
하나님이 이 인간을 만드시다 깜빡 조신 게 분명하다.  
남의 고통엔 관심이 없고 남의 감정엔 더더욱 관심 없는 이 남자, 달콤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스카를 다시 만났으니 고마워하기로 했다. 
“길라임씨? 여전히 멋지네?” 
오스카가 날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름을 기억해준 스타는 처음이었다. 
예쁘네, 가 아니라 멋지네, 인 것도 참 맘에 든다.

 

 

▶ 오스카 (31세/한류 TOP STAR)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잡지말자.
오는 여잔 고맙고 가는 여잔 더 고맙거든..“

 


최고급 시계 마니아다.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는 오스카 데뷔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짐승돌’로 태어나 살인 미소와 ‘오토 튠’의 도움으로 일본 찍고 중국 대륙을 넘어 아시아 ‘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최강 한류스타가 된 남자. 
외조부인 문회장의 스마트한 두뇌는 주원에게 갔지만, 블랙홀 같은 매력은 오스카에게 뿌리내려 엄마 빼고 세상의 모든 여잘 정복했다는 남자. 심지어 이별을 고할 때조차 마지막 키스는 하고 보내는 이 남자, 진정 위험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몇 달의 방황 끝에 질투가 날 정도로 탐나는 재능을 가진 ‘썬’을 만나 프로듀서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근데 ‘썬’ 이 자식 차도 싫고 집도 싫으니 헉!! 마음을 달란다.

천하의 바람둥이 오스카에게 단 하나의 순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모두 ‘슬’의 차지다. 
아직도 슬이 앞에만 서면 가슴이 뛰고, 화난 듯 굴고, 모든 게 서툴러진다. 
슬은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나 두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오스카의 첫사랑이다. 그런데 그 누구도 사랑한 적 없다는 슬. 그 사실은 오스카에게 절망이자 희망이다. 
헌데, 그녀가 철천지원수, 주원에게 꽂혔다. 
오스카는 첫사랑을 되찾기 위해 주원이 가진 것 중 제일 소중한 것을 빼앗아올 계획이다. 
헌데, 이게 복수인지 아님, 그 여자가 갖고 싶었던 건지 헛갈리기 시작하는데...

 

▶ 윤슬 (30세/CF감독)

 

"돈 있는 사람의 권익(?)은 도대체가 보호받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

 


재벌과 서민 앞에 ‘인생’이란 시험지가 놓여진다. 
대부분의 서민은 네 개의 보기 중 어느 게 정답일까 고르다 답안지를 내보지도 못한다. 
그럼 윤슬은? 몽블랑 만년필로 5번을 써넣는다. 내 인생의 정답은 내가 만든다. 
집에선 조용히 신부수업이나 받다 시집가라지만 다행이 얼굴 이뻐 튜닝 필요 없고 공부 잘해 대학 졸업장도 간지 나니 재벌 신랑 만나 소꿉놀이 하기 전에 스타들 데리고 인형 놀이나 실컷 하기로 맘먹었다. 

CF 감독으로 이름도 꽤 알렸다. 
다들 아빠 빽 때문이라고들 한다. 
신경 안 쓴 듯 후줄근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는 얼굴이 ‘윤감독’이란 호칭에 제법 그럴싸하게 어울린다. 하지만 모두 빈티지 컨셉일 뿐. 
늘어져 구멍 숭숭난 니트는 백화점에선 팔지도 않는 이태리 수제 명품이다. 일찌감치 상위 1.5%로서의 자기 팔자를 알았기에 사랑은 일부러 멀리했다. 

그런데 오스카의 뮤직비디오를 맡으면서 불안해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요는 사랑 노랜데 슬은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혀 모르면 약점이 될까 싶어 예방주사는 맞았다. 오스카였다. 근데 예방주사가 효과가 없었나 보다. 주원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주원에게 보냈던 ‘뚜마담’이 감히 졸부 집구석 따위가, 라고 혼쭐이나 돌아왔다. 
김주원. 니가 그렇게 잘 났어? 
니가 나한테 안 넘어 오고 배길 줄 알아?

 

▶ 임종수 (34세/유학파 무술감독)

 

"기집애가 무슨 스턴트야. 나한테 시집이나 와.“

 


충무로에 헐리웃 시스템을 도입한 무술감독. 
휴 잭맨 못지않은 구릿빛 탄탄한 몸매와 액션 연기,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팬클럽까지 거느린 잘 나가는 액션스쿨 대표다. 
유학 후 액션스쿨 문 연 지 겨우 3년이지만 독특하고 감각적인 액션으로 언제나 섭외 1순위다. 
한국 영화 만만치 않게 헐리웃에서도 의뢰가 들어온다. 
스턴트맨 후배들 거둬 먹이느라 집 한 칸 없지만 비행 마일리지만큼은 재벌 안 부럽다. 
유학파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것 같지만 다혈질에 “기집애가”를 달고 사는 가부장적 남자다. 
그런 종수의 마음속엔 오직 한 여자, 라임뿐이다. 

 

▶ 썬 (23세/신인가수)

 

"난 똑바로 서 있는데 세상이 삐뚠거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중이다. 
어젠 뮌헨에 있다가 일주일 뒤엔 파리에 있고 또 일주일 뒤엔 이스탄불, 이런 식이다. 
아버지가 가족을 떠난 이유가 어머니의 외도였단 걸 안 그날, 짐을 챙겼다. 
어머니 때문에 썬은 그 어떤 여자도 믿지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다. 
썬을 버티게 하는 건 오직 음악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싶어진 썬 앞에 오스카가 나타났다. 이 남자... 갖고 싶다.

 

▶ 민아영(26) - 라임의 룸메이트.
한때 촉망 받는 육상선수였으나 먹기만 하면 가슴으로만 살이 가는 덕에 
육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글래머. 현재 K백화점 VIP라운지에서 근무 중이다. 
애교 많고 낙천적인 성격으로 여직원 인기투표에서 1위에 뽑힌 후, 
전국체전은 나를 버렸으나 K백화점은 나를 인정했다며 백화점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 
간혹 본인의 쭉쭉빵빵한 몸매를 무기로 사용하기도 하는 귀여운 속물. 

 


▶ 문분홍(54) - 주원의 엄마. 전업주부.
문회장의 둘째 부인의 딸. 서른다섯에 남편과 사별하고 주원만 바라보고 산다. 
나이답지 않게 엄청난 동안인데다가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이 화장품 회사 CEO인 이복동생 연홍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하지만 일하는 여성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다.
때문에 주원이 K백화점을 온전히 상속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 문연홍(52) - 오스카의 엄마. 화장품 회사 CEO.
문창수 셋째 부인의 딸. K그룹 계열사인 K화장품 회사를 경영 중이다. 
빈말 못하고 좋고 싫은 게 분명하다보니 남편에게 성격 차이로 이혼 당한 것이 평생의 흠. 
그 보다 더 큰 약점은 너무 노안이란 점이다. 어딜 가나 분홍의 언닌 줄 안다.  
시도 때도 없이 미스트를 얼굴에 칙칙 뿌리는 게 특기다.  

▶ 김희원(25) - 주원의 여동생.
엄마와 이복 자매인 연홍의 화장품 회사 기획실장.  
하지만 1일 1코너 1아이템 쇼핑이 생활의 철칙이라 출근은 K 백화점으로 한다. 
롤모델은 패리스 힐튼. 돈 많고 싸가지 없으나 미모가 출중하니 좋다는 남자는 많다. 
근데 그 많은 남자 중에 하필 젤 상극인 남자에게 꽂혔다. 바로 종수다. 

 


▶ 문창수(79) - 주원과 오스카의 외조부.
포털 사이트 인물 검색 순위에서 늘 대통령 다음을 차지하는 인물. 
대한민국의 살아있는 경제 신화, 뭐 이런 걸로 검색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웅호색, 재벌 외도, 등 낯부끄러운 검색어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한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에서 유언장을 고치는 노련한 회장님. 

 


▶ 박상무(65) - K백화점 상무. 문회장의 오른팔.  
고졸 출신으로 상무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문회장 일가와 가족같이 지내며 평생 문회장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은 죽었다 깨나도 가족이 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진짜 가족이 되는 수밖에!!! 급기야, 
공부만 알지 자기가 얼마나 고운지도 모르는 여동생과 문회장의 만남을 주선하는데.... 

 


3. 간단 줄거리.

 

“고대 마야인들은 비의 신 ‘차악’을 숭배 했다고 합니다. ‘차악’의 석상은 얼굴을 왼쪽으로 향한 채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고 하죠. 바로 그 ‘차악’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하지(夏至) 때 일몰지점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그럴까요? 올 여름은 이상하리만치 비 소식이 많습니다. 정확히 하지를 기점으로 생성된 검은 비구름은....”  

  검은 구름이 낮게 내려온다. 도로엔 안개가 자욱하다. 「이곳부터는 사유지입니다. 출입을 엄금합니다.」굳게 닫히는 육중한 철문 사이로 빠르게 달려가는 스포츠카와 비안개 자욱한 울창한 숲 보인다. 대체 여긴 어딜까... 
  숲 한가운데 마법처럼 서 있는 아름다운 도서관과 신들의 새장 같은 퍼골라(pergola), 푸른 잔디로 뒤덮인 언덕들과 눈을 의심케 하는 돔 형태의 거대한 공연장, 빽빽한 백양목에 둘러싸인 숲 한가운데 자리한 풀 사이드 바와 푸른 수영장의 물결, 연못 위에 거짓말처럼 떠 있는 멋진 수상가옥, 끝도 없이 펼쳐진 웅장한 유리 화원... 
  마치, 중세 유럽의 대 장원(莊園)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대저택에 살고 있는 두 남자, K백화점 손자인 히스테릭하고 신경질적인 주원(31)과 오만방자 톱스타 오스카(31)다.   

  볼쇼이 발레단 내한 공연 로열석에 앉아 있는 주원. 늘 그렇듯 주원의 양 옆 좌석은 비어 있다. 양쪽 팔걸이를 다 쓰고 싶단 이유로 늘 세 좌석을 사 양 옆을 비워 놓는 것이다. 그럼 꼭 그 자리가 빈자린 줄 알고 가방이나 옷을 놓는 개념 외박시킨 분들이 있다. 
  “실례지만, 여기 로열석 티켓이 얼만 줄 아십니까?” 
  “(?!!) 이십 만원주고 예매했는데요.” 
  “그럼 (가방 가리키며) 이 아이도 이십 만원 내고 여기 앉은 겁니까?” 
  “네?” 
  “제 자립니다. 이 아인 여기 앉으면 안 됩니다. 데려가세요.”   
  헉!! 뭐 이런 남자가 다 있어? 이런 남자 있다. 주원은 이런 남자다.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한다. 근데 왜 늘 가난할까?’ 
  주원이 일곱 살 때 썼던 작문 제목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수천억의 부자였던 주원은 대체 왜 사람들이 돈이 없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꿈이 없다거나 먹고 싶은 게 없다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거나 그럴 순 있다. 그건 나도 그러니까. 
  그로부터 3년 후, 주원은 ‘세상은 좁고 평등은 없다’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 아빠는 회사원이고, 그래서 돈이 없고, 돈을 버는 건 그 회사 회장님이고, 그 회장님이 자신의 외할아버지란 걸. 그 순간 주원은 깨달았다. ‘난 평생 일을 안 해도 돈이 많겠구나..’ 
  그런 이유로 주원은 외할아버지가 물려주신 K백화점 사장으로 취임 후 주5일 중 화목만 출근을 했다. 제일 차가 안 막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그런 주원의 행태에 분노했지만 주원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사장이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일은 직원들이 하고 사장은 결정만 하면 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아무리 좋은 기획서라도 이렇게 세 번만 트집 잡으면 직원들은 하지 말래도 야근을 하고 알아서 주말을 반납했다. 그러니 나 하나 논다고 백화점 안 망한다. 

  주원은 대부분의 시간을 화원에서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보낸다. 보통의 남자들이 여자와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침대에서 에너지를 낭비할 때, 주원은 꽃씨를 심고, 분갈이를 하고, 햇빛과 습도를 조절했다. 주원이 꽃을 좋아하는 이윤 간단하다. 수다스럽지 않고 만나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예쁘니까. 연락도 없이 박상무(65)와 임원들이 들이 닥친 건 그때였다. 
  “창립 20주년 고객사은행사 기획안입니다. 싸인만 하시면 됩니다.” 
  “아직도 제 싸인 똑 같이 못 하세요?”   
  물론 할 수 있고 몇 몇 건은 급하단 이유로 그렇게 했었다. 때문에 K백화점 실세는 박상무란 소문이 짜- 하게 퍼졌다. 첨엔 좋았다. 헌데, 김주원 이 자식 속을 모르니 문회장(79)이 여동생 봉희(55)에게 푹 빠져 정신 못 차릴 때까진 몸을 사려야 했기 때문이다. 
  “대체 왜 이러십니까 사장님.”
  “사장이니까. 박상무님도 놀고 싶으세요? 그럼 제 자리 뺏으세요.” 
  “사장님!” 
  주원은 요즘 박상무의 여동생인 대학교수와 외할아버지의 만남이 잦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조부인 문회장의 주야장청 질주본능(?) 덕에 자신의 모친 문분홍(54)은 문회장의 둘째부인의 딸로, 오스카의 엄마 문연홍(52)은 셋째 부인의 딸로 태어났다. 문회장의 연애가 ‘열애’가 아닌 게 다행이긴 하지만 네 번째 외조모가 생길 가능성도 배재할 순 없었다.  
  “20주년이 뭐 별거라고. 창립 10주년 때 했던 거 그대로 할 꺼 아닙니까?” 
  “예 뭐.. 비슷합니다.” 
  “D백화점도 올해 20주년이죠? 그쪽 하고도 비슷하게 맞췄을 거고.”
  “맞습니다. 걔들도 1등은 1000cc 경차고, 냉장고 청소기 등등 저희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행사 내용이 타 백화점과 별반 다르지 않고 10년 전과 비슷한 행살 우린 왜 하는 거죠?” 
  “네?” 
  “상무님은 경차 땜에 경품행사에 응모하고 싶으십니까?”
  “그야...” 
  “안하시죠? 제가 드리는 월급으로 훨씬 더 좋은 차 타시니까.” 
  “!!!”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고, 못하세요? 경차 타보겠다고 백 원 단위까지 맞춰 응모함에 넣는 안쓰러운 인생들이 백화점에 와서 쇼핑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요. 그 인생들 싸구려 구두에 긁힌 대리석 바닥 왁스 값이 더 든단 생각은 안 드십니까?” 
  “!!!” 
  “나 같으면 경차 냉장고 청소기 말고, 탑 스타 송모양 공항패션! 송양이 입고 들고 찼던 그 코트, 그 가방, 그 시계 드립니다, 할 겁니다. 왜? 반찬냄새 나는 지갑 보다 멍청하고 사치스런 지갑이 훨씬 열기 쉽고, 훨씬 돈도 잘나오고, 그래야 상무님 지갑도 계속 빵빵하실테니까.” 
  “!!!” 
  “여기 오실 시간에 제 싸인 연습이나 하세요.”
  임원들 중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사무실에서보다 꽃 속에 있을 때 주원은 가시를 감춘 장미처럼 뾰족하고 싱싱했다. 
  “그럼 오스카 재계약건은 어떻게 할까요.” 
  이런 씨!! 정곡을 제대로 찔렸다. 천하에 김주원도 대책 없는 단 하나! 바로 오스카였다. 오스카는 3년 동안 K백화점 메인 모델이었고 곧 계약이 끝난다. 오스카 덕에 일본 관광객의 증가로 백화점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는 시점이라 반드시 재계약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스카는 천문학적 계약금을 요구해 20주년 사은행사 스케줄도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사장님께서 직접 얘기를 해보시는 게 빠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빠르겠지. 빠르게 계약이 박살나겠지. 오스카에게 지긴 싫고 계약은 성사해야 하고, 이 상황이 못내 신경질 나는 주원인데....  

  그 시간 7집 녹음을 마치고 돌아온 오스카는 연못 옆 작업실에서 분을 삭이고 있었다. 7집 홍보를 위해 돈이 좀 들더라도 스케일 있는 뮤직비디오를 찍을 작정이었다. 
  “주인공? 당근 내가 해야지.” 
  이 자식을 그냥!! 소속사 대표인 동규(43), 치미는 화를 웃음으로 억지로 감춘다. 
  “대본도 나왔고 해외촬영 협찬도 받아 놨는데 뭐가 문제야.” 
  “음... 니 연기가 후지고 뮤비 연출을 맡겠다는 감독이 단 한명도 없다, 뭐 그 정도?” 
  “뭐? 내 연기가 왜! 감독은 왜 없는데. 뭐 땜에!” 
  왜? 뭐 땜에? 제발 가슴에 손 좀 얹어봐라 이 자식아! 신인 때부터 ‘헐리웃 스타 싸대기 칠 싸가지’로 유명했던 오스카였다. 인과응보란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물론 내가 차가운 도시남자긴 하지. 그렇다고 프로들이 일을 안 해? 돈으로 질러. 돈에 안 꺾이는 자존심은 없어. 왜? 난 꺾일 때까지 지를 거니까.” 
  말은 그랬지만 오스카도 내심 불안했다. 젊음과 열정과 씩스 팩으로 우후죽순 커 올라오는 ‘짐승돌’ 틈새에서 더는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오스카도 악으로 깡으로 만든 씩스 팩은 있다. 하지만 정확이 여섯 쪽인 순간은 하루에 몇 분 안 됐다. 어쩌면 지금 녹음 중인 7집 앨범이 박수칠 때 떠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횔 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TV 인터뷰에서 입방정을 떨고 말았다. 폼 좀 나겠지? 라는 생각으로 프로듀서 겸업을 선언했던 것이다. 
  동규는 오스카 입방정을 수습하느라 돌기 직전이었지만 오스카는 어차피 뱉은 김에 진짜 프로듀서나 해볼까? 하며 나댔고 마침 ‘썬(23)’이라는 탐나는 아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밥 좀 사주고 돈 몇 푼 쥐어주면 “캄사합니다” 소리 나오겠지. 오스카는 로드매니저인 종헌(21)을 시켜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쫌 전에 제대로 하이킥을 맞은 것이다. 
  “....형. 너무 놀라지 마요.” 
  “왜. 뭔데. 계약금 왕창 불러?”  
  “그런 거 아니고.. 메일 온 그대로 읽어요. ‘나 썬이다. 날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난 니가 누군지 몰라. 니 음악도 몰라. 날 만나고 싶어? 그럼 니 음악부터 보내. 그게 순서야.’”
  띵-!! 이런 미친놈이! 어떻게 날 모른단 말인가. 사천오백만의 사랑, 국민 훈남, 이 오스카를 말이다!! 아니, 설사 몰라도 그렇지. 지 인생 내가 바꿔주겠다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답장을 보낸단 말인가!!
  “진짜로.. 그렇게 써있어? 꼬박꼬박 반말로?” 
  오스카는 그 자리에서 수표책을 꺼내 백지수표를 끊어 썬에게 보냈다. 결국 모든 건 돈 얘기로 귀결된다. 이정도면 알아듣겠지. 지가 오나 안 오나 보자고.  

  이렇게 겉은 명품 속은 하자인 주원과 오스카는 동갑에 물병자리, 야구팀 ‘아나콘다’ 멤버에 연일 스포츠신문 가십란 1면 장식 등등 수많은 공통점에도 불구, 만나기만 하면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4.5촌(?) 형제 사이다. 
  사이 고약한 이복자매를 엄마로 둔 탓에 주원과 오스카는 한 달 텀으로 경쟁하듯 세상에 태어났고 그때부터 니가 모면 나는 도. 니가 구찌면 나는 샤넬. 니가 콩으로 메주를 쑤면 난 유기농 콩으로 유기농 메주를 쑨다 등등 유치짬뽕 쪼잔작렬 싸움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놈의 인기는.. 이렇게 다 가려도 알아보냐?” 
  “너 아니야. 나 보는 거야.” 
  “사시냐? 들어오면서부터 나랑 눈 계속 마주쳤거든?” 
  “내가 계속 안 봐주니까.” 
  “쟤 보나마나 내 팬이거든? 선글라스 벗어 볼까?” 
  “무리수 둔다. 내기 할래?”
  또 시작이다. 그날 오스카는 주원에게 우리나라에 단 3개 밖에 없다는 롤렉스시계를 뺏겼다. 오스카와 눈이 마주쳤던 여잔 주원의 백화점 직원이었던 것이다. 

  그런 주원과 오스카지만 서로가 가진 것 중 전혀 관심 없는 것이 하나가 있으니 바로 여자다. 여잔, 내 아이를 낳아주고 키워줄 인생의 전략적 파트너란 주원과 쟨 귀엽고 얜 예쁘고 아까 걘 섹시하단 오스카가 서로 부딪힐 지점이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런 두 남자의 ‘시크릿 가든’으로 소나기처럼 뛰어든 한 여자, 바로 라임(28)이다.    

  K백화점 VIP 라운지. 테이블에 놓인 ‘로열 코펜하겐’ 커피 잔.. ‘빌레로이 앤 보흐’ 접시에 담긴 예쁜 수제 초콜릿.. 샤넬 스커트.. 왼손 약지에서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들.. ‘청담동 며느리룩’ 차림의 여자들 삼삼오오 앉아 담소 중이다. 한쪽 구석엔 최고급유모차들과 아이를 안은 혹은 업은 보모 아주머니들 모여 앉았다. 그 중 미모가 돋보이는 한 여자, 윤슬(30)이다.  
  “난 백화점 VIP라운지 중에 여기가 젤 낫더라. 커피 잔부터 달라.”  
  “된장녀.” 
  “초콜릿도 수제다 너?”
  “그래. 된장녀.”
  “웃겨? 그러는 넌.” 
  “나? 난 상속녀지.”  
  ‘상속녀라...’ 슬의 의외의 대답에 듣고 있던 한 여자 시선을 든다. 검고 긴 생머리.. 길고 가는 목덜미.. 건빵바지에 민소매. 검게 그은 어깨와 팔뚝엔 여의주를 문 청룡이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라임이다. 
  라임과 슬의 시선이 부딪힌다. 헉!! 대체 이 백화점은 VIP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돈 있는 사람의 권익(?)은 도대체가 보호 받지 못하는 더러운 세상! 
  ‘대한섬유’ 상속녀이자 CF감독인 슬은 ‘어딜 가든 돋보여라. 평범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가 모토다. 그런 슬에게 라임의 차림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조폭 아냐? 아줌마, 얼른 보경이 안아요.” 
  된장녀 호들갑 떠는데, 발딱 일어나 또각또각 라임을 향해 가는 슬. ‘마놀로 블라닉’ 샌들이 라임의 낡은 운동화 앞에 딱 멈춘다. 슬과 라임의 건조한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친다. 
  “거기.” 
  시선은 라임에게 두고 손짓으로 직원을 부르는 슬. 마침 안내데스크에서 통화를 막 마친 아영(28)이 허겁지겁 달려온다. 아영은 라임의 룸메이트다. 아침에 급히 출근을 하느라 아영이 집 열쇠를 들고 오는 바람에 라임은 열쇠를 받으러 온 길이었다.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십니까 고객님?” 
  “여기 라운지 출입이 언제부터 이렇게 헐렁해졌죠? 년 구매액 1억 이상인 VVIP만 출입하는 곳 아니었나요? 들어올 때 신분증 검사도 철저히 하고.” 
  “예. 맞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신분증 검사 다 했어요?” 
  “물론입니다 고객님.” 
  “거짓말. 나 안했잖아.” 
  “그야 고객님은 전 직원들이 얼굴을 아는 분이셔서,” 
  그 순간 아영의 말 막으며 일어서는 라임. 
  “내 얘긴 거 같다. 열쇠 줘. 갈게. 엄한 사람 안 잡으셔도 됩니다. 가려던 참입니다. 커피 잘 마셨다.” 
  하고 열쇠 받아 나가는데 등 뒤에서 들리는 슬의 목소리. 
  “백화점에 돈은 우리가 쓰고 커핀 엄한 사람이 마셨네? 뭔가 잘못 됐단 생각 안 들어요? 당신 이름 어떻게 돼?” 
  “(헉!! 가슴의 명찰 손으로 가리며) 고.. 고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딱딱하게 굳는 라임의 얼굴. 천천히 고개 돌려 슬 보면 슬, 잔인한 미소 띠고 라임 보더니 아영의 가슴에서 명찰 확 낚아채 가버린다. 라임 못 참고 따라 가려는데 아영 그런 라임 잡는.
  “일 더 크게 벌리지 마. 그냥 욕먹고 말 수도 있어. 하지 마. 나 짤리면 안 돼.”  
  라임, 왠지 자기 잘못인 것만 같아 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불편한 맘으로 백화점을 나서던 라임, 저만치 앞에 차를 기다리는 듯 슬 일행 발견하고 멈춰 선다. 된장녀 옆엔 보모 아주머니 아이 안고 서 있다. 라임 서늘한 얼굴로 저벅저벅 슬 향해 간다. 슬도 라임 발견하고 니가 어쩔 건데? 하는 표정으로 라임 본다. 점점 가까워지는 라임과 슬. 바로 그 순간 “아이고 아버지” 하며 아이 꼭 끌어안고 주저앉는 보모. 
  된장녀가 가방을 맡기고 아이 침 닦아주는 사이 소매치기가 보모의 손에 들린 된장녀의 가방을 들고 튄 것이다. 사람들 웅성거리고 라임도 엇! 하고 멈춰 섰다. 
  “가방! 내 가방! 아줌마 미쳤어? 꽉 잡아야지 뺏김 어떡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 
  “죄송합니다 사모님. 보경이 다칠까봐..” 
  “어머, 왜 애 핑계를 대? 보경이 이리 줘. 혹시 아줌마 한패 아냐? 한패야 한패! 아줌마가 다 물어내! 물어내!” 
  그 사이 소매치긴 공범이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붕- 가버린다. 돈을 물어내란 말에 싹싹 빌며 한패 아니다 기어이 울음 터진 중년의 보모. 라임 그 모습 보다 
  “오늘 일진 왜 이렇게 험하냐.”   
  하더니 그대로 뒤돌아 미친 듯이 달려간다. 소매치기 차 대로변으로 진입하는데 마침 신호에 걸린다. 라임 차 향해 죽어라 뛴다. 라임이 달려오는 걸 눈치 챈 차량 우회전 한다. 
  골목과 골목, 지름길을 이용한 필사의 추적. 라임은 육교 위에서 마주 오는 차를 발견하고 그대로 육교 밑으로 뛰어 내려 차를 멈춘다. 야구 배트를 챙겨 차에서 내리는 네 명의 사내들. 달려오는 차들과 네 명의 사내를 상대로 위험한 격투를 벌이는 라임. 라임의 발차기에 박살나는 차창과 사내들의 얼굴. 결국, 네 명을 때려눕히고 가방을 찾아 드는데 “삐용 삐용” 경찰차 싸이렌 소리 들린다.    

  백화점 앞으로 돌아간 라임, 된장녀에게 가방을 건넨다. 슬, 이 여자 대체 뭐야? 땀으로 얼룩진 라임도 슬 본다. 뜨끔한 슬 시선 돌리려는데, 
  “친구분 가방 찾아 줬으니까 아까 라운지에서 있었던 일 없었던 걸로 하죠.” 
  분해서 대답 없이 라임 노려보는 슬. 
  “주세요 명찰.”  
  “없어요.” 
  “있을 텐데?”
  “버렸어요.” 
  “(!!!) ....버렸어요?” 
  “입구 쓰레기통 뒤져보면, (하다) 악-!”
  놀라 눈 커지는 슬!! 라임이 슬의 멱살을 잡아당긴 것이다!!  
  “입구 쓰레기통 어디. 백화점에서 1억 쓰시는 분이나 친구 덕에 커피 얻어먹는 년이나 쓰레기통 더럽긴 마찬가지거든요. 버리신 분이 주워 주셔야겠는데.” 
  “조, 좋아요. 그냥 어, 없던 일로 하죠.” 
  그런 슬의 눈 뚫어져라 보다 멱살 놓아주는 라임. 슬 분해 어쩔 줄 모른다. 그때 톡 끼어드는 된장녀. 
  “가방 너무 고마워요. 근데 살짝 기스 갔어. 어머. 그쪽이 잘 못했다는 건 아니구요, 아까부터 너-무 궁금해서요. 대체.. 뭐 하시는 분이세요?” 

  달빛에 반짝이는 푸른 칼날... 도시의 빌딩 숲을 내려다보고 있는 검은 코트 차림의 창백한 얼굴의 라임. 이내 화려한 불빛 속으로 한 마리 검은 새처럼 낙하한다. 
  나이트클럽에선 광란의 파티가 한창이다. 반라의 여인들의 유혹적인 몸짓들.. 광란의 파티는 라임의 등장으로 핏빛으로 변한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짐승처럼 달려드는 뱀파이어들을 베어 쓰러뜨리는 라임. 낭자한 주검들을 밟고 서서 찰랑이는 긴 머리 쓸어 올리면!!! 모니터 가득 ‘국민 엔젤’ 박채린(24)의 얼굴 보인다. 
  “컷!! 오케이” 
  “감독님 저 멋있게 나왔어요?” 
  “니가 뭐 하러 멋있어. 이뻐야지. 라임씨 수고 했어. 멋있게 잘 나왔어.” 
  “감사합니다...”
  잘 나왔다는 감독의 칭찬에 수줍게 웃으며 신발 앞코를 바닥에 콩콩 찧는 라임. 기분 좋을 때 나오는 라임의 버릇이다. 어느 현장에서나 신인여배우로 착각할 만큼 화사하고 빛이 나는 라임. 깊은 눈매와 시크한 미소가 그녀를 더 돋보이게 한다. 그날도 라임은 SF 판타지 드라마 촬영장에서 채린을 대신해 날고 달리고 굴렀다. 하지만 라임을 보는 채린의 눈 꼬리는 곱지 못하다. 
  “똑같은 의상, 똑같은 분장, 똑같은 동작 한다고 지가 주인공 인줄 알아? 스턴트 주제에.” 
  박채린의 말이 비수처럼 꽂혔지만 라임은 그녀가 밉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미워하거나 말거나 관심 없고, 둘째 여주인공들이 불안해 할 만큼 자신이 예쁘단 걸 너무 잘(?) 알고 있고, 셋째 자신의 일을 뜨겁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한편 동규는 아는 프로듀서를 통해 어렵게 소개 받은 뮤비 감독 미팅 자리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니가....” 
  “윤PD가 실력 있는 감독이라고 소개 안하던가요? 너무 놀라시니까 민망하잖아요” 
  슬이었다. 슬과 오스카는 한 때 연인 사이로 오스카의 수많은 스캔들 중 유일하게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스캔들이었다. 슬인 어떤지 몰라도 오스카에게 슬은 첫사랑이었다. 동규의 기억이 맞다면 상처를 받은 쪽도 오스카였다. 아니, 우영이었다.
  “다시 흔들려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불장난은 불장난으로 끝냈어요. 오늘 이 자린, 신인 감독으로 나온 거예요. CF도 좋지만 장르를 넓혀 보려구요. 이번 뮤비, 제가 할게요.” 
  “그럴 순... 없을 것 같다. 너희 둘,” 
  “우영이 컨트롤 할 사람 저 밖에 없어요. 하겠다고 나서는 감독 없잖아요. 설사 있다 해도 우영일 누가 이겨먹어요. 지난 6집 때도 촬영중간에 접으셨다면서요.” 
  “!!!” 
  “저한테 맡기세요. 우영이 제 말 잘 들어요. (콘티 북 내밀며) 대본 본 김에 콘티 짜봤는데.” 
  “...이러는 이유가... 뭐냐?” 
  “우영이 마음속에 첫사랑으로 남고 싶지 않아서요. 곧 한 가족 될 사인데.” 
  “(!!!) 한 가족?” 
  
  그 시간 오스카는 핏발선 눈으로 뒷목을 잡고 쓰러질 지경이었다. 백지수표를 보낸 썬에게서 다시 답장이 온 것이다. 
  “뭐.. 뭐라고 써 있다고? 도, 돌대가리?” 
  “물 줄까요? 아니다. 누워요. 누워요 형!” 
  “다, 다시 읽어봐. 고대로 읽어 얼른!!” 
  “아씨... ‘나 썬이다. 난 니가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 관심 없어. 니가 나한테 보낼 건 백지수표가 아니라 니 음악이란 얘기야 이 돌대가리야. 돈으로 쉴드치지 말고 자신 없음 꺼져.’라고... 짧지만 강력하게 써 있네요.” 
  “와- 뭐 이런 미친놈이! 지금 당장 전화 해. 전화해 당장!” 
  잠시 후 “네.” 낮고 건조한 썬의 목소리 전화기에서 흘러나온다. 
  “어, 너 썬이냐? 나 오스칸데, 너 지금부터 똑똑히 잘 들어!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려줄 테니까!” 
  다음 순간, 헉!!! 오스카가 수화기를 잡고 “♬샤를라..오~알럽 베이베~”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는 게 아닌가!! 
  “들었냐? 너 방금 깜짝 놀랐지. 그래 이게 내 노래야. 너 솔직히 노래방 가면, (뚜-- 헉!!)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게 감히 내 전활 먼저 끊어? 노래방 딱 들킨 거지 지가.” 
  처음 당해보는 수모에 오스카는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그 순간 다시 전화벨 울린다. 그럼 그렇지! 자신 만만하게 통화버튼 누르는데, 
  “오빠 왜 내 전화 피해? 에프터쿨쿨 윤희 전환 받았다며? 왜 걔 전화만 받어? 나도 허벅지 이뻐. 난 쨈벅지야. 봤잖아!”  
  이런 젠장!! 채린이었다.  
  “나 지금 촬영 중인데 기자들 엄청 와있거든? 나 오빠랑 사이 다 불어 버릴꺼야.” 
  “어. 불어. 다 불어. 얼른 불어! 끊는다.”   
  폴더를 접으며 남자답고 멋졌다고 오스카는 생각했다. 딱 한 순간 멋지고 평생 후회할 전화 통화였다는 걸 그 순간 오스카는 알지 못했다. 

  사고가 일어난 건 마지막 도심 씬이었다. 액션의 난이도가 높아 합이 잘 맞아야 했다. 라임은 뺀질거리는 채린을 잡고 연습을 시키느라 지쳐가고 있었다. 오스카랑 통화 후 약도 오르고 평소 라임을 질투하던 채린은 너 잘 걸렸다, 엉뚱한 방향으로 검을 내리쳤다. 라임은 본능적으로 검을 막았지만 칼이 두 동강 나면서 날아 온 칼날에 팔을 베이고 말았다. 하지만 비명을 지른 건 채린이었다. 칼자루가 튕기며 손톱이 부러진 것이다.  
  “길라임씨 지금 제 정신이야? 어떻게 여배우 손톱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팔의 상처가 제법 깊었지만 라임은 아픈 티도 못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전 스텝들이 채린에게 매달렸고 촬영은 올 스톱됐다. 모든 비난이 라임에게 쏟아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니가 뭐가 죄송해. (채린 향해) 그러게 연습하랄 때 왜 안 합니까.” 
  종수(34)였다. 종수는 액션스쿨 대표이자 유학파 무술감독으로 라임의 사부였다. 채린은 잘못을 지적당하자 으허엉-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쥐어짰다. 
  “이봐 임감독! 여배우가 지금 다쳤잖아요!” 
  “그럼 얜 멀쩡해 보입니까?”
  종수가 상처를 감싸고 있는 라임의 손을 탁 낚아채자 상처에서 피가 벌겋게 배어 나왔다. 얼른 잡힌 손 빼 상처 숨기려는데, 잡은 손 꿈쩍도 않는 종수.
  “넌 기집애가 왜 그 모양이야. 안 아퍼? 어떻게 ‘아’ 소리 한마디가 없어.” 
  “(일이 커질까 전전긍긍) 괜찮습니다. 촬영 할 수 있습니다.” 
  “대드냐 지금? 너도 여배우야 이 자식아. 누군 손톱 부러졌다고 울고불고 난린데 몸 관리 그 따위로 할래?” 
  “....” 
  “이봐 임감독!” 
  카메라 감독까지 끼어들면서 기어이 일이 커지고야 말았다. 결국, 감독과 대판 붙은 종수는 자신의 스턴트 팀을 철수시켜 버렸다. 진짜 오늘 일진 왜 이러냐... 라임은 이 모든 게 자기 잘못인 것만 같아 미칠 것 같은데... 

  러닝머신 달리고 있는 주원. 주원이 오스카의 전화를 받은 건 김비서(35)에게 VIP라운지 담당 여직원이 자격 미달인 사람을 출입시켜 고객 불만이 여러 건 접수되었단 보고를 받은 직후였다. 
  “자격 미달인 사람을 출입시켰으면 잘 한 거야 잘못한 거야.” 
  “물론 잘못을,”
  “근데. 근데 왜 뻔한 일로 시간 뺏어! 짜르면 되잖아. 이 자식은 왜 전화질이야. 왜!” 
  “너 지금 놀지.” 
  “맨날 노는 거 알면서 왜 물어.”  
  “잘 됐다. 가로수 길에 루이비통 매장 앞에 가면 드라마 촬영하고 있을 거야. 거기 여주인공이 박채린이란 앤데, 걔 좀 세 시간만 붙잡고 있어.” 
  “(기계 멈추고 내려오며) 너 이젠 약도 하냐?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하겠니?” 
  “나 지금 ‘패밀리가 난다’ 녹화중이란 말이야. 부탁 좀 하자. 어?” 
  “그러니까 니가 약 먹은 게 아니면 나한테 왜 부탁을 하냐고.”  
  “동규형 알면 맞아 죽어. 그냥 서로 잠깐 엔조이 하자 한 건데, 얘가 헤어질 거면 위자료 달래. 나랑 호텔 갔던 사진 다 있대. 지금 기자들 다 불러놨다니까. 완전 말도 안 통해. 얘 껌 좀 씹던 앤가 봐.”  
  “딱 니스타일인데 왜. 같이 씹게 껌 한통 사줘?” 
  “야! 후.... 좋아. 계약서 갖고 와. 재계약 해 준다고 내가.” 
  “(속으론 좋지만) 필요 없어. 하지 마. 경기도 어렵고 그런 계약금 주곤 계약 못 해.”    
  “야! 너어!” 
  “(오케이!) 가로수길 어디? 가서 여주인공 찾음 되는 거야?” 
 
  가로수 길에선 촬영이 한창이었다. 라임은 아직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다 제 잘 못입니다. 촬영 계속 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아니 왜 그걸 나한테 얘기해. 내가 팀 뺐나? 임감독이 다 뺀다잖아.” 
  라임은 감독에게 계속 사정을 했다. 팔의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그런 라임의 어깨너머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조명팀 막내 붙잡고 무언가 묻는 남자 보인다. 주원이다. 
  “박채린이 누굽니까.” 
  “(비몽사몽) 가세요. 촬영 중이라 싸인 못 받아요.” 
  “(이 자식이! 명함 내밀며) 내가 박채린씨 싸인 받을 사람으로 보여요?”
  조명팀 막내, 명함 보더니 잠 덜 깬 눈으로 현장 휘 눈으로 둘러보다 채린과 같은 의상 같은 머리 모양 하고 있는 라임을 손가락질 한다. 라임, 그것도 모르고 어깨 축 늘어뜨리고 촬영장 빠져 나오는데 한 남자 앞 가로 막고 딱 선다. 뭐지? 라임 남자 보면 운동하다 바로 온 듯 껄렁한 추리닝 차림의 주원이다.  
  “우영이, 아니 오스카 알죠.” 
  오스카? 탑 스타 오스카? 라임, 의아한 얼굴로 주원 본다.  
  “몰라요?” 
  “...알면 왜요?” 
  “따라와요. 오스카가 좀 보잡니다.” 
  “절요?!!” 

  주원의 차 조수석에 앉아 있는 라임. 주원은 앞만 보고 운전 중이다. 그러더니 밑도 끝도 없이 “어디에요.” 하는 주원. 
  “뭐가요?”   
  “둘이 처음 만났던 호텔에서 보자던데. 그 호텔 어디냐고.” 
  심장 쿵!! 오스카가 날 처음 만났던 걸 기억한다고? 그 호텔을 기억한다고? 설마... 
  “어디냐니까?” 
  “...리츠칼튼 8003호.” 
  이래서 여자가 싫다. 특히 이런 여자 정말 싫다. 반반한 얼굴 하나로 학벌, 재산, 능력 등 후져도 너무 후진 모든 걸 상쇄시키려는 여자. 차라리 내숭이라도 떨던가, 시크한척 무심함을 가장하는 저 가증스런 연기력. 
  “오스카랑 만난 지 얼마나 됐어요.” 
  “...꽤 됐어요. 절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기억날만한 얼굴인데 왜.”
  “!!!”  
  이 남자 가시가 있다. 경멸스런 눈빛을 숨기지도 않는다. 대체 왜?  
 
  라임은 주원을 따라 호텔 룸으로 들어선다. 오래 전 오스카와 영화를 찍었던 룸이다. 라임은 오스카의 노래를 좋아했다. 정확히 오스카의 노랫말을 좋아했다. 이 사람은 분명 사랑에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구나... 
  라임과 오스카가 처음 만난 건 이 방이지만, 라임이 오스카를 처음 본 건 다른 곳이다. 선배들 심부름꾼으로 갔던 영화 촬영장이었다. 밴 한 대가 들어오자 촬영장이 술렁였다. “오스카래 오스카. 오스카가 왔대.” 누군가 외쳤고 여자 스텝들은 우르르 몰려갔다. 
  “넌 왜 안가.” 
  스텝들의 호들갑을 지켜보던 종수가 라임에게 물었다. 종수는 라임이 오스카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라임은 그저 작게 웃기만 했다. 
  “보고 싶으면 너도 가봐.” 
  “아닙니다.” 
  “가 보라니까.” 
  “싫습니다.” 
  “왜.” 
  “보면... 떨릴까봐 못갑니다. 나중에 안 떨 수 있을 때, 그때 가 보겠습니다.”  
  저 놈도 여자구나.. 종수는 라임의 발그레한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봤었다. 그런 오래된 기억 속으로 불쑥 끼어드는 주원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이 드는 라임.
  “네?” 
  “안 불편하냐구요. 한 한 시간은 나랑 단 둘이 있어야 하는데.” 
  “별로. 편하게 계세요. 안 잡아먹으니까.” 
  허- 그래. 망설임 없이 남자 따라 호텔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다. 그러니 말에 자꾸 뼈가 박힌다. 이 남자 아까부터 왜 이래? 라임, 주원의 표정 살피는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난 뭐 경험이 없어서. 보통 얼마 받아요.”
  “뭘요?”
  “있잖아요 왜.. 표현하기 좀 그렇긴 한데, 오스카랑 이런데 와서 액션 취하는, 뭐 쉽게 이 방에서 했던 거라고 합시다. 뭐 대충 얼마나 받냐고.” 
  “(그게 왜 궁금해? 빤히 보다) 탑 스타랑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어요.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장소가 중요하죠. 차로 하는 건 좀 많이 받고 옥상이나 대숲 같은 야외일 경우 좀 더 받구요.”
  “대, 대숲?!” 
  “제일 힘든 건 물에서 할 때죠.”  
  “(헉!!) 아... 물 힘들지. 근데 본인은 본인이 한 일에 대해 엄청 자부심이 있나 봐요?”
  “..그런 편이죠. 늘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한국은 외국과 달라서 장비도 열악하고..” 
  “(헉!!) 장비 나왔다 장비. 완전 프로시구나. 근데 좀 부끄럽지 않나?” 
  순간 라임은 뭔가 잘 못 되고 있음을 알았다. 이 사람 날 이상한 여자로 착각하고 있구나. 그럼 오스카가 날 보자고 했단 말은 뭐지? 앗! 그럼 혹시 이 의상 때문에? 
  “저기요, 뭔가 착각하시고 계신 것 같은데, 내 이름이 뭐죠?” 
  “뭐요?” 
  “내 이름 뭐냐구. 오스카가 만나자고 한 내가 누구냐고.” 
  “박채린.” 
  읍스... 그러고 보니 오스카와 박채린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소문을 들은 듯도 싶다.
  “오스카랑은 무슨 사이에요?”  
  “아 나 이 질문 딱 싫어. 오스카가 존경하는 형? 그 정도로 합시다. (오스카에게서 전화가 온 건 그때였다) 잠깐만. 너 왜 안와. 금방 온다더니 어디야 지금.”
  “촬영이 딜레이 돼서 그래. 딱 두 시간 만 더 부탁하자.” 
  그때, 주원의 핸드폰 확 뺏어 오스카와 직접 통화 하는 라임. 
  “저기요, 그쪽이 이쪽한테 박채린 잡아오라고 한 모양인데 여기 이 띨띨한 건지 모자란 건지 분간 안 가는 사람이 날 잘못 데려 왔거든요? 난 그만 갈라니까,” 
  헉!! 주원의 얼굴 사색된다. 핸드폰 뺏어 끊으며,
  “박채린 아니야?” 
  “박채린 얼굴도 몰라?”
  “그런 애 얼굴 알아 뭐해. 당신 누구야.” 
  “일찍도 물어 본다.” 
  “박채린도 아닌데 왜 따라왔어.” 
  “박채린이냐고 물었어? 오스카 아냐고 물었지?”   
  “이게 얼마짜리 딜인 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아. 왜, 청바지라도 한 벌 얻어 입기로 했냐?” 
  “처, 청바지? 와- 어떡할 거야! 책임져!” 
  “모자란 줄 알았더니 또라이구만.” 
  “뭐?! 또, 또라이?” 
  그 순간 라임의 핸드폰 울린다. 현장이다. 연결씬이 한 씬 더 있어서 라임이 필요하단 연락이었다. 라임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다시 감독을 설득할 기회가 온 것이다. 
  “감사합니다. 돈암동요? 바로 가겠습니다. 30분이면 갑니다.” 
  “가긴 어딜 가. 그리고 돈암동을 어떻게 삼십분 내로 가.” 
  “박채린 찾고 싶어?” 
  “(!!!)” 
  “그럼 차 키 내 놔!” 

  “으아악-!!” 도로위에 울려 퍼지는 주원의 비명소리. 운전대 잡은 라임, 부웅- 차와 차 사이, 차선과 차선 사이를 시속 백 킬로로 쏜살 같이 달려간다. 
  돈암동 현장에서 도착한 주원은 머리가 어질어질 “욱-” 속도 안 좋다. 겨우 겨우 정신 차리고 라임과 같은 의상 입고 있는 채린을 찾아낸다. 하지만 채린은 서둘러 촬영을 마치고(어차피 라임이 멋지게 하면 되니까) 현장공개를 핑계로 기자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오스카랑은 어떤 사입니까.” 
  “두 분이 사귀는 건 사실입니까?” 
  주원, 아씨 어쩌지? 막아야 하는데... 다음 순간, 기자들을 헤치고 저벅저벅 채린 향해 걸어가는 주원. 누구지? 점점 다가오는 퍼펙트한 주원의 비주얼에 삐리리~ 취한 채린. 그런 채린의 눈앞에 명함을 건네는 주원. 채린의 눈이 커진다. K백화점 사장?   
  “오후 여섯시부터 찾아다닌 거 알아요?” 
  “저, 저를요? 왜요?” 
  “(죽기보다 싫지만) 내가 당신 팬이라면... 믿겠어요?” 
  “저, 정말요?” 
  “조용한 곳에 가서 싸인을 받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카메라들 없는 곳이면 좋겠는데.” 
  채린의 귓가에 제대로 꽂히는 주원의 작업멘트. 그렇게 기자들과 채린을 분리해 내는 데 성공한 주원은 오스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화점 CF라는 미끼를 던져 놨으니 당분간 스캔들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재계약건 하나에 저런 시답잖은 여자의 ‘팬’으로 남을 순 없었다.  
  “너 재계약 외에 하나 더 해줘야겠다.” 
  “그런 게 어딨어!” 
  “싫어? 그래 그럼. 내일 하루 온 종일 검색어 일등 한번 해 보든가.”  
  “이씨! 아, 뭔데!”  
  “기다려. 곧 알게 될 거야.” 
  주원의 얼굴에 떠오르는 사악한 미소.... 

  그 시간 라임은 팔의 상처가 고통스러웠지만 채린을 대신해 격투 씬을 멋지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채린을 보내고 나오던 주원은 어? 저 여자!! 스턴트맨이었어? 
  놀란 얼굴로 라임의 촬영을 지켜보는 주원. 라임의 얼굴은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몰입하고 있는 라임의 모습은 멋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라임의 깊은 눈동자를..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눈으로 쫓고 있는 주원. 
  어느덧 촬영이 끝났다. 주원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라임은 감독에게 다시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감독은 차갑게 현장을 떠났다. 라임은 팔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아팠다. 그런 라임에게 주원이 다가왔다. 
  “스턴트맨이었어?” 
  “스턴트우먼이거든?”  
  “아... 분장이 참 리얼하네.” 
  팔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겉옷을 적시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장 아니야.” 
  “분장 아니..(순간, 눈 커지는 주원)” 
  라임, 성한 손으로 상처를 꾹 누르며 비척비척 주원을 등지고 걸어간다. 주원,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잠시 생각하다 저만치 가고 있는 라임에게 달려가 라임 잡아 세운다. 
  “진짜 다친 거야?” 
  하더니 라임의 겉옷 거칠게 벗겨 낸다. 
  “왜 이래. 놔.” 
  “너 미쳤어? 그럼 이 지경으로 나랑 있었던 거야?”
  드러난 상처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주원. 
  “돌았어? 바보야? 이 상태로 촬영을 한 거야? 몸도 불덩이잖아!” 

  링거 맞으며 응급실에 누워 있는 라임. 괜찮다는 라임을 어깨에 둘러매고 응급실 침대에 집어 던지듯 내려놓은 주원은 퇴근한 자신의 주치의를 병원으로 불러내 치료를 하게 한 것이다.  
  “상처는 꿰맸고 열만 내리면 괜찮아. 수면제 때문에 한 두 시간은 잘 거야. 암만 봐도 니 스타일은 아니고. 누구냐?”
  “....스턴트우먼이래...”
  그래? 주치의 재밌다는 듯 라임을 본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라임의 핸드폰이 울린 건 그때였다. 받을까 말까 하다 핸드폰을 받는 주원. 종수였다.
  “누구세요. 길라임씨 핸드폰 아닙니까?” 
  길라임.. 이 여자 이름이 길라임..이구나... 
  종수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마침, 라임은 열이 내려 의식을 회복하던 중이었다.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보인 얼굴은 주원이었다. 뭔가 화가 난 듯한.. 차가운 얼굴... 왜 이 사람이 날 보고 있지? 아.. 그러고 보니 여긴... 라임은 벌떡 일어났다. 종수가 라임을 발견한 건 그때였다. 
  “가... 감독님...”   
  “너 이 새끼! 병원 올 정도였음 병원 가야겠다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아깐 괜찮았는데...”
  “뭐 하러 그 현장엘 다시 가! 이럴 거면 때려 쳐!”  
  “죄송합니다.” 
  하며 일어서다 비틀. 본능적으로 라임의 팔 잡는 주원. 놀란 라임 주원을 본다. 
  “당신 누구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오스카 심부름하는,”
  “시, 심부름? 누가. 내가?”
  하는데, 종수가 주원의 손을 탁 떼어내고 라임을 번쩍 들어 품에 안고 저벅저벅 응급실을 나간다. 저 여잔 주로 남자들이 들쳐 매거나 들쳐 안아야 말을 듣는 구나... 주원은 떠나는 라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데... 
 
  주원은 헐값에 오스카의 재계약을 받아냈다. ‘20주년 고객사은 경품 행사’란 문구와 함께 오스카의 얼굴이 K백화점 본관보다 더 크게 내걸렸다. 패셔니스타 송모양이 입고 들고 찼던 코트, 가방, 시계에 혹한 허영심 많은 지갑들로 백화점은 미어 터졌다. 
  다음 세일은 추석맞이 정기세일이다. 하지만 추석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곧 휴가철이고 각 기업에서 휴가비가 풀릴 것이다. 그 돈을 우리 백화점에서 쓰게 하려면 먹음직한 떡밥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로맨틱 가이 오스카와 떠나는 낭만여행’ 같은. 
  “에이, 안 하죠. 재계약 하던 날도 그 진상을 떨었는데.” 
  “오스카 진상은 무섭고 내 말은 우스워?” 
  “(헉!!) 네? 아닙니다.” 
  “아닌데 왜 토 달아. 요 며칠 소리 안 질렀더니 뇌가 아주 서정적이지?” 
  “요 며칠 충분히 소리 지르셨는데요.”
  “슷! 1등은 오스카와 커플 여행권. 이 삼등은 세탁기 청소기 창고에 있는 거 아무거나 걸어.”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주원. 그러던 어느 날, 주원은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왜 이러지?” 
  자꾸만... 라임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운전을 해도, 밥을 먹어도, 회의를 해도, 화원에 있을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어디에서나 라임이 보였다.  
 
  주원은 병원을 찾았다. 신경정신과냐고? 오 노! 라임을 치료했던 자신의 주치의를 찾아간 것이다. 병원에 라임의 연락처가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차트에 니 번호 적혀 있던데?”
  “내 번호? 왜!” 
  “적은 놈이 알지 내가 아냐? 니가 보호자라고 했다며.” 
  “내가? 아... (허나 적반하장) 그래도 물어봤어야지! 내가 어디가 걔 보호자로 보여! 너 살면서 내가 누구 보호하는 거 봤어? 못 봤지! 그럼 본인 붙잡고 물어 봤어야지! 어떡할 거야! 이제 어디 가서 전화번홀 따냐고.” 
  황당해서 말도 못하고 선 주치의고....

  병원을 나온 주원은 갖은 신경질을 다 부리다 아! 혹시 그 여자가?! 주원은 급히 약속을 잡고 약속 장소인 고급 바로 향했다. 
  “연락처 좀 받읍시다.” 
  “어머, 실은 저도 매니저 언니 눈치 보여 혼났거든요. 010-3191-” 
  “아니 그쪽 말고 그쪽이랑 같은 옷 입고 있던 그 여자.” 
  “(?!!) 네?” 
  주원과 마주 앉은 여자, 박채린이다. 
  “그 왜, 하는 짓은 사내자식 같은데 눈 내리깔면 시크하고 치켜뜨면 반짝반짝하고 머리 길고 자꾸 생각나게 생긴 그 여자. 그쪽 스턴트우먼인 거 같던데.” 
  “허- 그거 땜에 저 보자신 거예요?” 
  “그럼 뭐 땜에 보잔다고 생각했어요?”
  띵-!!

  라임의 전화번호를 입수한 주원은 다시 주치의를 만나러 갔다. 
  “이거 그 여자 번호거든? 전화해서 지금 당장 치료 받으러 오라고 해.”
  “안 와도 되는데?”
  “누가 몰라? 그러니까 오라고 하라고! 안 오면 팔 썩어서 잘라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
  “하고 싶음 니가 해.”
  “내가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 아냐.” 
  “지금도 이상해. 일단 알았으니까 복도 나가 우회전 하면 첫 번째 방 있어. 가봐.”
  “거기 어딘데.”
  “CT실. 아무래도 너 뇌에 문제 있는 거 같다.”
  “그지. 나도 그래서 이러는 거야.” 
  “너 설마 첫눈에 반한 거야?” 
  “장난하냐? 사람이 어떻게 첫눈에 반해. 이상한 여자면 어쩔라고.” 
  “근데 왜 보재.” 
  “그 여자가 자꾸 따라 다니니까.” 
  “따라다녀? 널?”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빨랑 전화나 해. 나 3시까진 스케줄 되니까 오라고.”
  “니가 의사냐? 왜 니 스케줄에 맞춰.”
  “너 이제 의료봉사 안 해? 내 기부금 필요 없어?” 
  “나쁜 새끼.” 
  주치의는 전화를 걸었다. 주원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라임을 기다렸다. 하지만 병원 진료시간이 다 끝나도록 라임은 오지 않았다. 

  이씨... 작전에 실패한 주원은 라임의 핸드폰 번호를 밤새 노려봤다. 내가 진짜 왜 이러지? 이런 건 오스카한테 물어보면 직빵인데. 그렇다고 그 자식과 여자 문젤 의논할 맘은 없었다. 보나마나 너 혹시 첫눈에 반했냐? 할 것이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내가 첫눈에 반한 게 아니란 걸 증명하기 위해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주원은 라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길라임씨?” 
  “누구세요.”  
  “내 목소리 기억 안 나요? 기억 안 날 목소리가 아닌데?” 
  “모르니까 묻지. 누구신데요 니가.” 
  “(이씨!) 내, 내가 누구냐면 저번에 오스카 때문에 만났잖아요. 호텔도 같이 가고.” 
  “아... 근데요.” 
  “그러니까.. 그게..” 
  대답이 궁한 주원은 병원비! 당신 병원비 내가 냈으니까 그 병원비 지금 받아야겠다, 라며 병원비 핑곌 댔다. 라임은 어쩔 수 없이 액션스쿨로 오라고 위치를 알려주었다. 

  한편 라임은 주원을 오라고 한 것도 까먹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바로 액션스쿨 6기연수생 면접이 있는 날이었다. 홍일점인 라임은 선배들과 함께 심사위원석에 앉아 응시생들의 열정을 지켜보았다. 
  액션스쿨 주차장에 차를 세운 주원은 길게 늘어선 줄을 발견하고 의아한 얼굴로 다가갔다.   
  “어이, 거기! 줄 서세요.”
  “난 줄 같은 거 서는 사람 아닙니다. 길라임씨 좀 봅시다.” 
  “그러니까 줄 서요. 새치기 하지 말고.” 
  여기 애들은 왜들 저래? 6기연수생 면접이란 걸 꿈에도 모르는 주원은 어쩔 수 없이 줄 맨 끝으로 가 섰다. 뭐하는 거야? 고개를 쭉- 빼고 보던 주원은 전면 유리창 안으로 왔다갔다하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아! 라임이다.  
  주원은 라임을 눈으로 쫓았다. 까르르 웃기도 하고.. 긴 머릴 쓸어 넘기기도 하고... 차가 든 종이컵을 입에 물고 무언 갈 작성하기도 하고... 옆자리 종수와 귓속말을 나누기도 했다. 근데 머릿속에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자존심을 상하게 하던 그 길라임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라임은.. 머릿속에 있던 라임보다 훨씬.. 예뻤다.... 
  “자, 다음 분.” 
  엇! 라임에게 넋 놓고 있다 얼결에 시험관들 앞에 서게 된 주원. 헉!! 쟤 뭐야? 왜 저기 서있어! 라임의 눈이 커졌다. 종수도 어? 어디서 봤는데?!! 
  당황스럽긴 주원도 마찬가지였지만 라임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 건들거리며 서서 라임만 뚫어져라 보는 주원.
  “서류가 없네요?”
  “배려죠. 보시면 놀라실까봐.” 
  라임, 저런 미친!! 하는 표정으로 주원 본다. 
  “응시 서류도 없이 여긴 왜 왔어요.” 
  종수의 질문이었다. 그제야 어라? 저 자식 그때 병원에서 라임을 번쩍 안고 가던 그 자식? 종수가 눈에 들어오는 주원. 
  “댁 옆에 앉아 있는 저 여자 보러왔습니다. 병원은 왜 안 왔어요.”
  오잉? 선배들의 시선이 라임에게 쏠린다. 라임, 헉!! 미치겠고. 종수, 표정 굳는다.
  “내가 몇 시간이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  
  “시험 응시하실 거 아니면 나가주세요.” 
  “팔은 괜찮아요? 치룐 받았어요?” 
  “시험 보실 거 아니면,” 
  “보고 있잖아요. 뭐 할까요. 뭐 하면 됩니까. 아까 보니까 드라마 흉내 막 내고 그러던데, 나 추논가 뭔가 그 주인공이랑 똑 같이 할 수 있어요. 짝귀 언니이- 대길아-” 
  “됐구요, 젤 잘하는 거 뭡니까.”  
  “돈 잘 법니다.” 
  우- 선배들은 점점 재밌어 하는 눈치고 라임은 말문이 막혔다. 
  “좋죠. 근데 확인 할 수 없는 거 말고 여기서 보여 줄 수 있는 거.” 
  “(지갑 꺼내며) 돈 많습니다.”
  “하하하. 그럼 특기는.”
  “돈 잘 씁니다.” 
  “와- 똘끼있네. 합격!!!” 
  선배들의 말에 헉!! 사색이 되는 라임과 무언가 불안한 기운에 표정 굳는 종순데... 

  드디어 라임과 둘만 있게 된 주원은 라임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본다. 라임은 그런 주원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당신 눈엔 이게 장난 같아? 톱스타랑 안면 좀 있다고 우리 같은 사람 다 우스워? 돈이 많아? 돈을 잘 벌어? 니가 버니? 오스카가 벌지?” 
  “오스카가 벌지. 근데 나도 벌어. 당신이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백수.” 
  “백수? 내 꿈이 백수다 내 꿈이. 놀라지마. 나 직업 있어.” 
  “있어? 있구나. 뭔데?” 
  “왜 묻는데. 너 내가 부자면 좋겠지.”
  “몇 대 줘 맞기 전에 그만 까불어라? 병원비 얼만데. 삼 만원? 오 만원?” 
  주원, 그런 라임 빤히 보기만 하는. 
  “얼마냐고! 빨랑 갖고 꺼져”   
  “촬영 없을 땐 여깄는 거야? 여기 오면 볼 수 있는 건가?” 
  “얼만지나 부르라고!”
  “이러니까 자꾸 생각나지.”
  “뭐?”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댁은 왜 화낼 때 더 이뻐보이지?” 
  “!!!” 
  라임 이 남자 대체! 굳은 얼굴로 주원 보는데, 미처 말린 틈도 없이 라임의 후드 티 한쪽 어깨 훅 벗겨 상처 보는. 헉!! 놀란 라임, 옷 추스르며 손 치켜 올리면 그 손 탁! 잡는 주원. 라임과 주원의 시선 오가는....
  “무슨 짓이야! 이거 안 놔?” 
  “상처 다 나았나 확인만 하고.”
  하더니 라임이 한손으로 꽉 잡은 후드 티 훅- 내려 상처 확인 하는. 그런 주원 옆모습 보는 라임. 고개 들던 주원과 눈 마주치는.  
  “흉졌다. 미스코리안 못 나가겠네.”
  다시 라임의 옷 입혀주는 주원... 라임, 뭐에 홀린 듯 주원 눈만 노려보는데... 
  
  그날 밤... 주원과 라임은 둘 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라임은 주원을 향해 뛰던 심장박동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주원은 자신의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온 힘을 다해 참지 않았다면 라임을 안아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을 청하는 지금도 라임은... 자신의 침대에 함께 누워 있다.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 시간 오스카는 주원이 자기 이름을 걸고 경품행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열이 받아 있었다. 
  “로맨틱 가이 오스카와 떠나는 낭만여행? 곧 알게 될 거란 게 이거였어? 김주원 니가 꿈이 크구나? 우리 뮤비 촬영 언제지? 그거 2주만 땡겨.” 
  “미쳤냐? 그걸 어떻게 땡겨.” 
  “어떻게 땡길진 나도 모르지. 무조건 땡겨. 김주원이 돈 벌라고 들러리 못 서주니까.” 
  동규는 열불이 터졌다. 어렵게 섭외한 감독 스케줄상 2주를 당기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건 사고 축에 끼지도 못했다. 겨우겨우 감독을 설득해 해외촬영지인 태국으로 감독을 보내 놨더니 썬이 제주도에 있단 제보(?)를 입수한 오스카가 인천공항에서 차를 돌려 김포로 달리더니 제주도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해외 촬영 제주도로 바꿔. 먼저 가 있을 테니까 형은 촬영팀이랑 같이 와.” 
  “너 정말 죽을래!” 
  동규는 하늘이 노랬다. 결국 어렵게 섭외한 감독은 오스카의 변덕을 더는 참을 수 없다며 나가버렸다. 쇼케이스까지 두 달도 안 남았다. 어떻게든 한 달 안에는 촬영을 마쳐야 음원 공개일에 맞춰 뮤직비디오를 공개할 수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윤슬 밖에는... 

  액션 스쿨 연습장에서 팀원들과 연습에 몰두하던 종수는 뜻밖의 방문을 받았다. 새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자신을 뮤직비디오 감독이라고 소개한 미모의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매혹적이었다. 슬이다. 
  “액션이 주인 대본이라 최고의 스텝들로 꾸리려구요. 시간이 너무 없는 게 단점이긴 한데, 그만큼 보수가 쎄다는 장점도 있죠. 유학파시더라구요? 전 뭐든 현란한 게 좋아요. 액션도, 그 액션을 만드는 무술감독 프로필도.” 
  슬은 유혹적인 입술로 촬영 일정과 원하는 이미지를 설명했다. 종수는 그런 슬을 보며 생각했다. 저 립스틱... 라임에게도 어울릴까...

  선배들과 합을 맞추던 라임은 선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훅- 주저앉았다. 
  “너 이 새끼 정신 안 차려? 아까부터 정신을 어따가 팔아먹은 거야!”
  “....죄송합니다...” 
  주원과의 만남 이후 라임은 자꾸만 창밖만 바라보게 된 자신을 용서 할 수 없었다. 주원의 빈말 때문이었다. ‘촬영 없을 땐 여깄는 거야? 여기 오면 볼 수 있는 건가?’ 하지만 주원은 그날 이후 라임의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선배들한테 혼이 난 라임은 서둘러 촬영장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현장에 도착한 라임은 몸을 풀고 있었다. 3층 난간에서 1층으로 뛰어 내리는 씬이었다. 촬영장 한편에서는 촬영장을 방문한 여주인공 송윤아의 팬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도시락, 과일, 떡, 음료수, 초콜릿 등등 간식거리를 마련해 온 팬들 덕에 스텝들은 신이 났다. 
  “울 언니 예쁘게 봐주세요~ 울 언니 고생시키지 말아주세요~”
  애교를 떨며 스텝들에게 간식을 나누어 주는 팬들. 라임은 팬들과 백화점 고객들에게 둘러싸인 탑 스타 송윤아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라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누군가, 주원이다. 촬영 장소가 바로 주원의 백화점이었던 것이다. 과연 우연일까....
  그날따라 집중을 할 수 없었던 라임은 계속 NG를 냈다. 감독의 질책이 쏟아졌다. 촬영 장소도 2시간만 빌린 거라 빨리 철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구경꾼들은 자꾸 몰려들고 라임은 식은땀이 흘렀다. 장소사용 협조를 구하러 갔던 조감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2시간 초과해도 되니까 맘 놓고 찍으라는데요?” 
  “정말이야? 휴- 한시름 놨다. 근데 이 백화점이 웬일이냐?” 
  “사장님 특별 지시랍니다. 직접 내려와 보신다고... 저기..” 
  스텝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촬영 팀을 향해 걸어오는 최고급 슈트 차림의 한 남자, 주원이다. 지친 눈으로 보고 있던 라임의 눈이 커진다. 말도 안 돼... 왜 저 남자가... 
  주원이 그런 라임을 똑바로 보며 다가오고 있다. 감독이 굳어 서 있는 라임을 밀치고 주원을 맞는다. 
  “이렇게 편의를 봐주셔서 뭐라고 감사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시면 제가 알려드리죠. 길라임씨한테 소리 좀 그만 지르시죠.” 
  헉!! 촬영장의 전 스텝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라임도 제 귀를 의심하고 주원을 본다. 
  “방금 밀친 것도 사과하시고. 제가, 길라임씨 팬이거든요.”
  와.. 입을 떡 벌린 스텝들의 시선이 라임에게 쏠려 있다. 라임은 숨도 쉬지 못하고 주원 보는데... 

  한편 종수는 위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한 채 화장품 코너를 돌고 있었다. ‘로맨틱 가이 오스카와 떠나는 낭만여행’은 국내 뿐 아니라 아시아 팬들까지 응모를 하면서 대박을 쳤다.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화장품 코너 직원은 난감 했다. 
  “빨간 색인데 너무 빨갛진 않구요, 입술이 좀 앵두 같아 보이면서..”
  슬이 바르고 있던 것과 같은 립스틱을 찾고 있는 종수였다. 결국 직원이 일일이 다 발라본 후에야 그 중 하나가 맞는 것 같다며 씩 웃는 종수. 현재 경품 행사 중이라는 직원의 말에 종수는 응모권에 라임의 연락처를 적어 넣는데...  

  셋트 촬영까지 마친 라임은 액션스쿨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남잔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어쩜 그 해답을 빨리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액션스쿨 연습장에 예의 그 껄렁한 추리닝 차림의 주원이 선배들에게 검술 지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라임은 건조한 눈으로 그런 주원을 바라봤다. 주원도 그런 라임을 발견했다. 
  “오셨습니까 선배님.” 
  “!!!” 
  “촬영은 잘 하셨습니까 선배님.” 

  주원을 밖으로 불러낸 라임은 서늘한 얼굴로 주원을 노려봤다. 
  “당신이 왜 여깄어.” 
  “6기생이니까.”  
  “지금 장난해?”   
  “안 속네? 물론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 집은 어딘지 모르겠고 백화점에선 철수했다고 하고 촬영 끝나면 늘 여깄는 거 같아서. 길라임씨가.” 
  “!!!” 
  “더 궁금한 거.”
  “...대체 왜 이러는데. 당신, 나 좋아해?”
  “내가 그렇게 미친 놈 같아?” 
  “?!!!” 
  “나 같은 사람이 댁 같은 여자 좋아하는 거 봤어?” 
  “!!!” 
  “열아홉 살이야? 아님 정말 내가 어디 모자라 보여? 나처럼 돈 많고 집안 좋고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가 댁 같은 여잘 좋아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근데 왜 따라 다녀.”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그럼 누구한테 물어.” 
  “당신한테 물어야지.” 
  “?!!!” 
  “자꾸 떠오르는데 어떡해! 안 봐도 계속 같이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나더러 어쩌라고. 차라리 이렇게 보는 게 낫다니까? 내가 오죽하면 이래?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허-”
  “좋아. 이렇게 해. 일단 여러 명의 의견이 내가 당신한테 첫눈에 반했다야. 근데, 댁은 내가 첫눈에 반할 여자가 아니야. 집안, 학벌, 능력, 나이, 뭐 하나 괜찮은 게 없잖아. 혹시 있음 손 들어.” 
  “(허- 기막혀 말도 안 나오는 라임이고...)” 
  “봐. 없잖아. 혹시 착각 할까봐 미리 말하는데 나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학벌 좋고 집안 좋은 여자들, 사진만 쌓아도 빌딩 하난 쌓아. 근데 내가 여기서 이러는 게 나도 이상해. 그러니까 당분간 서로 보지 말아 보자고. 안 올게. 나도 이대론 안 되겠어. 안 올 거야.”
  “!!!” 
  “근데, 그래도 계속 떠오르면 그때 다시 얘기 해. 병원을 가던가 굿을 하던가. 오케이?” 
  헉!! 뭐 이런 미친!!!

  안 오겠단 주원의 말에 왜 갑자기 섭섭했던 걸까... 라임은 일부러 먼 길을 택해 집을 향해 걸었다. 집에 돌아온 라임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아영을 발견한다. 슬과의 라운지 사건 때문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그 미친년이 사장실에 직접 전화한 거 있지. 물론 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암만 그래도 팔년이나 다닌 날 어떻게 하루아침에 땡강 자를 수가 있냐?”
  “어떡해. 미안해...” 
  라임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살면서 죄송합니다... 미안해...란 말을 몇 번이나 하는 걸까... 
  “니가 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 그깟 라운지가 뭐라고 지랄들이야! 사장인가 뭔가 완전 재수똥떵어리. 게이라고 확 다 불어 버릴까 보다.”   
  “게, 게이?” 
  “알만 한 사람 다 알아. 그래서 우리 사장 여자 엄청 싫어해.”  
  헉!! 아영이네 사장이라면 바로 그 남자다. 라임의 머릿속을 어지럽힌 그 남자. 근데 그 남자가 게이란 말인가?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 그렇게 모르는 건가? 그렇다면... 양성애자?!!
  
  그 시간 주원은 당첨자는 발표해버렸는데 오스카가 잠수를 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히 라임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잘못하다간 에어컨에 빨간딱지 붙은 베스킨라빈스처럼 소송이 걸릴 판이었다. 이미 신문사와 언론사에 홍보자료를 다 돌린데다가, 이 행사를 취재하겠다는 ‘깊은 밤의 TV 연예’에 백화점 바를 붙여주는 조건으로 취재를 수락한 상태였다. 근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주원을 구원한 건 오스카였다. 
  “나 좀 빼줘. 지금 경찰서야.” 
  “어디?!!” 
  제주도에 도착한 오스카는 수소문 끝에 공사현장에서 목수로 일하고 있는 썬을 찾아 갔지만 썬은 그런 오스카에게 딱 한마디뿐이었다. 
  “니 음악, 구려.” 
  충격을 받은 오스카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썬을 찾아 갔고 급기야 심야에 썬이 연주를 한다는 클럽까지 가게 된 것이다. 오스카는 그곳에서 썬의 음악을 들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잊고 있던 열정이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오스칸 썬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넌! 내 밑에 있기엔 아깝겠다. 굿 바이.” 
  “!!!” 
  늘 그렇지만 딱 거기 까지 멋졌다. 돌아 나오던 오스카를 막아서는 덩치들. 오스카가 좀 전에 썬을 기다리며 작업을 걸었던 아가씨가 조직에 계신 분의 애인이었던 것이다. 왜들 이래? 오스카도 지지 않고 덩치들 노려보는데, 그 순간 오스카의 손목을 잡는 누군가, 썬이다.  
  “튀어!!” 
  오스카는 썬에게 손목이 잡힌 채 아름다운 야경 속을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러브스토리의 두 주인공처럼... 하지만!! 덩치들은 차를 이용해 쫓아왔고 결국 치열한 혈전(?) 끝에 경찰에 잡히고 만 것이다. 
  “얘들 주장은 내가 지들 두목 애인을 모욕했다는데, 너도 알잖아. 내가 같이 자면 잤지 모욕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그럼 알지. 이 소식이 언론에 안 흘러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니가 콩밥 싫어하는 것도 알고. 근데 난 니가 나 물 먹일라고 제주도로 튄 것도 알고 불행히도 넌 내가 맨 입으론 너 안 빼줄 것도 알지. 그지?”  
  “너 정말 이럴 거야?” 
  “이러지 말까? 그럼 넌 나한테 뭘 해 줄 수 있을까,는 생각해 봤냐?”
  “언젠 니가 내 생각 물었어? 그냥 불러 이 자식아!”  
  “제주도로 갈 테니까 이쁘게 하고 기다려. 경품 행사 진행해야지. 원래 태국이었는데 돈 덜 들고 좋지 뭐. 그러니까 절대 딴 데로 튈 생각 마.”  

  주원은 경찰청에 있는 선배에게 연락했다. 덕분에 오스카와 썬은 경찰서를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주원은 한 이틀 처박아 뒀다 데려오란 말도 잊지 않았다.  
  여행지가 태국에서 제주도로 바뀜에 따라 일정은 한결 쉬워졌으니 엄한 문제가 터졌다. 1등에 당첨된 당첨자는 오스카의 열혈 팬인 만삭의 주부였던 것이다. 정말 당첨 될 줄 몰랐다며 아이 낳고 살 뺀 다음 가면 안 되겠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더니 결국 여행경비에 상응하는 출산용품으로 여행권을 맞바꾸었다. 
  1등의 행운은 2등에게 돌아갔다. 헌데, 2등 당첨자는 오스카가 누군지도 모르는 중년의 남자였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다시 3등 당첨자에게 기회가 생겼다. 
  “3등 당첨자면.. 길라임인데, 이번엔 여자 맞겠죠?” 
  김비서의 말에 주원은 걸음을 멈췄다. 
  “길라임? 확실해?” 
  “네.” 
  “그 이름이 흔한 이름인가?” 
  “흔하진 않은 것 같은데..” 
  “그지? 내 방으로 불러. 직접 만나볼 테니까.”
  “(!!!) 사장님께서 직접요?” 

  라임이 K백화점에서 전화를 받은 건 집 앞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사고 있을 때였다. 그날 구멍가게 주인은 달걀까지 손에 꼭 쥐어주며 이웃사촌끼리 무쓴! 라면 값을 받냐며 라임의 등을 떠밀었다. 민소매로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용 문신을 아줌마가 본 것이다. 
  그 날 이후 라임은 동네에서 ‘조직에 계신 언니’로 알려졌다. 하긴 맨날 추리닝에, 붕대에, 피 묻은 옷에, 시커먼 남자들이 봉고차에 태워가고 태워오니 변명의 여지없이 조폭이었다. 이런 오해로 인해 훗날 주원은 갖은 고초를 겪게 되는데...  
  “K백화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청소기에 당첨 되셨습니다.” 
  “네? 청소할 기회에 당첨 됐다구요?” 
  대체 이게 뭔 소린지... 아! 혹시 아영이가 응모한 건가? 사실 누가 응모했건 상관이 없었다. K백화점이면... 어쩌면 주원을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주원은 사장실에서 라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라임이 들어섰다. 심장이 뛰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이런 젠장!! 라임을 보자마자 쿵쿵.. 울리는 주원의 심장. 저  여자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걸까. 
  라임은 자신을 뚫어져라 보기만 하는 주원의 침묵이 부담스러웠다.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가슴이 철렁했다. 더 솔직히 말해 다시 만난 주원이 반가웠다. 하지만 침묵을 깨는 주원의 목소린 차가왔다. 
  “이렇게 또 보네요. (다 알면서) 어쩐 일이에요.” 
  “청소기... 타러 왔는데요.”
  “우리 서로 말 놓은 거 아니었나?” 
  “...오핸 마세요.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말없이 보는...)” 
  “...청소기,” 
  “알아. 안다고.” 
  “!!!” 
  “기껏해야 백화점에 청소기나 타러 오는 여잔데... (저 여자가 뭐가 좋을까...)”
  “(!!! 모멸감 느끼는...)”
  “경품이 바뀌었어요. 전에 오스카 안다고 했죠. 오스카와 낭만 여행 어때요.” 
  “방금 그 말,”
  “제주도 2박 3일. 날씨도 좋고 좋을 텐데.” 
  “(뭘 기대한 거야...) 됐어요. 그냥 청소기 주세요.”
  “진심이에요? 오스카가... 청소기 보다 못해요?” 
  “바빠요.” 
  “(은근 좋은) 오스카 안 좋아해요?” 
  “관두죠. 청소긴 그쪽이 먹고 떨어지고 대신, 내 친구나 복직 시켜요.”
  “친구?” 
  라임은 라운지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자격도 안 되면서 커피 마신 여자가 바로 나다. 물론 아영과 본인이 잘못한 거 안다. 하지만 다신 그런 일 없을 거다. 기회를 주셔라. 라임의 얘기를 가만히 듣던 주원, 
  “좋아요. 기회를 주죠. 솔직하게만 대답하면 되요. 오스카가 정말 싫어요?” 
  “(싫다 그럼 되는 건가?) 네. 싫어요. 아무 여자한테나 눈웃음치고, 아무 여자한테나 돈도 펑펑 쓰고, 나 혼자 듣고 싶은 노래 아무한테나 불러주는 건 더 싫고.”
  “(빤히 보는)”
  “왜요?” 
  “그건 싫어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거 아닌가?” 
  “!!!” 
  “김실장. 3등 당첨자 분께 청소기 내 드려. 친구분껜, 다른 직장 알아보라고 전해요.” 
  “!!!.” 

  나쁜 놈. 대체 난 뭘 기대하고 거기까지 갔던 거야. 라임은 주원의 돌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청소기박스를 어깨에 들쳐 메고 액션스쿨로 들어서던 라임은 선배들의 연습 장면을 본다. 어? 새로 합을 짜고 있다. 새 작품이다. 너무 잘 됐다. 이번에 내 배역은 뭘까. 하지만.. 
  “종수형이 이번 작품은 너 빼고 간다던데?” 
  “네? 왜요?” 
  “너 그 팔론 무리라고.” 
  “뭔데요. 무슨 촬영인데요.” 
  “제주돈데, 가수 오스칸가 뭔가 뮤비 찍는다던데?” 
  “!!!” 

  라임을 보낸 주원은 대체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세상에 오스카를 좋아하는 여잔 수도 없이 많고 라임이 한명 보탠다고 문제 될 건 없었다. 
  “설마... 나 질투하는 거야? ”
  말도 안돼. 내가 왜? 고작 청소기나 받으러오는 여자한테 왜?!! 그 순간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 라임이다. 
  “젠장!! 이 여자 또 보인다 또 보여.” 
  하지만 그건 주원의 환상이 아니었다. 턱!! 라임은 주원의 책상에 청소기 박스를 내려놓았다. 
  “돌려드릴게요.” 
  “거짓말. 이거 핑계로 나 보러 온 거잖아. 댁도 나 안보면 나 막 보이고 그렇지.”  
  “농담할 기분 아니에요.” 
  “내가 지금 농담 하는 걸로 보여요?” 
  “그 여행 갈게요. 오스카랑 떠나는,” 
  “(!!!) 누구 맘대로. 떠났어요 이미.”
  “벌써요?” 
  “그쪽 손 떠났다고. 가랄 땐 싫다더니 왜 이래? 추접시럽게?” 
  “추, 추접? 청소기 돌려 드리잖아요. 어차피 누군간 갈 거고 내가 간다구요. 내가 당첨자니까.” 
  “그쪽이 당첨자였던 건 세 시간 전 얘기고. 김실장! 오스카 안티 까페 다 뒤져서 운명이다 생각하고 한결같이 안티질 하시는 훌륭한 분 좀 찾아봐. 여행 보내 드린다고.” 
  “부탁 좀 드려요. 꼭 가야한단 말입니다.” 
  “그거야 그쪽 사정이고.” 
  “진짜 이러실 거예요?”
  “안 그럴 수도 있지. 자, 그럼 다시 한 번 물어볼까? 오스카 좋아해요?” 
  “(띵!!) 뭘 원하세요. 팰까요? 묻을까요?” 
  “팬 다음에 묻는 것도 되나?” 
  “진짜 잘해요. 말만 하세요.” 
  “(빤히 보다) 뭐든?” 
  “뭐든이... 대충 뭔데요?” 
  “(피식) 축하해요. 방금 청소기도 받고 제주도도 가고 친구도 복직 됐어요.” 
  “!!!”  

  그렇게 해서 주원과 라임은 제주도행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 물론 라임은 이코노미고 주원은 퍼스트 클래스다. 주원은 아까부터 옆자리 여자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보통 딱 붙어 가는 비행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 한 두 마디 정돈 나누게 된다. 특히 여자인 경우 백이면 백 주원에게 관심을 보인다. 근데 이 여자 고개 한번을 안 돌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합치면 한 이천만원쯤? 돈 좀 있는 집 딸인가 본데 영화 쪽 일을 하는지 콘티 북을 보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책을 본다. 그렇지. 내가 관심가질 여잔 바로 이런 여자다. 길라임 같은 여자가 아니라. 
  근데, 슬슬 자존심이 상한 주원은 괜히 화장실을 가는 척 들락날락 해 보지만 여잔, 모델 같은 미끈한 다리를 살짝 비켜줄 뿐 고개도 안 든다. 다름 아닌 슬이다. 
  주원은 화장실에 다녀오다 멈칫한다. 슬, 소리 죽여 서럽게 울고 있다. 뭐야. 왜 울어! 눈 커지는데, 멜로영화 화면 눈에 들어온다. 슬, 이어폰 꽂은 채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슬의 모습 보다 피식 웃는 주원. 워커홀릭처럼 보이던 여자가 멜로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라니... 주원은 자신의 이니셜이 새겨진 명품 손수건을 건넸다. 
  “써요.” 
  “있어요. 흐흑..”
  헉!! 감히 내 손수건을 거부해? 주원은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슬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눈물을 닦으며 슬은 생각했다. ‘김주원 너도 별 수 없구나. 하긴 내 눈물 연기와 손수건 설정에 안 넘어온 남잔 없으니까. 난 남자가 내미는 손수건을 덥석 받는 아마추어가 아니야.’  

  제주 공항에 도착한 주원, 슬, 라임. 주원과 슬은 먼저 짐을 찾아 나온다. 또각또각 나란히 걷는 마놀로 블라닉과 명품 수제화 테스토니가 동시에 멈추어 선다. 주원과 슬의 시선이 오간다. 왠지 어색한 침묵... 주원은 모른다. 슬의 저 모든 행동이 미리 계산 된 것임을.... 
  다시 또 슬과 주원의 시선이 부딪힌다. 슬이 담백하게 묻는다. 
  “누구 기다리시나 봐요.” 
  “이코노믹에 탄 일행이 있어서요.” 
  “어? 저두요.” 
  마치, ‘우리 운명이네요?’라는 듯 눈 반짝이는 슬. 그때 저만치에 라임과 슬의 조감독 나온다. 주원과 슬, 서로 눈인사 나누고 시크하게 각자의 일행과 공항 나간다. 주원을 따라가던 라임, 엇! 저 여자.. 걸음 멈추고 뒤돌아본다. 슬은 어쭈, 김주원. 연락처 달란 말을 안 해? 인상 구기는데 뒤에서, 
  “저기요.” 
  그럼 그렇지. 예쁜 미소 만들고 머리 찰랑이며 탁 돌아섰는데, 뭐야. 여비서를 보냈나? 그렇게 라임과 슬은 다시 만나게 되는데... 라임, 씨익- 웃으며 말 건넨다. 
  “나 알죠.” 
  “?!!!”  
  “나 알잖아.”
  “저 아세요?” 
  “알면서 이러신다. 정말 기억 안나요?” 
  “누구시죠?” 
  “누구시죠? 하면 돌대가리지. 내가 니 친구분 지갑도 찾아 줬잖아요.” 
  지갑? 하다 헉!! 그때 그 백화점에서!!! 라임 그래 나야, 하는 표정으로 보면 
  “(당황 허나 태연하게) 사람 잘 못,”
  “아닌데?”
  “사람 잘 못 보셨다니까요.” 
  “목소린 왜 떠냐?”  
  “이보세요! 지금 어디서 반말이에요!”
  “왜. 또 어디다 전화하게? 돈 많은 것들은 의리도 없냐? 서로 퉁 치기로 했음 지켜야지 얍삽하게 백화점에 전활 해? 인생 그렇게 살면 좋냐? 유익해?”
  “다, 당신 지금 실수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아?” 
  “안다니까? 너 양심 없는 년이잖아. 사과가 제일 쉬웠어요 소리 나오게 만들어 줄까?” 
  “다, 당신 자꾸 이러면 경찰 부를 거야!” 
  경찰? 이걸 콱! 하며 저도 모르게 손 올라간 라임!! 아악- 비명 지르며 쪼그라드는 슬. 저만치서 보고 있던 주원, 저벅저벅저벅 두 여자 향해 오는. 
  “(슬에겐) 무슨 일입니까. (라임에겐)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 주원의 물음에 기분이 확 상하는 라임. 주원의 등장에 슬의 혼신의 연기 시작되는데.... 

  체크인을 마친 주원은 초췌한 얼굴의 오스카와 해변을 걷는다. 낙양을 머금은 물결이 황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지는 해도 예쁘고 오스카의 망가진 몰골도 기분 좋은 주원이다. 
  “제주도 콩밥이 입에 맞았나 보다? 꼴이 이쁜데?”
  “고소해 죽겠냐? 너 일부러 나 이틀 처박아 뒀다 빼냈지.” 
  “넌 고맙단 말을 그 따위로 하냐? (가는)”
  “어디가. 해 떨어지니까 좋은데.”
  “좋으면 혼자 가. (바다 가리키며) 쭉~ 가, 쭉.”
  차로 향하는 주원. 주원 뒤통수 노려보며 따라오는 오스카. 둘은 각자의 차로 향한다. 달려온 도로를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던 오스카가 주원에게 묻는다.
  “16번 국도 탈 거지.”
  “해안도로.”
  “16번이 빨라. 내가 지금 제주도 며칠 짼데.” 
  “해안도로.”  
  “물안개 끼면.” 
  “산안개가 더 위험해.” 
  또 시작이다. 두 남자의 눈에 순간적으로 불꽃 튄다. 고작 이 따위 매치에 목숨 걸고 덤비는 건 두 남자의 오랜 습관이다.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오케이?”
  “괜찮겠어?”
  “정규속도 60km.” 
  “너나 잘 지켜.” 
  둘은 각자의 차에 타고 시동을 건다. 오스카의 차가 붕- 먼저 출발한다. 16번 국도와 해안도로가 갈라지는 지점까진 60km를 준수하며 달리는 두 남자. 신호가 떨어지고, 길이 갈렸다. 룸미러로 오스카의 차가 시야에 벗어나는 순간, 엑셀을 꾹 밟는 주원. 
  해안을 따라 그림처럼 미끄러지는 주원의 스포츠카. 계기판 바늘이 140을 찍는다. 속도를 내긴 오스카도 마찬가지다. 푱- 하며 16번 국도를 쏜살 같이 달려가는 오스카.  
  주원의 차가 호텔 정문 앞에 선다. 내리자마자 주위 훑어보는 주원. 다행히 오스카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 도어맨에게 차키 맡기고 로비로 들어서는데, 젠장!!! 
  오스카가 로비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있다. 신경질 나게 생긋- 웃기까지 하며 주원에게 다가오는 오스카. 
  “거봐. 16번이 빠르다니까. 뭐해. 벗어.”
  주원, 분한 얼굴로 잠시 서 있다 신발을 벗었다. 한국에는 딱 한 개 밖에 안 풀린 제품이라 지난 달 원가의 세 배나 더 주고 데려온 놈이었다. 왜 하필 오늘 이걸 신었을까. 후회스럽지만 오스카와의 게임에선 ‘나중에’는 없다. 그것이 주원과 오스카의 룰이었다.    
  엘리베이터 앞의 투숙객들 흘깃 흘깃 누군가 본다. 맨발로 서 있는 주원이다. 그래도 태생이 귀족인지라 고개 세우고 턱 당기고 맨발로 당당하게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주원. 
 
  그 시간 라임은 자유 시간을 틈타 먼저 도착한 액션스쿨 선배들을 만나고 있었다. 물론 종수에겐 비밀이었다. 라임을 아끼는 선배들은 라임의 프락치(?)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자 스턴트가 필요한 배역이지만 남자 스턴트를 쓸 계획이란 정보를 준 것도 선배들이었다. 
  “감독님껜 정말 비밀입니다. 부탁드립니다 형님들.” 
  선배들의 입단속을 시킨 라임은 뮤비 감독은 자신이 설득해 보겠다면 감독의 방을 찾았다. 그 감독이 슬이란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헉!! 웬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다더니, 슈퍼울트라 ‘갑’과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는 가련한 인생 ‘을’로 다시 극적인(?) 재회를 한 라임과 슬. 
  “조감독이 얘기한 여자 스턴트가, 그쪽인가 보죠?” 
  “.....” 
  “만나자고 해놓고 왜 말이 없을까?”
  “..아...깐..” 
  “아깐, 못 배운 티 너무 내드라. 천박하고 상스럽고. 그죠?” 
  “!!!” 
  불꽃같은 여자 라임과 얼음 같은 여자 슬의 길고긴 전쟁은 그렇게 시작 되는데...

  라임이 넘어야 할 산은 슬만이 아니었다. 연예프로 카메라 앞에서 탑 스타 오스카와 설레고 로맨틱한 여행을 즐기는 행운녀 연기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주원의 속내를 알아야 했다. 왜 자신을 제주도에 데려왔는지.  
  “이제 뭘 원하는지 듣죠."
  “쉬운 일과 어려운 일중 뭐부터 들을래요.” 
  “두 개나 돼요?” 
  “그럼 쉬운 거부터. 절대 오스카의 작업에 넘어가지 말 것.”
  “(피식) 어려운 건요?”
  “나한테 넘어 올 것.”
  “!!!”
  “오스카와 내기를 할 거에요. 내가 이기게 하는 게 그쪽이 할 일이에요.” 
  “내긴 공정해야죠.” 
  “공정하잖아요.”
  “불공정하죠. 다 이기게 해 놓고 내기 하자는 게 어딨어요.” 
  “그래요? 내가 이기는 거 확실해요?” 
  “!!!” 
  라임은 알지 못했다. 이 내기로 인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지...

  라임은 드디어 당첨자 자격으로 오스카와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만나고 싶진 않았는데... 물론 떨려서가 아니다. 연예프로 카메라가 아닌 멋진 액션배우로 35mm 앞에서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오스카의 기억 속에.. 경품 당첨자로 남고 싶진 않았다. 
  그런 라임을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 라임 천천히 고개 들면, 얼굴가득 눈부신 미소 지으며 걸어오는 오스카. 오스카의 뒤를 쫓는 카메라... 라임 어색한 미소 지으며 일어서는데, 
  “어?” 
  “?!!”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보자마자 작업을 거네. 치마만 두르면 다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난 빼주라. 라임, 떨떠름하게 오스카 보면, 
  “그 눈빛.. 기억나요. 이마에 흘러내리던 땀방울도. 바짝 긴장한 채 날 올려다봤잖아요.” 
  “제, 제가요?” 
  “사실 나도 그때 많이 떨렸었거든요. 근데 우리 첫 만남 치곤 꽤 과감했죠?” 
  헉!! 이자식이 뭔 소릴! 남들이 들으면 너랑 나랑 침대에서 뒹군 줄 알겠다 이 자식아! 라임의 걱정은 정확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원은 하- 여자들이란.. 차갑고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서 가버렸다. 라임의 눈에 멀어지는 주원의 뒷모습 보인다.
  “저기요, 다른 분과 착각 하신 것 같은데,” 
  “아닌데? 그 영화! 아! ‘해운대.’ 킬러가 대학가서 인권동아리 들어가는.”
  “(엇!!)”
  “어- 여전히 멋지네 길라임씨.” 
  “!!!” 
  쿵!! 심장 무너지는 라임. 맞다. 우린 그렇게 처음 만났다. 킬러의 연인인 여주인공이 적들에게 쫓겨 호텔 창문에 매달렸다 슬프게 죽어가는 씬이었다. 라임은 그때 그곳에 있었다. 여주인공의 대역으로. 탑 여배우도 아닌, 샛별처럼 떠오르는 신인여배우도 아닌, 스턴트우먼 라임을 오스카는... 온전히 기억해 준 것이다. 여전히 예쁘네가 아니라 멋지네, 인 것도 마음에 든다. 

  라임은 주원과의 계약도 잊고 오스카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물론 카메라 앞이었다. 연예프로 감독은 완전 대박이라며 촬영 스케줄을 늘렸다. 라임과 오스카의 첫 만남이 드라마 틱 할뿐 아니라 라임의 직업도 매우 신선했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대본에도 없는 자신의 호텔 룸 공개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아 라임을 곤란하게 했지만 라임은 웃으며 응했다. 뿐만 아니라, 카메라 없이 둘만의 오붓한 저녁초대에도 라임은 흔쾌히 응했다. 윤슬과 전쟁 중인 지금, 오스카 같은 아군이 절실했던 것이다. 

  허- 공정이 어쩌고 불공정이 어쩌고 잘난 척은 다 하더니 하루 만에 홀랑 넘어가? 라임이 오스카와 단둘이 근사한 저녁을 먹는단 말에 주원은 화가 치밀었다. 주원이 여자를 싫어하게 된 건 대부분 이런 문제들 때문이었다. 몇 번의 연애의 끝은 항상 “이러니까 당신의 여자들은 다 오스카에게 가는 거야.”였다. 그럴 때 마다 주원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러니까, 에서 ‘이런’이 뭔데? 내가 어쨌는데?” 
  “이러니까. 그동안 백번도 더 얘기했어.” 
  거짓말. 백번도 더 얘기 한 걸 내가 모를 리가 없다. 여자들과의 대화는 늘 지친다. 주어도 없고 포인트도 없다. 멍청한 여자들 같으니라구. 

  그 시간 라임은 초대에 응하긴 했는데 난감한 얼굴로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오스카가 예약한 레스토랑은 드레스 코드가 엄격한 곳이란다. 치마라곤 교복 이후 입어 본 적이 없는 라임은 어쩔 수 없이 빈티지 샵에 들려 심플한 원피스 하날 사들고 들어왔다. 샌들은 연예프로 구성작가에게 빌리기도 했다. 아씨.. 치마 싫은데...  

  종수는 슬의 전화를 받고 슬이 묵는 호텔 로비에 들어섰다. 그곳은 슬 뿐 아니라 주원, 오스카 라임이 묵는 호텔이기도 했다. 저벅 저벅 엘리베이터로 향하던 종수가 멈칫! 어? 종수, 천천히 돌아선다. 로비 저쪽에 서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 블랙 원피스에 킬힐, 단정하고 아름답다. 근데, 왜 저 여자가 라임이랑 닮아 보이지? 
  종수는 그런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지금 라임은 서울에 있고 원피스에 킬힐은 죽었다 깨나도 못 입을 아이니까. 다시 엘리베이터 타려는데 문 열리고 오스카 내린다. 자기 뮤비의 무술감독이 종수라는 걸 모르는 오스카는 종수의 옆을 스쳐지나간다. 
  종수는 그런 오스카를 눈으로 쫓는다. 오스카가 멈춘 곳은 아까 그 검은 원피스의 여자 앞이다. 둘은 함께 호텔을 나선다. 그럼 그렇지. 오스카의 여자였구나..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오스카와 라임. 예약석으로 안내 받아 가던 두 사람, 헉!! 이미 불청객이 앉아 있다. 주원이었다.  
  “십분 늦었다.” 
  하다 놀란 표정 되는 주원. 오스카의 등 뒤에 서 있는 라임을 본 것이다. 사내자식 같던 라임이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였다니... 
  “니가 왜 여깄어. 여기 예약한건 또 어떻게 알고.” 
  “내가 모르는 거 봤냐? 근데 저 여잔 누구냐?” 
  뭐야. 새삼스럽게 왜 저래? 라임이 주원을 본다. 주원이 결정타를 날린다. 
  “원래 그래요? 원래 그렇게 차려 입으면 이쁩니까?” 
  “!!!” 
  순간 오스카 긴장한다. 이건 내기다. 주원이 내기를 걸고 있다. 
  “내 손님이야.” 
  “니 손님이 나한테서 눈을 못 떼니까.” 
  당황하는 라임. 오스카 보면 오스카 라임 빤히 보다 얼른 얼굴에 미소 띠고 매너 좋게 라임이 앉을 의자 빼준다. 라임, 얘들 뭐지? 오스카가 권한 자리에 앉는 라임. 
  그날 라임은 음식을 어디로 어떻게 먹었는지 모른다. 주원과 오스카의 유치짬뽕 쪼잔작렬 말싸움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패러글라이딩이요?” 
  말싸움이 점점 내기로 변하더니 그깟 유치한 내기에 패러글라이딩까지 동원하는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라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건 오스카의 뮤비에 참여할 기회였다.  
  “그 시합 저도 껴줘요. 단 내가 이기면 원하는 거 뭐든 들어주기.” 
  
  짙푸른 초록이 시야 밑으로 시원하게 펼쳐졌다. 헬기로 오름 정상까지 이동한 주원, 오스카, 라임은 푸른 숲 끝으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스턴트 교육 과정에서 1박 2일 코스로 훈련 받은 게 다인 라임은 사실 많이 떨렸다. 그래서 더더욱 야무지게 장비를 채웠다. 그런 라임의 옆모습을 지켜보던 주원,  
  “정말 할 줄 알아?”
  “못 한다 그럼 업고 가게요?” 
  “안고 가야지. 얼굴 보이게.”
  “!!!” 
  “뭐해! 출발 안 해?” 
  라임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겨우 진정하고 출발선에 섰다. 두근거리는 이유가 주원이 때문인지 이 시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셋은 전방의 창공을 향해 동시에 달려 나갔다. 해안까지 가장 빨리 도착하는 사람이 이기는 시합이었다. 눈앞으로 푸른 제주의 절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라임은 풍경보다도 자신의 미숙한 운전이 신경 쓰였다. 분명히 배운 대로 하고 있었지만 두 남잘 따라 잡기는 무리였다. 
  주원과 오스카는 서로 경쟁하기에 바빠 라임이 뒤처지는 줄도 몰랐다. 결국 패러글라이딩 시합은 주원의 승리로 끝났고 오스카는 골드플레이트에 다이아몬드가 열두 개나 박힌 최고급 스포츠 시계를 빼앗겼다. 
  “곧 날 어두워질 텐데 오겠지?”
  “누구.” 
  “라임씨.” 
  쿵!!! 주원의 심장이 무너진다. 승리감에 들떠 라임이 보이지 않는 것도 몰랐다. 저 멀리 출발 지점서부터 능선을 따라 시선을 훑었지만 어느 하늘에도 라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주원과 오스카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무전기를 들고 라임의 이름을 부르는 주원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하지만 무전기에선 아무 대답도 없다. 오스카는 뮤비 감독과 미팅이 잡혔단 동규의 연락을 받은 터라 호텔로 돌아가야 했다. 주원은 혼자 라임을 찾아 나섰다. 
  구조대원들과 헬기로 산을 훑었으나 찾을 수 없었다. 주원은 능선 뒤편에 헬기를 세웠다. 하늘을 날 때 바람의 방향이 북동쪽이었다. 바람을 제어하지 못했다면 떨어질 지점은 대략 그쯤이었다. 주원은 숲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어디에도 라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간 오스카는 뮤비 감독 미팅에서 하얗게 굳은 채 앉아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여자, 슬이었다. 이 여자 때문에.. 태어나 처음 울어봤었다. 아주 많이.. 
  “왜 니가 여깄어.”
  “내가 뮤비 찍기로 했어.”  
  “왜 니가 여깄냐고.” 
  “이쪽은 무술감독이신 임종수 감독님.” 
  “누구 맘대로 여깄어 니가.”
  “나 실력 꽤 괜찮아.” 
  “실력 아니라 신통력이 있대도 넌 안 돼. 당신은 나 좀 봐.” 
  오스카는 서늘한 얼굴로 동규를 데리고 바를 나가 버렸다. 슬은 그런 오스카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종수 보며, 
  “각오 단단히 해야겠어요. 속 좀 썩일 것 같죠?” 
  “...그보단, 속이 좀 상한 것 같은데.” 
  “(!!) 몸만 잘 쓰시는 줄 알았더니 머리도 좋으신가 봐요. 유학파라 그런가?” 
  생긋 웃는 슬이의 쿨함에 당황스러운 종순데....   

  그 시간, 숲속을 헤매던 주원은 저 멀리 나무 사이에 걸쳐진 패러글라이딩의 날개를 발견하고 미친 듯이 달려간다. 
  “길라임, 어딨어! 어딨냐고!” 
  주원의 목소리에 걱정과 화가 잔뜩 묻어 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는 라임. 흐릿한 그림자 하나 자신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기요. 여깄어요.”
  주원, 걸음을 멈추고 뒤 돌아 본다. 저만치 라임이 헬멧을 손에 든 채 서있다. 주원 달려가며 고래고래 소리친다. 
  “너 미쳤어! 죽고 싶어 환장했어? 무전기 안 해! 왜 안 받아! 실력도 없으면서 시합엔 왜 껴! 탈 줄 안다더니 따라오지도 못 해? 길도 모르면서 이렇게 깊이 들어오면 어떡해!”
  “이쪽에 산장 있다 길래 산장 가서 연락 할라 그랬죠. 무전기가 고장인지 안 들려서. 근데 왜 여깄어요? 먼저 내려간 거 아니었어요?”
  “(헉!!!) 근데 왜 여깄어요? 너 구하러 온 거잖아 멍청아. 너 조난당했다고. 이런 산중에 뭔 산장이 있다고 이렇게 깊이 들어와! 표지판도 없던데!” 
  “눈 삐었어요? 산장 저깄잖아요!” 
  “저기 있긴 개뿔...!!!”
  헉!! 주원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저만치 거대한 나무 밑 안개 속에 오렌지색 불을 환하게 밝히고 거짓말처럼 서있는 산장. 산장이라기 보단 온갖 꽃들과 신비한 안개로 둘러싸인 예쁜 까페 같았다. 
  둘은 삐거걱- 육중한 나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의 집처럼 유리병들, 마른 꽃들, 낡은 램프, 아기자기한 가구 등등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찬 실내. 
실내를 훑던 두 사람의 시선이 멈춘 곳은 한쪽 구석 벽난로 앞이었다. 한 노파가 음산하게 무언 갈 중얼거리며 검은 액체가 든 솥단지를 휘젓고 있는 게 아닌가.  
  “실례합니다. 해가 져서 그러는데 구조대 올 때까지 잠깐 쉴 수 있을까요? 음식도 마련해 주시면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케이크와 차가 있어요. 근데 아주 비싼 값을 치러야 하는데...” 
  “돈은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두 사람 얼굴 빤히 보다) 정 원하신다면..” 
  노파가 케이크와 차를 내왔다. 초콜릿 케이크였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휘젓던 솥단지 안에 든 검은 액체도 초콜릿이 아닌가 싶다. 케이크는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었다. 
  라임을 찾았냐는 오스카의 전화를 받은 주원은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 라임의 신경을 긁었지만 오스카가 자신을 걱정해 줬다는 사실에 라임은 기분이 좋았다. 주원이 오스카와 통화를 하는 동안 노파는 라임에게 초콜릿 두 상자를 건넨다.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돈이 없어서..” 
  “걱정 말아요. 케이크와 차 값에 포함된 거니까.” 
  “아... 감사합니다.” 
  “이건 설명서에요. 초콜릿을 먹기 전에 설명서를 잘 읽어야 해요.” 
  라임은 노파의 말을 대충 흘려듣고 초콜릿 상자를 받았다.
  
  주원과 라임은 구조대원의 도움으로 무사히 호텔에 도착했다. 오스카는 그 시간 까지도 슬의 문제로 동규와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 
  “아깐.. 데리러 와줘서.. 고마웠어요.” 
  “고마웠음 데리러 갔을 때 얘기 했어야지. 아까 고마운 걸 왜 지금 얘기해.”
  “성격 참 이상하시네? 아깐 너무 정신도 없고 지금 딱 기회가 되니까,”
  “기회가 왔지 왔어. 조명도 괜찮고, 호텔이고, 밤도 깊었고. 괜히 고맙단 핑계로 밥 산다, 술 한 잔 하자, 하면서 취한 척 나한테 안길라고?”
  “허- 관둡시다. 이거요.”
  “나 단거 안 먹어.”
  “누가 그쪽 먹으래요? 오스카한테 전해 달라구요.”
  라임은 오스카에게 전해 달라며 초콜릿 상자를 내밀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허- 그 와중에 이런 것도 사셨어?” 
  “그 와중에 이런 거 사는 무개념 아니구요, 공짜로 받았어요.” 
  “그럼 날 줘야지. 구해 준 건 난데.” 
  “단거 안 먹는다며요.” 
  “쫌 전까진 몰랐잖아.” 
  “억울하면 아까 거기 다시 갔다 놔요. 혼자 찾아 올 테니까.” 
  하며 휙- 가버리는 라임. 저게 진짜 뭘 잘 했다고! 아이처럼 신경질 내는 주원이고... 

  자신의 룸으로 들어온 주원은 분이 안 풀린 듯 왔다 갔다 하다 초콜릿 상자 노려본다. 그러더니 상자 열어 초콜릿 집어 드는. 그때, 무언가 툭 떨어진다. 낡고 음산한 느낌마저 드는 복용 설명서다. 주원은 초콜릿을 우물거리며 설명서에 쓰여 있는 낯선 글씨 읽어보려 애쓰는데...
  그 시간 라임도 자신의 방에서 초콜릿 우물거리며 설명서 읽고 있다. 두 사람이 동시에 같은 문장 웅얼거리는 모습 한 화면에 잡히면!!

  검은 구름, 실처럼 희고 가는 하현달 집어 삼키는... 순식간에 검어지는 하늘.. 
  검은 숲을 흔드는 음산한 바람... 숲에서 날아오르는 검은 새떼들...
  낡은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 꺼질듯 위태롭게 깜빡이는 가로등...
  다시 구름 속을 나오는 희고 가는 하현달... 
  ‘시크릿 가든’ 유리 화원.. 푸른 달빛 받으며 꽃봉오리들 여린 꽃잎들 활짝 여는데... 
  
  다음날 아침... 하늘거리는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아름다운 햇살... 
  평온하게 잠들어 있는 주원과 라임....
 
  몇 번 뒤척이다 잠이 깬 라임. 기지개 켜며 창가로 가 창문 여는. 시원한 바람 느끼는. 그러다 다음 순간 표정 굳는. 뭐지? 천천히 고개 숙여 보면!! 악-!!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아직 꿈속인가? 몸 중심에 동산처럼 솟은 무언가를 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긴 내 방이 아니잖아.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손, 팔, 다리, 얼굴, 자신의 몸 만져 보는데 영락없는 남자고.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 보면!! 아아악- 영혼은 라임 자신인데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주원이다!! 

  그 시간 주원도 잠에서 깨어난다. 왜 자꾸 팬티가 끼는 거야. 눈 감은 채 똥꼬에 낀 팬티 빼다가 어? 뭐지? 눈 확 뜨는. 헉!! 뭐야. 여기 어디야? 자신의 방이 아니다. 침대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자 옷들. 앗!! 혹시 내가 어젯밤에? 아닌데.. 머리 긁다가 헉!! 자신의 머리카락이 엄청 길다. 나 왜 이래?!! 그 순간, 천천히 고개 숙여 보면!! 마치 산처럼 우뚝 솟은 가슴....후다닥 침대에서 튀어 내려오다 멈칫!! 화장대 거울에 비친 모습!! 라임이다. 악- 믿을 수 없어 방안을 왔다 갔다 하는 주원. 내가 어제 술을 마셨나? 이거 술기운인가? 그러다 심호흡 하고 민소매 티 앞섶 확 당겨 들여다보더니 아... 그대로 꼬르륵... 기절하는 주원이고. 

그렇게 주원과 라임은 알 수 없는 힘으로 영혼이 바뀌고 마는데...  
(이후부터 이해를 돕기 위해 대본 형식을 빌립니다.)

  한참을 우왕좌왕 하던 주원과 라임은 일단 서로를 만나야겠단 생각에 미친 듯이 방을 뛰쳐  나온다. 급히 나오다 보니 주원(몸은 라임)은 거의 속옷 차림으로 나왔고 라임(몸은 주원)은 그래도 누가 볼까봐 타월로 얼굴을 둘둘 감은 채다. 
  미친 듯이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던 두 사람, 급한 마음에 비상계단 향해 뛴다. 한사람은 내려오고 한사람은 올라가고 그러다 중간에서 딱 만난 두 사람. 한동안 진짜 서로 바뀌었구나 싶어 말을 잊지 못하고 헉헉 거리며 바라만 본다. 
  주원  “세상에 어떻게 이런...” 
  라임  “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주원  “지금 내가 이랬다는 거예요? 내가 뭔 재주로?”
  주원의 입에선 라임의 말투가, 라임의 입에선 주원의 말투가 튀어 나온다. 당연하다 둘은 영혼이 바뀌었으니까. 
  정말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한참을 싸우던 둘은 그제야 어제까지 자신의 몸이었던 서로의 몸이 눈에 들어온다. 라임은 거의 속옷차림으로 나온 주원에게 지랄지랄하고 주원은 어떻게 천하의 김주원 몸을 부스스한 꼴로 데리고 나왔냐며 난리난리 친다.
  라임은 뒤집어쓰고 왔던 큰 타월로 주원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자신의 몸을 가려준다. 일단 옷부터 챙겨 입고 호텔에선 오스카에게 들킬 수도 있으니까 두 블록 떨어진 까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까페 손님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흘깃 거린다.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여자 앞에서 눈물을 쏟고 있고, 여잔 조신하지 못하게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것이다. 
  라임  “뚝 안 해? 이게 지금 운다고 해결 될 일이야?” 
  주원    “나 평소에 진짜 안 우는데, 눈물이 나는 걸 어떡해요.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구요.” 
  라임    “(브래지어 끈 자꾸 흘러내리자 신경질 적으로 자꾸 올리며) 내가 어떻게 알아! 
   눈물부터 그쳐. 여자 우는 거 딱 질색이야. 이건 왜 자꾸 내려와.” 
  주원  “중간쯤에 버클 있잖아요. 그거 조여요. 짧게.” 
  라임  “중간 어디! 아, 몰라 벗을 거야.” 
  주원  “미쳤어요? 봤어도 백번도 더 봤을 거면서 왜 몰라! 이리 와 봐요.”
  헉!! 둘의 애정행각(?)에 손님들의 눈이 커진다. 남자의 손이 거침없이 여자의 목덜미 쪽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손님들의 이상한 시선에 동작 멈춘 라임. 아차 싶었던 것이다. 
  라임  “안되겠어. 따라 나와.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 
  하며 라임의 손 잡아끌고 나가는 주원. 

  주원과 라임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다. 다리 쩍 벌리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주원. 어떻게 할지 막막한데...  
  주원  “아! 혹시 키스 하면 바뀌는 거 아닐까요? 영화에서 보면 그러잖아요.” 
  라임  “영화니까 그렇지.”
  주원  “지금 우리 상황이 영화랑 뭐가 다른데? 어금니 꽉 물어요. 
          (하더니 확 끌어 당겨 입술에 쪽!)”
  라임  “이게 지금 누구 입술을!” 
  주원  “그거 내 입술이거든요?” 
  라임  “이 입술 말고 그 입술! 아, 알았으니까 다시 해봐.” 
  주원  “(다시 쪽! 하고) 어떡해... 효과 없나 봐.”
  라임  “그렇게 닿자마자 떼니까 그렇지. 좋아 마지막이야. 움직이지 마.” 
  하더니 주원 확 당겨 좀 진지하게 키스 하는. 그러다 자신들도 모르게 좀 진해진... 헉!! 가슴 쿵쾅 거리고... 놀라 후다닥 떨어지는 두 사람. 아까보다 더 어색해 졌고.... 불편한 침묵... 
  라임  “너, 너 일부러 이런 거 생각한 거지. 나랑 키스하고 싶어서.” 
  주원  “와- 미쳤나봐.”
  라임  “어디서 도끼눈을! 내 눈 함부로 그렇게 뜨지 마.” 
  주원  “(벌어진 다리 확 오므려 주며) 내 다리 함부로 벌리지 마요.” 
  라임  “아, 알았으니까 얼른 다른 방법 생각해봐.”   
  주원  “병원에 가보죠.” 
  라임  “광고할 일 있냐? 너 내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몰라?” 
  주원  “그럼 어쩌자고. 나 촬영 현장 가봐야 한단 말이에요.” 
  라임  “난 오스카 만나야 하거든?” 
  주원과 라임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없자 일단 일시적인 걸 수도 있으니까 일단 며칠 기다려 보기로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남들 눈에 안 띄게 주원의 방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당장 급한 불부터 끄기로 했다. 라임은 속옷 입는 법을 알려 주었다. 
  주원  “일단 앞에서 이렇게 잠근 다음 뒤로 돌려서 이렇게. 해봐요.” 
  라임  “벗길 땐 쉽더만 입는 건 왜 이렇게 복잡해.” 
  주원  “허-” 

  주원은 라임에게 자기 몸을 청결하게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하며 면도 하는 법을 가르쳤다. 
  라임  “전기면도기 말고 반드시 이걸로. 이렇게. 칼날을 잘 눕혀서.” 
  주원  “나도... 이틀에 한번은...” 
  라임  “이틀에 한, (하다) 어, 어딜?” 
 
   연예프로 마지막 촬영을 남겨둔 오스카는 라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원과 라임에게 일어난 일을 꿈에도 모르는 오스카는 라임이 나타나자마자 달려가 다친 곳은 없냐며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고 라임을 덥석 안았다. 그 순간, 
  라임   “죽을래? 안 떨어져?” 
  일동   (헉!! 저 여자 왜 저래?)
  오스카   “라임씨...”
  라임   “너 약 먹었냐? 누가 라임, (하다) 씹니다 제가. 아까 손이 어딨었죠? 
           (오스카 손 잡아 아까 위치에 놓으며) 여기 맞죠? 하나 둘 셋에 안을까요?” 
  오스카   (얘 갑자기 왜 이러지? 당황스러운데...)
 
  주원을 찾아온 오스카는 라임이가 자신을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며 어제 둘이 있을 때 자기 얘길 대체 뭐라고 했길래 라임씨가 그러냐며 주원을 다그친다. 라임은 헉!! 김주원 이 인간이 뭔가 사고를 쳤구나 싶다. 오스카에게 나쁘게 인식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원   “아마.. 그게.. 라임씨가 몸이 좀 안 좋은가 보더라구요.” 
  오스카   “뭐?” 
  주원   “아뇨. 걱정하실 만큼 많이 아픈 건 아니구요. 머리가 좀..” 
  오스카   “너야 말로 어디 아프냐? 웬 존댓말?” 
  주원   “(앗!!.. 얘들 둘이 뭔 사인지 물어 볼걸..) 내, 내가? 아, 미안. 
           짜식! (하며 어깨 툭)” 
  오스카   “(헉!!) 너 아퍼. 많이 아프다. 보자 열 있나. (하며 놀리는 듯 이마 짚는데) 
  주원     “(또 금방 주원이 몸인 거 까먹고) 앗! 괜찮은데...” 
  하며 얼굴 빨개져서 두 손 뒷짐 지고 신발 앞코 바닥에 콩콩 찧는... 헉!! 너 정말 왜 이래? 오스카 눈 동그래져서 주원 보는데.... 

  한편, 슬은 주원이 묵는 스위트 룸 방 번호를 알아낸 다음 하우스키핑 직원을 매수해 주원이 언제 방을 나서는지 정보를 얻었다. 주원이 엘리베이터를 탔다는 걸 안 슬은 로비에서 제일 적당한 자리를 잡고 주원을 기다렸다. 
  엘리베이터 1층에 멎고 주원 내린다. 물론 영혼은 라임이다. 슬, 콘티 보며 가는 척 하다 주원과 툭 부딪힌다. 물론 방법이 좀 고전적이긴 하지만 고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힌다는 장점이 있다. 
  슬 “어머, 안녕하세요. 또 뵙네요? 여기 묵으시나 봐요.” 
  주원 “(허- 이 지지배 보게?! 너 딱 걸렸어) 근데.”
  슬 “(앗! 얘 왜 이래?) 그날 비행기에서 손수건요. 정말 고마웠거든요. 근데 인사도 
 제대로 못한 거 같아서 혹시 시간 되시면,” 
  주원 “(아.. 이런 거구나) 고마웠음 손수건 줄 때 얘기 했어야지. 
         그때 고마운 걸 왜 지금 얘기해.”
  슬 “네?” 
  주원 “기회가 왔지 왔어. 조명도 괜찮고, 호텔이고, 밤도 깊었고. 괜히 고맙단 핑계로 
 밥 산다, 술 한 잔 하자, 하면서 취한 척 나한테 안길라고?
  슬 “(와- 너 보통 아니구나... 그렇다고 널 놓칠 순 없지) 연애 경험이 많으신가봐요. 
         그럼, ABC 생략 할까요? 저 방 구경 좀 시켜 주실래요?” 
  주원 “시켜주면. 돈 낼 거야?” 
  슬 “네?” 
  주원 “내가 돈 낸 방을 왜 구경 하재. 방 구경 하자 그러고 덮칠라고? 
          아님 덮쳐 달라고? 어디서 여우짓이야!” 
  가버리는 주원. 슬, 당황하기는커녕, 듣던 거랑 완전 다르네? 점점 탐나는데? 하며 주원의 뒷모습 보는데, 나가려던 주원 걸음 딱 멈추더니 어떡하지? 아- 어떡해 하며 우왕좌왕 로비 기둥 뒤로 달려가 숨는다. 
  슬, 왜 저러지? 하고 보는데 주원의 시선이 로비로 들어서는 한 남자에게 머문다. 종수다. 엇! 설마... 주원이 게이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았었고 슬도 그 소문은 들은 적이 있다. 방금 자신을 대한 태도도 그렇고, 주원이 정말 게이인가?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확인해 보자. 
  “임감독님.” 
  종수와 주원 동시에 돌아본다. 슬, 주원의 표정 놓치지 않는다. 종수에게 신경 쓰는 게 분명하다. 둘이 어떻게 아는 거지? 혹시 유학 시절에? 
  종수, 슬 발견하고 눈인사하고 저벅저벅 걸어오다 엇!! 멈추어 선다. 슬, 왜 저래? 종수의 시선 끝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는 라임의 모습 보인다. 뭐야, 그 재수 없는 기집애잖아. “악-” 떡 벌어진 입에 손가락 넣어 비명 막는 라임. 어떡해 어떡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원(몸은 라임)은 기둥 뒤에 숨어 있는 라임을 발견하고  
  라임    “거기서 뭐해! 왜 그러고 있어!” 
  종수E  “넌 여기서 뭐하는데.” 
  라임  “(아 썅... 종수다.... 어쩌지?) 그게 그러니까..” 
  종수    “니가 어떻게 여깄냐고. 서울에 있어야 할 놈이 어떻게 어깄어.” 
  라임  “그건 알거 없고, 가던 길 가셔.” 
  종수    “(헉!!)” 
  주원  “(아- 돌겠네 진짜. 후다닥 달려와 라임 입 틀어막으며) 길라임씨. 감독님께 
  무슨 말버릇이에요. 죄송합니다. 제, 제가 일 때문에 함께 왔습니다.” 
  종수  “(얘랑? 김주원이랑?) 니가 설명해봐. 니가 왜 이 사람이랑 같이 와.” 
  라임    “(돌겠고 머리 벅벅) 아씨....”  
  종수    “(얘가 진짜! 그런 라임 팔 잡으며) 따라와. 얘기 좀 하자.” 
  라임    “(주원에게) 뭐해. 나 안 잡아? 나 이 남자 따라 가?” 
  헉!! 주원, 종수, 슬의 얼굴 딱딱하게 굳는다. 할 수 없이 라임은 자기 모습을 하고 있는 주원의 손목을 잡아끌고 종수와 슬 앞을 벗어났다. 
  종수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라임이가 남자와.. 그것도 재벌3세와 함께 여행을 오다니.. 종수는 죽었다 깨나도 방금 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죽고 싶은 건 라임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 상황을 종수에게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남의 속도 모르는 주원은 싸구려 룸에서는 도저히 잘 수가 없다며 라임이 있는 스위트룸으로 짐을 싸들고 와버렸다. 누가 봐도 이건 동침이었다.  
  주원  “소문나고 싶으면 맘대로 해요. 누가 보면 댁이 여자랑 방 쓰는 줄 알걸요? 
  아씨... 어쩔 수 없이 라임의 방으로 돌아가는 주원. 

  둘은 그제야 각자 혼자만을 시간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몸, 아니 서로의 몸을 찬찬히 보게 되었다. 헉!! 라임은 주원의 씩스팩에 입이 떡 벌어졌다. 만져 봐도 될까? 되겠지? 내가 만졌는지 지가 어떻게 알아, 하면서 주원의 씩스팩 만지려다 어? 혹시 이 인간도? 
  그 시간 주원도 욕실에서 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몸을 확 다 봐? 보면 어쩔건데. 아.. 보고 싶다. 이럼 안 되겠지? 딱 한번만 보는 거야. 주원, 옷 슬쩍 벗으려다 멈칫... 옆구리와 허리에 온통 멍과 상처투성이다... 새삼 아.. 라임이가 스턴트맨이었지... 오래오래 라임의 멍든 몸 바라보는데...

  다음 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을 뜬 주원과 라임은 여전히 남의 몸 안에 있는 자신들의 영혼에 절망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라임도 힘들겠지만 주원은 더더욱 힘들었다. 도대체가 입어 줄 만한 옷이라곤 하나도 없고 무엇보다 속옷은 정말 심해도 그렇게 심할 수가 없었다. 주원은 라임의 속옷을 싸들고 스위트 룸으로 갔다. 
  라임    “이게 뭐냐? 어떻게 여자가 변변한 속옷이 하나도 없냐고.”
  주원   “깨끗하면 됐지 변변해야 해요?” 
  라임   “그걸 말이라고! 연애 안 해? 남자 친구 없어?” 
  주원    “아.. 그쪽은 여자 친구한테 보일라고 이렇게 몸을 만드셨나 보죠?” 
  라임   “뭐야. 너 혹시 내 몸 봤어?” 
  주원   “(앗!) 이, 일부러 본 건 아니구요 위, 위에만. 진짜.” 
  라임   “와- 이 여자 완전 선수네? 왜 봐 이 응큼한 여자야! (입고 있는 옷 막 들추며) 
   댁이야 이런 자유방임형 몸매니까 억울할 거 없겠지만,“ 
  주원     “(헉!!) 왜 이래요. 미쳤어요? (옷 막 내려주는) 
  라임     “왜. 뭐. 볼 것도 없더구만.” 
  주원     “볼 거 없음 막 그래도 돼요? 내가 사람들 앞에서 막 이러면 좋냐고. 
           (하며 방금 주원이 한 것처럼 옷 막 벗자,) 
  라임     “어쭈. 해 보자 이거야? 좋아. (하며 서로 경쟁하듯 옷 막 벗는데, 딩동! 하자 
           거의 반사적으로 신경질 내며) 누구야!” 
  오스카   “나야 문 열어.”
  주원     “헉!!”
  라임   “아씨. 아침부터 왜! (하며, 라임이 말릴 틈도 없이 문 열어 버린) 
  오스카   “(들어오려다 헉!! 오스카의 눈에는 문을 연 사람이 라임인 것이다.) 
    라임씨가 이 방에 왜..” 

  헉!! 방은 여자 속옷으로 난장판이고 주원과 라임은 거의 속옷 차림이고.. 오스카는 그런 두 사람 얼굴 뚫어져라 보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청춘남녀 주원, 라임, 오스카, 슬, 종수, 썬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얽히고 마는데....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주원과 오스카의 싸움에 숨어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주원과 라임은 마법을 푸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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